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밍 비전을 공유하는 자리가 아니라 팬미팅 행사였나?” 충격의 AMD 게이머즈 데이

강형석 redbk@itdonga.com

AMD 게이머즈 데이 종료 후,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와 잭 후인 AMD 수석부사장이 참가자들과 기념촬영을 진행했다 / 출처=IT동아
AMD 게이머즈 데이 종료 후,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와 잭 후인 AMD 수석부사장이 참가자들과 기념촬영을 진행했다 / 출처=IT동아

[IT동아 강형석 기자] 게이머를 위한 행사였지만, AMD의 게이밍 인프라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게이머를 생각한다는 원론적인 언급과 리사 수(Lisa Su) AMD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남기는 기념사진 촬영이 행사의 거의 전부였다. 2026년 10월 7일 서울드래곤시티 호텔에서 열린 AMD 게이머즈 데이(Gamers Day)는 이렇다 할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게이밍 행사에서 관련 하드웨어 소식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배경에는 인공지능(AI) 산업의 급성장이 자리한다. 중앙처리장치(CPU)는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메모리와 그래픽카드 등 핵심 부품 가격이 끝없이 오르면서 고성능 제품을 선뜻 권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이밍 그래픽카드를 만들 여력마저 데이터센터와 워크스테이션(전문가용 고성능 PC) 쪽으로 쏠렸다. 수익이 적은 소비자용 제품보다 수익이 큰 기업용 제품을 만드는 편이 회사 성장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럼에도 게이머즈 데이는 게이머의 시선을 끌 만했다. 리사 수 CEO와 AMD 컴퓨팅·그래픽 부문을 총괄하는 잭 후인(Jack Huynh) 수석부사장이 참석해 게이밍 기술과 비전을 밝히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신제품 공개는 어렵더라도 경쟁력 있는 그래픽카드 가격 정책이나 경쟁사에 맞설 현실적인 기술 대안은 내놓으리라 봤다.

청사진이 없다면 게이머의 이야기라도 충분히 들을 것 같았는데...

AMD 게이머즈 데이는 당혹스러울 만큼 허술하게 흘러갔다. 게이머의 갈증을 풀어 줄 구체적인 하드웨어 로드맵도, 가격 장벽을 낮추겠다는 결단도 없었다. 게이밍 기술에 대한 고민과 시장 정상화를 위한 논의는 겉핥기식 덕담에 묻혀 자취를 감췄다.

리사 수 CEO는 “AMD 게이머즈 데이를 찾은 모든 분에게 감사의 이야기를 전한다. AMD는 게임을 정말 좋아한다. AMD는 한국을 사랑하고, 여러분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AMD가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라고 말했다.

잭 후인 수석부사장도 “AMD는 한국 게이머들을 사랑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게임을 하며 자랐는데,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 꼽자면 사람들이 하나의 커뮤니티로 모이게 해준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사명은 모두가 게임을 최대한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디서나, 누구나 게임을 즐기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AMD 게이머즈 데이 행사 연단에 오른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좌)와 잭 후인 AMD 수석부사장(우) / 출처=IT동아
AMD 게이머즈 데이 행사 연단에 오른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좌)와 잭 후인 AMD 수석부사장(우) / 출처=IT동아

두 사람은 행사 시작 40분이 지나서야 연단에 올랐다. 별도 발표 없이 짧은 인사를 마치고 곧바로 참석자와 질의응답에 들어갔지만, 이 시간마저 넉넉하지 않았다. 주최 측이 시간 부족을 이유로 질문 수를 제한한 탓에 게이머와 대화를 충분히 나눴다고 보기 어렵다. 답변도 원론에 머물렀다. 리사 수 CEO는 한국 게이머의 높은 열정과 기량을 치켜세우면서, 게이밍이 컴퓨팅 기술의 한계를 시험하는 촉매 역할을 해 왔다고 강조했다. PC와 콘솔, 휴대용 기기를 아우르는 게이밍은 여전히 AMD의 심장부라는 말도 덧붙였다.

