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테슬라 로드스터가 묻는 디지털전환 2.0: AI와 함께 핵심가치를 만들 수 있는가
※한국경영인학회는 우리나라 대·중·소기업과 스타트업, 경영·경제·법학·공학자들의 지적 교류를 이끌며 동반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학계와 기업 주요 관계자 대상으로 매년 각종 산학 연구회를 열고 학술지를 발간하며 교육과 자문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IT동아는 한국경영인학회와 기고를 통해 학계, 주요 기업 인사들의 경험과 혜안을 전달합니다.
[IT동아] 10월 15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의 스페이스X 시험장. 테슬라의 신형 자동차 '로드스터'가 안쪽으로 말려 올라간 경사로를 거꾸로 달리다 허공으로 솟구쳤고, 공중에서 몸을 뒤집은 뒤 내려앉았다. 로켓 추진 기술을 입힌 이 차를 두고 일론 머스크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와 세계 최고의 로켓 회사가 협업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차를 "사람이 운전하는 마지막 세대 자동차 가운데 최고."라고 불렀다. 테슬라의 미래가 운전대가 아니라 스스로 배우는 자율주행 AI에 있다는 뜻이다.
이 장면은 디지털 전환(DX, Digital Transformation)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압축해 보여준다. 기존 업무를 디지털로 옮기고 자동화하던 '디지털 전환 1.0(DX 1.0)'의 시대가 저물고, 인공지능(AI)이 스스로 학습하고 사람과 함께 일하며 회사와 산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지털 전환 2.0(DX 2.0)'의 시대가 열린다. 이제 AI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남은 질문은 DX 1.0으로 쌓은 디지털 조직과 데이터를 AI와 어떻게 융합해서 한국만의 AI와 핵심가치를 만들어 내냐는 것, 그리고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AI가 산업의 경계를 허무는 장면은 호텔 업계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2월 메리어트의 앤서니 카푸아노 최고경영자(CEO)는 구글 검색의 'AI 모드' 안에서 객실 예약이 바로 처리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메리어트는 같은 날 낸 연차보고서에 AI를 장착한 여행 중개 플랫폼이 브랜드 충성도를 떨어뜨리고 유통 비용을 높일 수 있다는 경고를 실었다. 이튿날 힐튼도 거대언어모델(LLM) 같은 대형 기술 플랫폼이 직접 예약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위험을 처음으로 연차보고서에 적었다. 8월 말 구글은 미국에서 AI 모드 대화창 안에서 객실 검색부터 결제까지 끝내는 호텔 예약 기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호텔을 고르고 예약하는 일이 AI와의 대화 한 번으로 끝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문제는 많은 기업의 AI 투자가 아직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가트너는 지난해 6월, 2028년이면 일상 업무 결정의 15% 이상을 에이전틱 AI가 스스로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으로는 에이전틱 AI 프로젝트의 40% 이상이 비용 증가와 불분명한 사업 가치, 부실한 위험 관리 때문에 2027년 말까지 중단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존 챗봇이나 자동화 도구에 이름만 바꿔 다는 '에이전트 워싱(agent washing)'도 지적했다. AI를 들여놓는 것과 AI로 전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5년 전 필자는 두 동료 교수와 함께 책 『디지털로 생각하라』를 펴냈다. 코로나가 비대면을 일상으로 만들던 2021년, 이 책은 디지털 전환을 기술 도입이 아니라 관점의 전환으로 보고 '디지털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재정의하고 고객경험 혁신에 집중하라', '자신만의 강점을 디지털로 극대화하고 데이터의 가치를 재평가해 주도권을 확보하라' 같은 아홉 가지 법칙을 제시했다. 당시 대부분 기업이 실천한 디지털 전환, 즉 DX 1.0은 기존 업무를 디지털로 옮기고 자동화하는 일이었다. 호텔로 치면 종이 장부를 객실관리시스템(PMS)으로, 전화 예약을 온라인 예약으로 바꾸고, '주말 요금은 주중보다 비싸게' 같은 사람이 정한 규칙으로 객실 가격을 매기는 것이었다. 기술은 정해진 규칙을 정확히 실행하는 도구였고, 경쟁력은 누가 더 효율적으로 프로세스를 돌리느냐에서 나왔다.
