[2012 KES] 10년을 기다려온, 주머니 속 100인치 3D 영화관
얼마 전, 배우 김수현이 런닝맨에 출연해 착용했던 안경이 화제가 됐다. '김수현 안경'으로 유명세를 탄 이 안경은 마치 SF 영화에서 나올법한 외형 디자인으로 관심을 끌었고, 제품의 성능과 기능으로 다시 한번 눈길을 끌었다. '마이버드'라는 이름의 이 안경은 아큐픽스가 내놓은 HMD(Head mounted Display)다. HDM란, 안경처럼 머리에 쓰고 대형 영상을 즐길 수 있는 영상표시장치를 뜻한다. 그동안 HMD는 가상현실 체험이나 군사용, 의료용 등 특수 산업에만 사용되던 제품으로 국내 중소업체가 이를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휴대용 디스플레이로 탈바꿈에 내놨다.
지난 2012년 3월, 아큐픽스가 정식으로 발표한 마이버드는 알고 보면 10년이라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담겨 있다. 이번 '2012 전자정보통신산업대전'에도 출품한 제품이다. 이에 아큐픽스의 고한일 대표이사를 직접 만나, 과연 마이버드의 어떤 점에 사람들이 주목했는지, 런던 올림픽이 한창이던 런던 중심가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왜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탄성을 내뱉었는지 등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디스플레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
고 대표가 아큐픽스를 처음 설립한 때는 지난 2000년 5월이다. 휴대용 모바일 기기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이 결국 창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최근에 이르러서야 '마이버드'라는 휴대용 3D 모바일 디스플레이 기기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먼저 어떻게 이 제품을 구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들어보자.
고 대표: "아큐픽스를 창립하기 전인 1983년부터 1999년까지 16년 동안 삼성전자의 중앙 연구소에서 근무를 했었다. 주로 하는 일은 TV 완제품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1~2년 후에 상용화할 제품이 아닌 3~5년 후를 기약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일을 담당했다. 당시 국내 TV 시장은 20인치 내외의 브라운관 TV가 대다수였다. 이에 포터블한 제품 즉, 들고 다니면서 볼 수 있는 휴대용 5인치 TV를 개발해 시장에 선보였다.
이후 86 아시안게임 때 일본에서 HD TV를 발표하고 나서부터 HD 디스플레이 개발을 담당하게 됐다. 이 때 주력으로 개발한 것이 대형 100인치 크기의 프로젝터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구나 프로젝션TV와 같은 대형 TV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당시 대부분의 가정은 브라운관TV를 사용하던 시기였다. 프로젝선TV의 태동기 정도였다.
100인치 프로젝션TV를 개발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이야 세계 각 국의 여러 제조사에서 각각의 부품을 제작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본만 있다면 금세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부품 하나부터 그 부품을 만들기 위한 원료까지 충당해야만 했다. 프로젝션TV에 들어가는 샘플 렌즈를 깍아내는 시간만 3개월이 걸리는데, 문제는 렌즈를 만들기 위한 유리 원료부터 다 구해야만 했다. 어렵사리 카메라, 군사용 광학 렌즈를 제작하는 회사를 찾아가 설득했고, 3개월이 걸리는 것을 2주일 만에 제작해냈다. 그렇게 세계 최초로 HD급 화질의 50인치 프로젝션TV를 개발했고, 최대 300인치 크기의 프로젝터까지 개발을 했었다."
1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삼성전자에서 신제품 TV 개발을 담당해온 그는 아큐픽스를 창립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고 대표: "삼성전자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약 5년마다 한번씩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해나가야 하는지' 등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5년이 지났을 때는 후회가 컸다. 앞만 보고 달렸던 시절이라 도무지 5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조차 아는 것이 없더라. 이 때부터 좀더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해 파고들었던 것 같다.
10년이 지나던 때는 한창 프로젝션TV를 비롯해 프로젝터 등을 개발해 나가는 시기였다. 당시에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밑바탕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미 시장에 출시한 제품의 신모델이 아니라, 의미 그대로의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그리고 15년이 되던 때,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생각한 것이 바로 '마이버드'다. 지금의 형태, 지금의 기능, 지금의 디자인 등을 세세하게 떠올린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개인 휴대용 디스플레이가 시장의 한 축을 형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있었다. 지난 몇 년간 개발해온 광학 기술과 디스플레이 기술을 더하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너무 앞선 기술, 시장의 반응은…
하지만, 그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생각했던 휴대용 디스플레이 기술은 당시 시장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가 내놓았던 첫 작품은 곧 실패라는 단어에 묻혀야 했다.
