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영업人] 플리토 김재훈 팀장이 개척한 ‘언어 데이터 세일즈’의 길

남시현

※ 21세기는 기술경쟁의 시대입니다. 수많은 빅테크 기업이 지금 이 순간도 기술과 제품을 놓고 전 세계 산업 현장에서 경쟁합니다. 그리고 이 경쟁의 현장이 바로 기술영업입니다. 기술영업은 기술적 이해가 필요한 영업으로, 주로 기업 대 기업 간 영업에서 이뤄집니다. 기술영업 전선에서는 기업의 기술력과 실력으로 경쟁하고, 그 결과가 IT 기업이 움직이는 원동력이 됩니다. 오늘날 현장에서 기술영업人들이 어떻게 경쟁하는지, 기술과 기업, 사람을 들여다보겠습니다.

[IT동아 남시현 기자] 오늘날 AI라고 하면 챗GPT 같은 대형언어모델(LLM)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고, 실제로도 많은 AI가 LLM 모델을 기반으로 구현된다. LLM의 발전이 곧 AI의 발전이다보니 자연스레 ‘언어데이터’가 핵심 자산으로 떠올랐다. LLM 데이터의 약 절반은 언어 기반의 일반 지식 데이터고, 25%는 수학 및 추론, 25%는 코드 및 다국어 데이터 등으로 구성된다. 초창기에는 가능한 많은 매개변수와 데이터를 확보해 성능을 끌어올리는 방식이 대세였지만, 잦은 환각 현상과 데이터 비대화를 막기 위해 지금은 고품질의 정련된 언어 데이터를 활용하는 게 기본이다.

이에 따라 AI 학습용 언어 데이터를 취급하는 기업, 특히 기존 번역 업계에 있던 기업들이 AI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트랜스퍼펙트는 2020년 ‘데이터포스’라는 데이터 브랜드를 출범하며 AI 언어 데이터 시장의 강자로 등극했고, 영국의 RWS나 캐나다의 텔러스 디지털도 번역에서 데이터 기업으로 변모했다. 스타트업으로는 스케일AI나 디파인드.AI, LXT 등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국어와 다국어 데이터 측면에서는 플리토(Flitto)가 중심에 있다.


김재훈 플리토 데이터 세일즈 팀장을 만났다 / 출처=IT동아
김재훈 플리토 데이터 세일즈 팀장을 만났다 / 출처=IT동아

플리토는 AI 학습을 위한 국내 유일의 글로벌 플랫폼 기반의 데이터 기업이다. 플리토의 번역 커뮤니티는 전 세계 173개국에서 1400만 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한국어와 영어를 포함한 수많은 다국어가 플리토의 언어 데이터로 축적되고 있다. 김재훈 플리토 데이터 세일즈 팀장을 만나 플리토의 언어 데이터 사업에 대한 담화를 나눠봤다.

집단지성 번역에서 AI용 언어데이터 기업으로 발돋움한 ‘플리토’

김재훈 팀장은 경제학과를 전공한 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공공조달사업을 지원하는 업무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케이에스아이라는 기업에서 ITS(지능형 교통 시스템)의 정부조달 사업을 총괄하다 처음 챗GPT를 접한 뒤 AI의 가능성에 매료됐다. 김재훈 팀장은 “데이터 관련 경력은 약 5년 정도고 데이터가 분야를 막론하고 AI 사업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2023년 5월 플리토에 합류했다. 플리토를 선택한 이유는 사업모델 특례상장 1호라는 상징성, 그리고 LLM의 본질인 언어데이터를 다룬다는 점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김재훈 팀장은 경제학 전공이지만 데이터 관련 기술 영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열고 있다 / 출처=IT동아
김재훈 팀장은 경제학 전공이지만 데이터 관련 기술 영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열고 있다 / 출처=IT동아

비전공자 출신임에도 데이터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됐다. 김재훈 팀장은 “데이터 관련 경력이 없어 처음에는 적응이 어려웠다. 하지만 영업과 수익의 관점에서는 나름의 감각이 있었고, 금융이나 통계, 회계 관련 지식과 정부사업에 대한 경험은 있었다. 이에 데이터 연구 자료와 사업을 많이 들여다보고 사내 데이터 전문가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극복했다”라고 말했다.

현재 플리토의 구성원은 약 200여 명이며, 데이터 비즈니스 사업부와 AI 동시통역 솔루션 사업부, 이미지 사업부, 그리고 자체 개발 플랫폼 및 운영 프로덕트 오너팀, 개발팀, 로컬라이제이션(전문번역) 팀으로 나뉜다. 인원은 데이터 비즈니스 사업부의 비중이 가장 높으며 김재훈 팀장 역시 데이터 비즈니스 사업부에서 정부사업 관련 대응을 담당하고 있다. 김재훈 팀장은 “데이터 비즈니스 사업부는 국내외 빅테크 및 AI 개발사와의 사업 협력은 물론 국립국어원, 국가 AI파운데이션 모델 같은 정부 사업도 책임진다”라고 소개했다.

