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法] 고령 운전자·보행자 시대 피해자 보호를 위한 방안
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이 가운데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는 12년 연속 감소했지만, 고령 운전자가 낸 사망사고는 3년 연속 증가세입니다. 또 보행 사망자 중 어린이 비중은 2%에 불과한 반면, 고령자 비중은 67%에 달합니다. 전체 교통사고 건수와 사망자는 감소 추세지만, 고령 운전자 사고와 고령 보행자 사망만은 역주행하는 상황입니다.

고령자 사고 예방 단계의 사각지대
교통 당국은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게 3년마다 인지선별 검사와 교육을 요구합니다. 이 제도는 겉으로 보기에 촘촘해 보입니다. 그러나 합격률이 99%를 넘는 검사는 사실상 ‘통과 의례’에 가깝습니다.
고령 운전자의 사고를 막아줄 안전 장치도 필요합니다. 급발진 사고를 막기위해서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설치 의무화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운전면허의 자진반납률이 2%대로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유의미한 반납율 도출을 위해 신체 노화에 따른 조건부 운전면허도 시행해야 합니다.
보호구역 정책의 불균형도 해소해야 합니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은 단속 장비와 예산, 정치적 관심의 집중으로 강력한 보호를 받습니다. 또 스쿨존 내 사고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12대 중과실을 넘어 특가법에 따라 가중처벌까지 합니다.
반면 노인보호구역(실버존)은 지정 숫자도 부족하고, 과속 단속 카메라·스마트 횡단보도 의무 설치 규정도 미비합니다. 또 실버존 내 사고는 12대 중과실에 포함되지 않아 보험처리로 끝나고 형사처벌 조차 받지 않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 '노인보호구역' 모두 보호구역이라고 부르지만, 형사·행정적인 처리는 전혀 다릅니다.
손해배상 단계에서의 구조적 불리
교통사고 손해배상에서 핵심은 ‘일실수입’과 ‘가동연한’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령 피해자는 이미 정년을 지났거나 소득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장래 소득 손해를 사실상 인정받지 못합니다.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법원은 가동연한이 지났다고 판단하기에 무과실 기준 위자료 1억 원 산정이 전부입니다. 요즘 고가의 자동차가 몇억이나 하는 것에 비하면 고령 피해자는 고가의 차보다 보상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결국 젊은 피해자는 ‘앞으로 벌 수 있었던 돈’을 근거로 두텁게 배상받는 반면, 고령 피해자는 ‘그 나이에 더 뭘 바라느냐’는 시선 속에 낮은 합의금에 내몰립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방안
먼저 사고 예방 단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합니다. 합격률 99%의 인지선별검사는 폐지 수준의 전면 개편이 필요합니다. 현행 75세 이상 면허 갱신 3년 주기를 1년으로 단축하고, 실제 도로 상황을 반영한 시뮬레이터 검사와 실차 주행 평가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일정 연령 이상에게는 주간 운전만 허용하거나, 고속도로 진입을 제한하는 조건부 면허 제도도 도입해야 합니다.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의 신차 의무 장착과 기존 차량 보조금 지원, 자진 반납자에 대한 대중교통 무료 이용권 확대 등 당근과 채찍을 함께 써야 2%대에 그친 면허 반납률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보호구역 정책의 불균형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실버존 내 사고를 12대 중과실에 포함하는 법 개정이 시급합니다. 스쿨존과 동일하게 과속 단속 카메라, 스마트 횡단보도, 과속방지턱 설치를 의무화하고 예산도 대등하게 배정해야 합니다. 이름만 같은 보호구역이 아니라, 실질적 보호조치가 동등해야 진정한 보호구역입니다.
손해배상 구조의 연령 차별도 개선해야 합니다. 대법원 판례로 정해진 65세 가동연한을 입법으로 70세 이상으로 상향하거나, 실제 경제활동 여부를 개별 심사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또한 고령 피해자에 대한 위자료 기준을 현실화해야 합니다. 고가의 차량 수리비보다 인간의 존엄이 가볍게 취급되는 현행 구조를 더는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결론
최근 테슬라 FSD의 한국 적용으로 자율주행과 관련한 많은 이슈가 생성합됩다. 자율주행에 밀려날 인간 운전자의 처지는 느리고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도로에서 소외받는 고령자의 모습과 비슷해보입니다. 기술은 오직 속도와 효율만을 추구하지만, 법과 사회는 느리고 약한 존재의 존엄까지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교통안전 체계는 여전히 '젊은 사회'에 머물러 있습니다. 고령 운전자 사고예방은 형식적이고 고령 보행자 보호는 차별적이며, 사고 후 배상마저 연령에 따라 불평등합니다. 초고령 사회로 변화된 교통 환경에 맞춰 신속하게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할 때입니다.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