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패스트 트랙, 특혜가 아니라 공항의 경쟁력이다

[IT동아] 세계 주요 국제공항에는 혼잡한 출국 절차를 신속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마련된 별도의 통로가 있다. 이른바 ‘패스트 트랙(Fast Track)’이다. 긴 승객 대기 시간을 줄이고 절차의 효율성을 높이는 서비스다. 그런데, 세계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자부하는 인천국제공항에는 정작 유료 패스트 트랙이 없다.

인천공항의 출국 심사 처리 속도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권고 기준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우수하다. 그러나, 출국장에 들어선 여객들이 마주하는 긴 대기행렬은 이러한 성과를 무색하게 한다. 세계 주요 국제공항의 서비스 흐름과 유독 엇박자를 내는 부분이 바로 보안 검색과 출입국 심사 과정이다. 특히 연휴와 성수기마다 반복되는 출국장 혼잡은 공항 운영의 고질적인 병목 현상으로 남았다. 이 문제를 해소할 현실적인 대안은 없는 것일까.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추가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승객에게 신속한 전용 통로를 제공하는 것이다. 세계 주요 공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서비스지만, 우리나라 공항에서는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 그 이유 또한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유료 패스트 트랙과 같은 우대 서비스가 국민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항공교통이 대중화된 오늘날에는 획일적인 서비스 제공보다 공항 인프라의 효율적 활용, 그리고 이용객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세계 공항 업계에서 패스트 트랙의 유료화는 이미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주요 국제공항들은 프리미엄 승객과 비즈니스 여행객의 시간 절약을 위해 대상과 운영 방식에 차이를 두면서 다양한 우대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제여객 수송 실적 상위 30개 공항 가운데 12곳은 프리미엄 좌석 승객뿐 아니라 일반 여객에게도 별도의 패스트 티켓을 판매한다. 반면 인천공항에는 이러한 선택형 유료 우대 서비스가 마련돼 있지 않다.

시간이 곧 비용인 비즈니스 출장객이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여행객의 추가 지불 의사를 서비스 수요로 연결하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더욱이 유료 패스트 트랙은 단순히 일부 승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항서비스 전반의 질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오늘날 공항은 항공기의 이착륙을 지원하는 시설을 넘어 상업시설과 라운지,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통해 수익과 경쟁력을 창출하는 복합 서비스 공간으로 진화한다. 패스트 트랙에서 발생하는 추가 수익 역시 공항 인프라 개선과 보안 검색 인력 확충, 교통약자를 위한 편의시설 확충 등에 재투자할 수 있다. 소수 프리미엄 이용객의 수요가 다수 이용객의 서비스 품질 향상에 기여하는 구조인 셈이다.

항공사들은 이미 이러한 차별화된 서비스 체계를 효과적으로 운영 중이다. 일등석과 비즈니스석, 일반석으로 구분되는 좌석 등급부터 수하물 처리, 전용 라운지 이용, 우선 탑승과 하기(下機)에 이르기까지 서비스의 범위와 수준은 항공권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승객들도 이를 불합리한 차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불한 대가에 상응하는 서비스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인정하기 때문이다. 공항 출국장의 대기행렬에도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다만, 전제는 분명하다. 기존 보안검색 인력과 시설을 유료 승객에게 단순히 재배분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전용 보안 검색대와 출입국 심사대 확충, 합리적인 공간 설계와 인력 운영을 통해 처리 능력 전반을 높여야 한다. 일반 승객의 대기 시간을 늘리지 않으면서 여객의 동선을 효과적으로 분산하는 것이 핵심이다. 제대로 설계된 패스트 트랙은 일부 승객의 시간을 단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 공항 이용객의 편익을 높인다.

이용객들의 수용성 또한 충분하다. 2023년 인천공항이 외국인을 포함한 출국장 이용객 24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체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0.4%가 패스트 티켓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구매 의사의 가장 큰 이유는 수속 시간의 절약이었다. 이는 유료 패스트 트랙이 단순한 공급자 중심의 수익사업이 아니라 이용객의 실질적인 요구에 기반한 서비스임을 보여준다.

세계 주요 공항의 패스트 트랙 이용 요금은 대체로 1만 원에서 4만 원 수준으로, 이용객의 수요와 서비스 범위에 따라 차등화돼 있다. 인천공항의 경쟁 공항인 일본 나리타공항은 프리미엄 좌석 승객에게 우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며, 중국 베이징 공항은 다양한 VIP 서비스를 결합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판매한다. 이러한 해외 사례를 고려하면 인천공항은 1만 원대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선택형 패스트 트랙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유명 연예인이 출국할 때 몰려드는 인파로 인한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별도 동선 확보를 위해 투입되는 인력과 자원의 비효율을 줄이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제 공항 서비스도 철저히 고객 중심으로 진화해야 한다. 인천공항이 현재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 최고 공항으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평등의 관점에서 벗어나, 이용객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세심함과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는 인천공항만의 과제가 아니다. 김포공항과 제주공항 역시 성수기마다 반복되는 긴 대기행렬이 이용객의 불만이자 공항 운영의 고민거리로 남았다. 유료 패스트 트랙의 도입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국내 공항서비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공항 당국도 이제 서비스의 형평성을 바라보는 낡은 잣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승객에게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 서비스의 품질을 보장하면서 다양한 선택권을 부여하고 전체 이용객의 편익을 높이는 일이다. 형평성과 효율성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합리적인 제도 설계와 재투자를 통해 얼마든지 함께 추구할 수 있는 가치다.

패스트 트랙은 소수에게 주어지는 특혜가 아니다. 모든 승객의 시간을 존중하는 공항 운영의 혁신이자, 세계적 공항이 갖춰야 할 서비스 경쟁력이다.

글 /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총장

국내 항공경영 및 항공우주정책 연구 분야의 대표적 학자로, 한국항공경영학회 초대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학술적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국가 주요 항공정책의 수립과 평가에 참여하며 현장 중심의 정책 전문성을 축적했다. 2022년 한국항공대학교 총장 취임 이후 우주시스템연구소와 항공우주양자연구소 개소, 항공우주정책대학원 설립, 항공·드론 분야 주요 연구사업 유치, 해외 항공전문가 양성체계 구축 등을 이끌었다. 한국항공대학교를 글로벌 항공우주 교육·연구의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며 대한민국 항공우주 분야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정리 / IT동아 차주경 기자 (racingca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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