그러나, AI는 시장을 스스로 감지하고 데이터에서 배우며 실시간으로 전략을 바꾼다. 기존 디지털 전환 이론으로는 이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다. 필자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최근 국제학술지 International Journal of Contemporary Hospitality Management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새로운 단계를 DX 2.0으로 정의했다. 기업이 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기회를 붙잡아 자원을 재구성하는 능력을 다루는 '동적역량(dynamic capabilities) 이론'과, 가치는 기업과 고객이 함께 만든다고 보는 '서비스지배논리(service-dominant logic)'를 토대로 ▲인지적 증강 ▲인간과 AI의 공동 설계 ▲생태계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세 가지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했다. 핵심은 어떤 기술을 들였느냐가 아니라 그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느냐다. 같은 고객관리(CRM) 시스템과 로봇이라도 정해진 일만 수행하면 DX 1.0에 머물고, 스스로 배우며 역할과 가치 창출 방식을 바꿀 때 비로소 DX 2.0이 된다.
첫째 조건인 인지적 증강(cognitive augmentation)은 AI가 미리 짜인 규칙을 실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학습하며 스스로 전략을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아마존이 대표적이다. 아마존은 지난해 7월 100만 번째 물류 로봇을 배치하면서, 자사 물류 거점에서 쌓은 재고 이동 데이터로 만든 생성형 AI 모델 '딥플릿(DeepFleet)'을 함께 내놓았다. 물류망 전체의 로봇 이동을 조율하는 이 모델은 로봇 이동 시간을 10% 줄였고, 데이터가 쌓일수록 더 똑똑해지도록 설계됐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AI(FSD)가 자사 차량들이 보내오는 주행 데이터로 운전 실력을 키우는 것도 같은 원리다. 이 기능의 감독형 버전은 지난해 11월 말 국내에서도 미국산 일부 차종에 공식 출시됐다. 호텔을 사례로 든다면 '주말은 비싸게'라는 규칙 대신 경쟁 호텔 요금과 날씨, 대형 공연, 소셜미디어 반응까지 실시간으로 학습해 가격을 바꾸는 수익관리 시스템이 그렇다.
둘째 조건인 인간과 AI의 공동 설계(human-AI co-configuration)는 AI가 사람이 부리는 수동적 자원(operand resource)에서 서비스를 함께 설계하는 능동적 자원(operant resource)으로 바뀌고, 사람은 공감과 서비스 회복처럼 사람만 할 수 있는 순간을 맡는 것이다.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Klarna)는 이 조건을 거꾸로 보여줬다. 2024년 AI 비서가 상담원 700명 몫의 일을 한다고 자랑했던 이 회사는 지난해 5월 최고경영자가 비용을 지나치게 앞세운 결과 품질이 떨어졌다고 인정하고, 원하는 고객은 언제든 사람과 상담할 수 있도록 다시 상담원을 뽑기 시작했다. AI로 사람을 대체하는 데 그친 효율 논리, 즉 DX 1.0식 사고의 한계다.
반면 모더나는 지난해 인사(HR) 조직과 정보기술(IT) 조직을 합쳐 '인재·디지털기술' 부서를 만들었다. 인력 계획과 기술 계획을 따로 세우지 않고, 사람과 AI 에이전트가 함께 일하는 업무의 흐름 전체를 설계하겠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오픈AI와 협력해 업무별 맞춤형 GPT를 3000개 넘게 만들었다. DX 1.0 시절의 조직도에 AI를 얹은 것이 아니라, 조직 자체를 AI와 함께 일하도록 다시 짠 것이다.
