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소비자의 선택권 위협하는 디지털 함정 “다크패턴” 걷어낸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다크패턴(Dark Pattern)은 사용자 조작성(UI)과 사용자 경험(UX)을 교묘하게 조작해 소비자가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하는 설계 기법이다. 착각이나 부주의를 틈타 사업자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게 만든다. 쇼핑몰에서 마감 임박 카운트다운을 띄워 구매를 재촉하거나, 최저가인 줄 알고 결제하려다 숨겨진 배송비가 붙어 가격이 뛰는 게 흔한 사례다.
일반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 겪는 다크패턴도 불쾌하지만, 금융 상품 가입·해지 과정에서 겪는 건 훨씬 심각하다. 금융사는 상품을 속속들이 알지만, 대다수 소비자는 제한된 정보만으로 판단해야 한다. 디지털 환경이 정보 격차를 줄여줄 것 같았지만, 오히려 일부 사업자들은 시스템을 악용해 소비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특히 화면이 작은 모바일 기기에서는 정보를 꼼꼼히 읽기보다 눈에 띄는 버튼이나 강조된 문구에 의존해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강하다.
금융 분야 다크패턴은 자칫 심각한 금전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당국이 본격적으로 개입에 나선 이유다. 2026년 4월부터 시행될 '온라인 금융상품 판매 관련 다크패턴 가이드라인'은 그동안 디지털 금융의 사각지대에 숨어 소비자를 기만하던 관행을 차단하겠다는 금융당국의 의지를 보여준다.
오래된 규제가 디지털 금융의 발전을 반영하지 못했다
금융 거래의 중심축이 오프라인에서 모바일과 PC 등을 활용한 비대면 채널로 이동했다. 하지만 법과 제도는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현행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금소법)은 온라인 판매에 대해서도 설명의무나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등을 포괄적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화면 구성이나 클릭 유도 방식 등 세부적인 사용자 조작성ㆍ경험(UIㆍUX) 영역까지 규제하기에는 구체성이 부족했다.
기존 전자상거래법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다크패턴 규제 역시 한계가 뚜렷했다. 일반 쇼핑몰과 달리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는 적합성 평가나 투자 권유처럼 특수한 절차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가령 공정위가 금지하는 재고 부족 알림 같은 유형은 금융상품 판매와는 거리가 멀다. 금융업의 특수성을 반영한 맞춤형 규제나 가이드라인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해외 금융 선진국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유럽연합(EU)은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해 온라인 플랫폼의 다크패턴을 금지했고,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도 다크패턴을 불공정 행위로 규정해 제재한다. 우리 금융당국의 이번 조치는 글로벌 흐름에 발맞추는 동시에, 점차 지능화되는 온라인 눈속임 수법으로부터 국내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선택이다.
‘4대 범주, 15개 유형’의 다크패턴 막겠다
가이드라인은 행위의 핵심적 작용 방식과 금융소비자 피해 양태·효과에 따라 다크패턴을 크게 4개 범주, 15개 세부 유형으로 구분하고 이를 금지한다. 적용 대상은 금소법상 금융상품판매업자, 자문업자, 혁신금융서비스(금소법 관련) 지정 핀테크업자 등 금소법 적용 사업자다. 금융회사와 연계하거나 대리로 상품을 광고·권유하는 온라인 플랫폼과 핀테크 업체도 포함된다.
금융당국은 다크패턴 가이드라인의 일반원칙을 제시했다. 핵심은 금융소비자가 금융상품 거래 조건을 정확히 이해하고 의사결정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선 금융상품의 표시 사항 및 정보는 소비자가 의미를 명확하고 쉽게 파악하도록 작성해야 한다. 제한된 화면에서 선택할 때 소비자 의사를 왜곡하거나 침해하는 다크패턴 행위는 금지된다. 이에 따라 금융 소비자의 오인, 압박, 방해를 유발하는 행위를 4가지 범주, 15개 세부 유형으로 나눴다.