플리토의 데이터 영업, 찾아다니는 단계 넘어 찾아오는 단계로


이정수 플리토 대표가 번역 기업에서 데이터 전문 기업으로서의 전략을 담은 ‘플리토 2.0’을 발표 중이다 / 출처=IT동아
이정수 플리토 대표가 번역 기업에서 데이터 전문 기업으로서의 전략을 담은 ‘플리토 2.0’을 발표 중이다 / 출처=IT동아

이어서 플리토 데이터 사업화의 전반적인 흐름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김재훈 팀장은 “플리토는 1400만 명 회원의 집단지성 번역 커뮤니티에서 확보한 언어 데이터를 가공, 수집, 정제해 국내외 빅테크 기업과 정부기관 등을 상대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데이터 종류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음성, 이미지가 포함되며, LLM 학습용 고도화 데이터도 있다”라면서, “기본적으로 데이터는 자체적으로 보유한 자산에서 구축하지만 최근에는 법률이나 회계 등 전문 데이터에 대한 수요도 있어 외부 데이터를 조달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데이터도 전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김재훈 팀장은 “데이터를 납품할 때 이를 활용해 개념증명(PoC)을 함께 진행해 데이터 성능을 판단한다. 데이터가 예상했던 성능이나 기준에 미달하면 물량을 늘리거나 새로 검수해 제공한 데이터를 다듬는다. 또한 최신성 데이터라고 하여 시대 흐름이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는 데이터는 장기적인 계약을 통해 계속 업데이트한다”라고 말했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구축하는데 드는 비용은 명백한데, 이것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는 것은 데이터 세일즈에 달렸다. 김재훈 팀장은 “데이터 가격 협상도 세일즈팀이 진행하며 착수할 때 기대 성능과 활용 조건, 품질을 따져서 계약서를 쓴다. 가격 책정은 데이터를 투입할 프로젝트의 전체 예산을 확인하고, 고객사가 원하는 기술 목표를 고려한 뒤 제공할 수 있는 데이터의 범위와 품질을 제시한다. 제공한 이후에도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추가로 제공한다. 이 과정을 거치며 제공한 데이터의 수준을 바탕으로 가격이 책정된다”라고 말했다.


플리토가 지난 10월 28일 경주서 개최된 APEC CEO 서밋 코리아 2025에서 라이브 트랜스레이션 기능을 통해 국내외 인사들에게 번역본을 제공했다 / 출처=플리토
플리토가 지난 10월 28일 경주서 개최된 APEC CEO 서밋 코리아 2025에서 라이브 트랜스레이션 기능을 통해 국내외 인사들에게 번역본을 제공했다 / 출처=플리토

데이터 세일즈 직군에게 요구되는 전문성, 그리고 세일즈는 어떻게 진행될까. 김재훈 팀장은 “데이터 세일즈팀이 고객과의 접점이긴 하지만 고객사를 만날때는 세일즈팀과 엔지니어가 함께 간다. 세일즈팀은 계약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 데이터의 종류와 형태 등을 소개하고, 엔지니어가 AI의 구축 방안과 적용 방식 등을 논의한다. 엔지니어들은 AI 모델 구축 경력자나 컴퓨터 공학 전공자 등으로 구성돼 있다”라고 소개를 시작했다.

고객과의 접점은 직접 만드는 자리도 있지만, 최근에는 찾아오는 고객사가 많다고 말한다. 김재훈 팀장은 “최근 들어 플리토의 사업 영역이 잘 알려져서 고객사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고, 라이브 트랜스레이션을 제공하는 행사나 박람회장에서 접하고 찾아오는 기업들도 있다. SBA 트라이에브리씽, 한국 애플 생태계 콘퍼런스(KWDC 2025)에서 데이터, AI 동시통역팀이 함께 부스로 참여하기도 했다”라면서, “해외 기업은 아웃바운드가 기본이고, 우리가 지원한 솔루션을 보고 인바운드로 찾아오는 기업들도 꽤 많다. 아웃바운드로 지원하는 경우 AWS 서밋 서울이나 인텔 AI 서밋 같은 대규모 행사 사례를 바탕으로 소개한다”라고 말했다.