잭 후인 수석부사장은 인공지능 열풍 속에서도 고성능 컴퓨팅을 원하는 모든 사용자를 만족시키겠다고 했다. 게이밍과 인공지능 기술의 융합을 이루겠다는 입장도 되풀이했다. 게이밍 PC 부품 가격 급등에 대해서는 일시적인 진통에 가깝고, 긴 안목으로 보면 게이밍 시장은 여전히 탄탄하다고 설명했다.

제품 가격과 수급난의 해결책은 ‘구형 플랫폼의 수명 연장’

현재 PC 시장은 AI 반도체에 수요가 몰리며 공급과 가격이 모두 흔들린다. 생산 역량이 AI 산업에 집중되자 메모리와 반도체 미세 공정(회로를 더 가늘게 새기는 제조 기술) 단가가 올랐고, 기업이 오른 비용을 제품 가격에 고스란히 얹으면서 소비자 부담도 커지는 추세다. 현장에서도 관련 질문이 나왔으나, 잭 후인 수석부사장은 해법으로 구형 AM4 플랫폼을 꺼내 들었다.

플랫폼은 CPU와 메인보드를 잇는 규격을 뜻한다. AMD의 현행 플랫폼은 라이젠 7000·9000 시리즈 CPU를 위한 AM5이고, 앞서 운영한 AM4는 라이젠 1000~5000 시리즈가 해당한다. AM5가 최신 규격인 DDR5 메모리를 쓰는 데 비해 AM4는 DDR4 메모리와 짝을 이룬다. 값이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러운 구형 플랫폼을 대안으로 내놓은 셈이다.

잭 후인 수석부사장은 메인보드와 메모리를 이미 가진 사용자가 손쉽게 업그레이드하도록 AM4 기반 3D V-캐시(3D V-Cache) 프로세서를 다시 선보였다고 소개했다. 3D V-캐시는 CPU 위에 대용량 임시 저장 공간(캐시)을 쌓아 올려 게임 성능을 끌어올리는 기술이다. 그는 플랫폼을 오래 지원하는 것이 게이머를 향한 AMD의 약속이라며, AM4를 10년 넘게 지원했듯 AM5도 10년 이상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AMD는 AI 산업에 의한 게이밍 인프라 문제에 대해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 출처=IT동아
AMD는 AI 산업에 의한 게이밍 인프라 문제에 대해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 출처=IT동아

게이머가 체감할 기술로는 AI 그래픽 보조 기능이나 3D 연산 성능 향상 대신 피델리티FX 초해상도(FidelityFX Super Resolution, 이하 FSR)를 언급했다. FSR은 낮은 해상도로 그린 화면을 고해상도로 키워 보여 주면서 게임 속도를 높이는 기술이다. AMD는 라데온 그래픽카드에 머신러닝(기계학습)을 도입한 데 이어, 2026년 안에 노트북 등 모바일 PC와 휴대용 게이밍 PC(게이밍 UMPC)로 머신러닝 그래픽 지원 범위를 넓힐 방침이다.

게임 개발 생태계 지원 계획도 밝혔다. 잭 후인 수석부사장은 “GTA 6를 개발하는 데 10년가량 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인공지능을 활용해 10년이 걸리던 대작 개발 기간을 3년~4년으로 단축시키는 것이 AMD 머신러닝의 목표”라고 말했다. 개발자의 의도를 지키면서 작업 속도를 끌어올리는 환경에 집중하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AMD는 게이밍 생태계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회사 안에서 게이밍 사업이 차지하는 몫은 크지 않다. 2026년 8월 4일(미국 기준) AMD가 공개한 회계연도 2026년 2분기 실적을 보면, AI 데이터센터 사업이 호조를 보이며 분기 총매출 115억 달러(약 17조 2500억 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51% 늘어난 수치다. 반면 게이밍 부문 매출은 7억 7900만 달러(약 1조 1685억 원)에 그쳤다. 전년 동기 11억 달러(약 1조 6500억 원)와 비교하면 31% 줄었고,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7% 안팎에 머문다. AI에는 적극적인 AMD가 게이밍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redb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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