셋째 조건인 생태계 오케스트레이션(ecosystem orchestration)은 AI가 한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여러 기업의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엮는 것이다. 구글 AI 모드가 호텔과 온라인여행사의 객실을 한 대화창에 모은 것이 그렇다. 오픈AI는 지난해 9월 챗GPT 안에서 바로 결제하는 '인스턴트 체크아웃'을 엣시(Etsy) 판매자부터 시작했고, 10월에는 월마트가 합류를 발표했다. 구글도 AI 에이전트가 사용자를 대신해 결제하는 개방형 표준 'AP2'를 마스터카드, 페이팔 등 60여 곳과 함께 내놓았다. 머스크는 올해 2월 스페이스X와 AI 기업 xAI를 합쳤고, 테슬라도 xAI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자동차와 로켓, AI를 한 생태계로 묶는 그의 행보는 이 조건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사례다. 고객과 처음 만나는 접점이 기업의 앱과 홈페이지에서 AI 에이전트로 옮겨 가면, '우리의 고객을 디지털로 록인할 수 있는가'라는 5년 전의 질문은 '생태계에서 우리는 어떤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라는 훨씬 절박한 질문으로 바뀐다. 메리어트와 힐튼이 연차보고서에 경고를 적은 이유다.
그렇다면 DX 2.0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출발점은 DX 1.0이 남긴 자산이다. 디지털 인프라와 프로세스 자동화는 전환의 필요조건이고, 여기에 스스로 배우는 AI가 결합될 때 비로소 충분조건이 된다. DX 1.0은 버려야 할 과거가 아니라 AI를 키울 토양인 셈이다. 누구나 같은 AI 모델을 빌려 쓸 수 있는 시대에 차이를 만드는 것은 그 기업만이 가진 데이터와 그 데이터를 다뤄 온 디지털 역량이다.
아마존이 자사 물류 데이터로 딥플릿을 만들었듯, 월마트는 수십 년간 쌓은 자사 데이터로 학습한 유통 특화 거대언어모델 '월러비(Wallaby)'를 2024년 공개하며 고객과의 대화가 월마트의 핵심가치에 맞는 어조를 띠도록 했다. 자기 데이터로 AI 모델을 만들고 고도화하는 기업일수록 경쟁자보다 빨리 배우고, 더 나은 AI가 더 많은 고객과 데이터를 부르는 선순환을 먼저 돌린다. 이를 위해서는 부서마다 따로 노는 시스템부터 정리해야 한다. 예약과 고객관리, 가격, 마케팅 데이터가 흩어져 있으면 AI는 제대로 배울 수 없다. 다만 한꺼번에 갈아엎기보다 투자 대비 성과를 확인하며 단계적으로 통합하고, 협력업체와의 계약에서 데이터 소유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AI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다. AI는 비용을 줄이는 도구를 넘어 기업이 고객에게 약속해 온 핵심가치를 함께 만들어 내는 동반자가 돼야 한다. 호텔이라면 환대, 금융회사라면 신뢰가 그것이다. 클라르나가 잃을 뻔한 것도 비용이 아니라 언제든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고객의 신뢰였다. 사람과 AI가 역할을 나눠 핵심가치를 구현하는 방식은 조직의 일상과 암묵지에 녹아 있어 경쟁자가 쉽게 베낄 수 없다. 자원기반관점에서 말하는 가치 있고(valuable), 희소하며(rare), 모방하기 어렵고(inimitable), 대체할 수 없는(non-substitutable) 자원이 바로 이것이다. DX 2.0에서 경쟁우위의 원천이 프로세스 효율에서 학습 속도와 생태계에서의 위치, 사람과 AI의 보완성으로 옮겨 가는 이유다.
AI가 스스로 판단할수록 책임의 무게도 커진다. 테슬라의 로드스터는 날아올랐지만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이 차가 항공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교통부 고위 관계자도 누가 감독할지에 대해 명확한 답이 없다고 인정했다. 기술은 하늘을 나는데 책임의 주소는 비어 있는 셈이다.
