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法] 보행자가 된 배달로봇, 교통사고에 대한 책임은?
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최근 눈길을 끈 교통사고 사례가 있었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서울의 한 골목에서 우회전하던 자동차 아래쪽에서 충격음이 들렸습니다. 운전자는 멈춰 주변을 살폈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 다시 출발했습니다. 그러자, 또 한 번 충격이 왔습니다. 차에서 내려 보니 오른쪽 아래에 있던 것은 최근 대학 캠퍼스나 대단지 아파트 주변에서 자주 눈에 띄는 '자율주행 배달로봇'이었습니다. 운전자가 첫 충돌 뒤 멈춰 있던 로봇을 다시 들이받은 것입니다.
이 사고는 보험 처리 과정에서도 논란이 됐습니다. 운전자는 로봇이 보행자로 취급돼 자동차 쪽 책임이 클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로봇을 미처 보지 못한 운전자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로봇이 보행자라는 설명만으로는 어디까지 양보해야 하고 사고가 나면, 누가 배상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통행할 때의 지위와 사고 후의 책임을 나누어 살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바퀴가 달렸지만, 법에서는 보행자
운행안전인증을 받은 실외이동로봇은 도로교통법상 보행자에 해당합니다. 취지는 단순합니다. 걷는 속도의 로봇을 차도로 내보내면 더 위험하니 보도로 올려 준 것이고, 보행자 지위는 사람 대접이 아니라 통행 허가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지위가 운전자의 의무로 곧바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 앞에서 일시정지해야 하고, 보도가 없는 골목에서는 보행자 옆을 서행하며 거리를 둬야 한다는 규정이 로봇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보도 통행을 허용하려는 취지라고 해서 보행자 보호 규정까지 비켜 간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적법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로봇을 보고도 기계라는 이유로 그대로 진행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 단속 사례는 확인되지 않지만, 조문대로라면 횡단 중인 로봇을 가로막은 운전자에게 사람을 막았을 때와 같은 범칙금과 벌점이 매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봇이 보행자로 취급된다는 이유만으로 사고 책임이 언제나 자동차 운전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 보행자와의 사고에서도 보행자의 과실 여부를 따져 책임을 나누는 만큼, 로봇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사람이 다치지 않고 로봇만 파손됐다면, 손해는 기본적으로 대물손해에 해당합니다. 결국 민법상 과실책임 원칙에 따라 운전자와 로봇 운영 주체가 각각 어떤 주의의무를 위반했는지, 그 잘못이 사고와 손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를 따져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합니다.
작아서 안 보인다는 위험, 누구의 몫인가
운전자에게 주변을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해서, 로봇의 낮은 높이에서 비롯되는 위험까지 모두 운전자에게 떠넘길 수는 없습니다. 로봇을 설계·운영하는 주체 역시 실제 도로 환경에서 차량 운전자가 로봇을 얼마나 쉽게 인지할 수 있는지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차량의 사각지대로 접근하지 않도록 주행 경로를 설계하고, 운전자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표시나 경고 수단을 갖추며, 충돌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는 진입을 멈추거나 차량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도록 운행 방식을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업의 배려 문제가 아닙니다. 도로교통법 제8조의2는 로봇 운용자에게 도로 상황과 로봇의 구조·성능을 고려해 다른 사람이나 차량에 위험과 불편을 주지 않도록 운용할 의무를 부과합니다. 통행을 허용받은 로봇에도 그에 맞는 안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작다는 사실 자체가 로봇 측의 과실은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운행 방식이 충돌 위험을 높였다면, 책임 판단에 반영해야 합니다. 사고 뒤에는 로봇이 어디서 진입했고 어떤 상황에서 멈췄는지 보여 주는 운행 기록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도로의 새 구성원이 된 배달로봇도 안전 책임을 함께 나눠야 합니다.
보행자라는 말이 과실까지 정하지는 않습니다
운전자가 가장 궁금한 것은 로봇이 먼저 잘못했을 때입니다. 로봇이 빨간불에 횡단하거나, 보도에서 갑자기 차도로 들어와도 자동차가 무조건 책임져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행자로 보호받더라도 로봇은 신호와 통행방법을 지켜야 하고, 운용자는 앞서 본 제8조의2에 따라 장치를 정확하게 조작할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사고가 나면 양쪽의 움직임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로봇은 어떤 신호에 진입했는지, 차량은 얼마나 빠르게 달렸는지, 운전자가 로봇을 언제 발견할 수 있었는지, 제동할 시간과 거리가 있었는지가 중요합니다.
로봇이 적색신호에 갑자기 들어왔고, 정상적으로 주행하던 운전자가 피할 수 없었다면, 운전자에게 과실이 없다고 판단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로봇이 이미 눈앞에서 건너고 있는데도 ‘내 신호가 파란불’이라며 그대로 진행했다면, 운전자에게도 책임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서울 골목 사고처럼 첫 충격을 느끼고도 확인 없이 다시 움직였다면, 그 부분은 운전자의 몫으로 남습니다.
마치며
전동킥보드는 편리했지만 아무 데나 세워지고 아무렇게나 달리다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됐습니다. 배달로봇이 같은 길을 가지 않으려면, 운영사는 보행자 지위에만 기대지 말고, 안전과 사고 설명에 먼저 나서야 합니다. 로봇에게 보도를 내준 것은 사회의 선택입니다. 그 선택의 비용을 보행자라는 이름으로 운전자에게 떠넘겨서는 안 됩니다. 배송이 통행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