기관의 경우 ‘언어 데이터’ 자체보다는 이를 활용한 솔루션이나 완성된 프로젝트 형태를 요구하는 편이다 / 출처=플리토
기관의 경우 ‘언어 데이터’ 자체보다는 이를 활용한 솔루션이나 완성된 프로젝트 형태를 요구하는 편이다 / 출처=플리토

데이터에 대한 기업과 기관의 접근법이 다르다는 점도 설명했다. 김재훈 팀장은 “기관에서 하는 사업은 데이터 자체보다는 기술까지 완성된 경우를 원한다. 따라서 독자적으로 데이터 제공이나 영업을 하기보단 파트너사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접근한다. 이 방식이 통하려면 파트너사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고객이 원하는 모델이나 플랫폼, 우리 컨소시엄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있다가 시의적절하게 제안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기업에 대해서는 “이제 많은 AI 구축 기업들이 RAG(검색증강생성)보다는 세분화하고 전문적인 데이터를 더 원한다. 이런 추세를 감안해 주로 대학 연구팀과 긴밀하게 협업한다. 대표적으로 김영빈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교수와 함께 인공지능 기술 고도화 사업을 추진했고, 한국코퍼스언어학회 회장을 겸하고 있는 김한샘 연세대학교 언어정보연구원 교수와 기계번역 관련 강의를 협업 중”이라면서 “국립국어원의 한국어-외국어 병렬 말뭉치 구축 사업도 5년 연속 진행 중이다. 이런 이력이 쌓이면서 언어 데이터 기업으로는 확고한 입지를 가져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플리토는 다른 기업에는 없는 언어 데이터에 집중하며, 이 입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국내 AI 스타트업, 기업들과도 협력한다 / 출처=IT동아
플리토는 다른 기업에는 없는 언어 데이터에 집중하며, 이 입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국내 AI 스타트업, 기업들과도 협력한다 / 출처=IT동아

다행히 한국어 언어 데이터라는 특수 분야를 다루다 보니 동종 업계는 있어도 경쟁사라고 볼만한 기업은 없다. 김재훈 팀장은 “AI 데이터 동종 업계로는 크라우드웍스, 셀렉트스타, 에이아이웍스, 알체라 등이 있다. 다만 언어만 집중하는 기업은 플리토 밖에 없어서 직접적인 경쟁 관계는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외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업 사례나 프로젝트 진행 방식을 공유한다거나, 특정 고객사와의 데이터 운용 방식 등을 논의하고 서로 역제안을 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 과제 등은 같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김재훈 팀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과 관련해 업스테이지의 컨소시엄에 참여 중이며,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초거대 AI 확산 생태계 조성사업도 셀렉트스타 컨소시엄으로 참여 중이다. 플리토가 단독으로 모든 것을 진행할 수는 없으니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우고, 다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할지 늘 고민한다”라고 덧붙였다.

“데이터 세일즈, 분야에 대한 이해와 꾸준한 학습 필요해”

기술적인 부분을 엔지니어가 담당하더라도, 이것을 사업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은 오롯이 데이터 세일즈 팀의 역량에 달렸다.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김재훈 팀장은 “접해보지 않은 분야에 대해 꾸준하고 성실하게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분야의 어떤 기업을 만날지도 모르며, 고객이 어떤 데이터를 요구할지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어떤 데이터를 갖췄는지 폭넓게 이해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만큼은 전문가라는 인식을 갖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데이터 세일즈는 무형의 자산을 유형의 가치로 만드는 일이다 / 출처=IT동아
데이터 세일즈는 무형의 자산을 유형의 가치로 만드는 일이다 / 출처=IT동아

이어서 “고객사는 때때로 데이터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할 수 있으며, 회사가 보유한 데이터의 가치와 범위를 고객사가 원하는 데이터와 맞춰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고객의 목소리나 의견은 고려하되 자신만의 주관을 바탕으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무형의 가치인 만큼 자기 주관을 가지고 영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재훈 팀장은 “올해 플리토는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했고, 여기에 기여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내년에는 지금의 사업과 더불어 새로운 분야에도 더 관심을 갖고 추진해보려 한다. 예를 들어 업스테이지의 국가 AI파운데이션 컨소시엄 중에 있는 금융결제원, 뷰노, 로앤컴퍼니, 금융결제원 등에서 금융, 의료, 법률, 제조 등 도메인 특화 sLLM(소형 언어 모델)을 만들려 한다. 이런 분야에도 협력해 지원 분야를 넓히고 강점을 가져가고 싶다. 내년에는 AI 에이전트 관련 정부정책도 나올 텐데 이런 부분으로도 관심이 간다”라면서, “플리토가 한국을 넘어 글로벌 언어데이터 전문 기업으로서 AI 산업의 구심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다짐을 밝혔다.

IT동아 남시현 기자 (sh@itdonga.com)

IT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