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法] 블랙박스가 ‘눈’이라면 진술은 ‘입’… 사과는 하되, 사실은 정확하게
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교통사고가 나면 운전자들은 사고만큼이나 그 직후의 말 한마디를 걱정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했다가 모든 책임을 떠안는 것은 아닌지, 경찰에게 설명을 잘못했다가 가해자로 몰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합니다. 인터넷에는 "사고가 나면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말라"는 조언도 넘쳐납니다.
그러나 이런 조언만 믿고 상대방의 상태를 살피기는커녕 목소리부터 높인다면, 사고 처리는 더 어려워집니다. 블랙박스와 CCTV가 보편화된 시대에 진술이 무슨 대수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상이 상황을 온전히 담지 못한 사각지대 사고이거나, 영상만으로는 누구의 과실인지 가리기 힘든 애매한 사고에서는 당사자의 입에서 나온 최초의 진술이 법적으로 큰 무게를 갖습니다. 사고 경위에 관해 현장에서 내뱉은 말 한마디가 운전자의 과실비율을 불리하게 만들거나, 무거운 형사처벌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사실 인정과 법적 평가의 구분
우선 "많이 놀라셨죠.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죄송합니다"라는 말만으로 과실비율이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상대의 상태를 묻고 살피는 것은 도로교통법이 요구하는 부상자 구호조치의 출발이고, 죄송하다는 말은 도의적인 유감 표명입니다.
사고 책임은 누가 어떤 주의의무를 어겼고, 그 잘못이 사고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에 따라 판단합니다. 블랙박스와 CCTV, 차량의 움직임, 충돌 부위, 도로 상황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법원과 수사기관도 현장에서 건넨 단순한 사과나 위로의 말을 민사상 배상책임을 모두 지겠다는 '채무의 승인'으로 보지 않고, 법정에서 한 '재판상 자백'과도 다르게 취급합니다. 사과 한마디로 사고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다만 사과에 붙인 설명은 의미가 달라집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휴대전화를 보느라 신호를 못 봤습니다"라고 했다면, 휴대전화를 보았고 신호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구체적인 사실까지 말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운전자의 주의의무 위반을 판단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 구체적인 행동이나 위반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과실에 관한 법적 판단만 받아들였다면 사정이 다릅니다.
2025년 7월 대법원이 판단한 트랙터와 이륜차 충돌 사망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운전자는 항소심에서 자신에게 교차로 진입 우선권이 없었다는 지적을 받아들이며 과실을 인정했습니다. 항소심은 이를 근거로 유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판결을 파기했습니다(2023도7405).
운전자가 인정한 것은 신호 위반이나, 일시정지 의무 위반 같은 구체적인 행동이 아니라, 누구에게 통행 우선권이 있는지에 관한 법적 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자신에게 과실이 있다고 인정했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주의의무 위반이 입증됐다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과했느냐가 아니라 사과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실을 인정했느냐입니다. 단순한 사과나 책임을 인정하는 듯한 표현만으로 과실이 확정되지는 않지만, 구체적인 교통법규 위반 사실을 인정했다면 책임을 판단하는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사과와 구호는 하되, 사고 원인은 단정하지 마십시오
사고 현장에서 침착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리거나 과중한 책임을 떠안지 않으려면, 차에서 내리기 전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고가 나서 유감입니다. 다치신 데는 없나요?"로 충분합니다. "제가 딴짓을 했다", "신호를 못 봤다"는 식의 불확실한 추측성 원인 발언은 금물입니다. 경황이 없을 때는 "사고 충격으로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양측 블랙박스 등 객관적 증거를 확인한 뒤 경찰 조사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불안한 마음에 짜낸 백 마디 변명이나 섣부른 자백보다, 1분짜리 블랙박스 영상이 진실을 더 정확히 말해줍니다. 블랙박스가 '눈'이라면 운전자의 진술은 '입'입니다. 눈이 아무리 진실을 담고 있어도 입이 거짓이나 착오를 말하,면 사실관계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사과에는 인색하지 않되, 사고 경위는 확신하는 범위 안에서 객관적 증거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말은 바뀌어도 기록은 바뀌지 않습니다. 사과는 자유롭게 하되 사실은 기억하는 만큼만 정확하게 말하는 것, 그것이 데이터 시대에 운전자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진술입니다. 사고 직후의 침묵과 신중함은 비겁함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