고 대표: "2000년 창립해 휴대용 디스플레이를 개발하고 나서부터 고민이 있었다. 이 제품으로 볼 수 있는 영상이나 콘텐츠가 전무했다는 점이다. 흔히 말해 즐길거리가 없었다. 영화관은 세워놨는데, 상영할 영화가 없었다. 참 난감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04년 드디어 첫 HMD를 선보일 수 있었다. 우선 중요한 콘텐츠가 확보됐다. 바로 DMB다.
당시 휴대폰을 통한 DMB 서비스가 시작됐고, 여기에 착안했다. 이를 HMD에 연결해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천신만고 끝에 휴대폰과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개발됐고, 실제 테스트도 거쳤다. 하지만, 결국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문제는 화질이었다. DMB는 QVGA(320x240)급 화질 전송밖에 되지 않았다. 해상도가 낮은 화질의 영상이었기 때문에, HMD를 통해 큰 화면으로 보더라고 영상은 뭉개지고 글자는 읽기가 힘들었다. 결국 HMD의 의미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첫 HMD가 실패한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와중에 2008년 삼성전자가 3D TV를 준비하면서 3D TV용 안경 제작을 의뢰해왔다. 지금까지 해왔던 HMD 개발은 잠시 멈추고, 셔터 글라스 방식의 안경을 제조해 납품했다. 뒤를 이어 2010년 LG전자에도 3D TV용 안경을 제작해 납품했다. 지금은 LG전자가 편광방식 3D TV를 제조하지만, 당시에는 LG전자도 셔터 글라스 방식의 3D TV를 제작했었다. 그러나 대기업의 요구에 의해 제품을 납품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항상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고, 처음에 생각했던 HMD 개발과는 거리가 있었다."
창립 후 10년의 기다림. 마이버드의 탄생.
3DTV용 안경 제조가 회사의 양적 성장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성능, 품질 면에서 가장 좋은 평을 얻었지만, 회사의 핵심 경쟁력을 모두 적용한 제품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했다. 이에 그는 다시 HMD로 시선을 돌렸고, 마침 스마트폰이 국내에 도입되면서 고질적인 문제였던 콘텐츠 수급이 해결되었다.
고 대표: "OEM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위험하다라고 생각했다. 사실 3D 안경은 그리 많은 노력이 필요한 제품이 아니었다. 실제 지금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개발할 수 있는 것이 3D 안경이다. 이에 다시 회사를 창립한 계기였던 HMD 개발에 주력했고, 2012년 3월 드디어 마이버드를 출시할 수 있었다. 마이버드는 동종 경쟁 제품과 비교해 가장 가볍고 성능과 기능이 절대 뒤지지 않는다. 무게는 78g으로 가장 가볍고, 화면 크기도 4m 앞에 100인치에 달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와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안드로이드와 iOS를 사용하는 모바일 기기와의 연결을 모두 지원한다. 더 이상 콘텐츠가 부족하지 않다는 뜻이다. 동영상 감상뿐만 아니라 게임도 플레이할 수 있다. XBOX,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콘솔 게임기에도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만약 셋톱박스를 사용 중인 가정이라면, 거실 TV와는 다른 채널의 방송을 감상할 수도 있다.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마이버드다.
여기에 3D 기술도 탑재했다. 2D 영상을 3D 영상으로 컨버팅하는 기술도 지원한다. 타 제품은 컨버팅 기술도 지원하지 않는다. 지난 3월 제품 발표 이후 실제 마이버드에 대한 문의가 상당히 많다. 유럽, 일본,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해당 국가의 독점 판매권을 요구하기도 한다. 국내 이동통신사와 연계해 부가서비스도 선보일 예정이다."
3D와 모바일, 융합의 현장
아큐픽스의 HMD 마이버드는 말로만 들어서 알 수 없다. 일단 한번 써봐야 한다. 그 안에는 어떤 기술이 적용되었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몰라도 상관없다. 두 눈으로 4m 앞에 펼쳐진 100인치 화면은 직접 보면 알 수 있다. 마이버드와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다른 누군가에 방해받지 않는 3D 영화관에 앉아 있는 셈이다. 이 한 제품의 개발을 위해 10년의 세월을 기다렸다.
고 대표는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는 "최근 경쟁사들이 마이버드와 같은 유사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경쟁 제품의 출시가 반갑다. 아직 HMD라는 제품 자체가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많은 제조사가 나와 제품 자체가 좀더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뒤에 사용자들이 판단할 것이다. 여러 제조사와 제품의 성능과 기능으로 경쟁하는 것이라면, 두렵지 않다"라고 말이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