2024년 2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민사분쟁해결심판소는 에어캐나다의 챗봇이 유족 할인 규정을 잘못 안내한 사건에서 챗봇을 사실상 '스스로 행동에 책임지는 별개의 법적 주체'로 본 회사 측 주장을 물리치고, 챗봇도 웹사이트의 일부인 만큼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델타항공은 지난해 7월 AI로 미국 국내선 운임의 약 3%를 정하고 있으며 연말까지 20%로 늘리겠다고 밝혔다가, 개인 정보를 이용해 승객마다 낼 수 있는 최대치까지 값을 올리는 '감시 가격(surveillance pricing)'이 아니냐는 미국 상원의원들의 공개 질의를 받았다. 올해 9월에도 하원 질의에 개인 정보로 개인별 운임을 매기는 상품은 없다고 해명해야 했다. 한국도 올해 1월 22일 인공지능기본법을 시행하며 국민의 생명과 권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고영향 AI를 쓰는 사업자에게 안전성 확보 의무를 지웠다.
그래서 DX 2.0을 완성하는 마지막 열쇠는 AI 기반의 디지털 거버넌스와 디지털 책임경영(CDR·Corporate Digital Responsibility)이다. AI가 실시간으로 판단하는 만큼 거버넌스도 실시간으로 작동해야 한다. 알고리즘을 현장에 내놓기 전에 검증하고, AI의 판단을 상시 모니터링하는 도구와 설명 가능한 AI로 가격과 추천의 근거를 밝히며, 공정성과 개인정보 보호, 서비스 품질을 기준으로 주기적으로 감사해야 한다. 실행·책임·협의·보고의 주체를 정하는 RACI 체계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고위험 결정은 반드시 사람이 확인하도록(human-in-the-loop) 이사회가 직접 챙겨야 한다. 이런 장치는 AI 시스템 안에 심을 수도 있다. 구글의 AP2는 사용자의 구매 의도와 장바구니 승인, 결제를 나중에 부인할 수 없는 감사 기록(audit trail)으로 남기도록 설계됐다. 생태계 차원의 공조도 필요하다. 기업 간 데이터 공유 규칙과 알고리즘 공정성 기준을 업계와 정부가 함께 마련해야 AI 에이전트가 오가는 생태계가 신뢰를 얻는다.
기업의 디지털 책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데이터와 기술을 다루는 공유된 가치와 규범을 세우고, 법이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지침을 마련해 안전하고 투명하며 지속 가능한 디지털 관행으로 이해관계자의 신뢰와 웰빙을 지키는 것이다. ESG 경영이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면, 디지털 책임경영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이는 비용이 아니라 책임 있는 데이터 활용을 브랜드 자산과 확장 가능한 성과로 바꾸는 동적역량이다. 한국 기업에 DX 2.0은 기술 도입 경쟁이 아니라 거버넌스 경쟁이 될 것이다.
5년 전 필자는 '디지털로 생각하라'고 썼다. 이제는 AI와 함께, 그리고 책임 있게 생각해야 한다. AI를 얼마나 많이 들여놓았느냐가 아니라, AI와 함께 얼마나 빨리 배우고 그 결과에 얼마나 책임지느냐가 다음 5년의 승부를 가를 것이다.

글 / 이민우 미국 휴스턴대학교 힐튼호텔경영대학 종신부교수, 국제환대정보기술학회 회장
이민우 교수는 한국항공대에서 경영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테크대에서 경영정보시스템 석사 학위를,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휴스턴대 힐튼호텔경영대학 종신부교수로 호스피탈리티 애널리틱스·혁신연구소(Hospitality Analytics and Innovation Lab)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MIT 슬론경영대학원(MIT Sloan School of Management)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International Hospitality Information Technology Association (iHITA) 회장에 당선되었고, HFTP Global AI Council의 연구혁신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Stanford University)와 엘스비어(Elsevier)가 선정하는 '세계 상위 2% 과학자(World's Top 2% Scientists)'에도 이름을 올렸다. 디지털 전환과 서비스 혁신, 기업 디지털 책임, 빅데이터·비즈니스 애널리틱스를 연구한다. 《디지털로 생각하라》(공저)를 썼다.
정리 / IT동아 차주경 기자 (racingcar@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