첫 번째는 오도형이다. 거짓 정보를 주거나 화면 구성을 비틀어 착각하게 만드는 행위다. 사업자에게 유리한 선택지는 크고 화려하게, 불리한 선택지는 배경색과 비슷하거나 아주 작게 표시하는 식이다. 속임수 질문도 여기 포함된다. 예컨대 카드 발급을 중단하려는데 "정말 혜택을 포기하시겠습니까?"라고 묻거나, 예·아니오 버튼의 위치를 교묘하게 배치해 의도와 반대로 누르게 만드는 수법이다. 펀드 가입 시 재투자 옵션을 미리 체크해두는 특정 옵션 사전선택도 제한된다.
두 번째는 방해형이다. 소비자가 합리적 선택 또는 계약 철회를 어렵게 만드는 행위다. 가입은 터치 몇 번으로 끝나는데, 해지는 숨겨진 메뉴를 찾아 들어가야 하거나 반드시 상담원과 통화해야 한다면 '취소·탈퇴 등의 방해'에 해당한다. 통합 앱에서는 가입이 쉬웠는데, 막상 특정 서비스만 해지하려니 기능이 없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격 비교를 어렵게 하거나(가격비교 방해),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과도하게 클릭을 많이 하게 만드는(클릭 피로감 유발) 행위도 제재 대상이다.

세 번째는 압박형이다. 심리적 압박을 가해 원치 않는 행동을 강요하는 것을 뜻한다. 결제 과정 중에 갑자기 "이 상품도 같이 가입하면 좋아요"라며 팝업을 띄우는 기습적 광고, "지금 1000명이 이 상품을 보고 있어요"라며 조바심을 내게 하는 다른 소비자 활동 알림 등이 해당한다. 거절했는데도 팝업을 계속 띄우며 귀찮게 만든 후 의도치 않은 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반복 간섭도 포함된다.
네 번째는 편취 유도형이다. 비합리적 지출을 유도하는 인터페이스 조작이 해당한다. 대표 사례가 순차공개 가격책정이다. 첫 화면에서는 "최대 금리 10%만"이라는 문구를 크게 보여주고, 이후 가입 절차를 진행하면서 까다로운 우대 조건을 하나씩 꺼내 결국 소비자가 예상치 못한 낮은 금리를 받거나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행위다.
2026년 4월 이후, 금융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온라인 금융상품 판매 관련 다크패턴 가이드라인은 금융회사의 자체 전산 개발, 내규 정비 등 준비 기간을 거쳐 2026년 4월부터 시행된다. 금융당국은 신설 가이드라인인 만큼 금융권의 자율 준수를 유도하면서 이행 상황을 점검해 나갈 방침이다. 필요에 따라 금융감독원이 지도·감독 강화에도 나설 예정이다.
가이드라인 준수 실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을 통한 법제화 여부도 검토한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이므로 실효성을 확인한 뒤 필요하면 법률로 강제력을 부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가이드라인 시행으로 금융소비자에게 미칠 긍정적 영향은 무엇일까? 우선 금융 취약계층 보호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나 금융 지식이 부족한 소비자들이 다크패턴으로 인한 피해를 보는 사례가 줄어들 것이다. 복잡한 금융 용어나 제한된 화면 구성으로 인한 혼란이 감소하면서 소비자의 의사결정 환경도 개선될 전망이다.
금융상품 해지 절차도 간소화될 가능성이 열렸다. 그간 온라인 금융 상품에 쉽게 가입해도 해지는 고객센터 전화나 서면 신청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랐다. 가이드라인 시행 후에는 가입 절차만큼 해지 절차도 간편해지면서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이 보장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상품 가격 투명성 향상도 기대된다. 숨겨진 수수료나 조건부 금리 등이 명확히 공개되면서 소비자가 상품을 비교하고 선택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파악하게 된다. 순차공개 가격책정 등이 금지되면서 실제로 받는 금리, 수익률 등이 정확히 표시될 것이다.
금융 환경이 디지털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해졌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금융상품 판매 다크패턴을 겨냥한 보호 조치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만 진정한 소비자 보호는 규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금융회사의 자발적 노력, 소비자의 인식 제고, 당국의 지속적 감독이 맞물려야 비로소 가능하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redbk@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