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DP 울산] 전통 칠보 기업 남정, ‘K럭셔리’ 도약 위한 투자 유치 전략은?

김영우 pengo@itdonga.com

[IT동아 x 울산시 x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울산대학교에 울산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를 마련했습니다. 유망한 중소기업·스타트업의 디자인 경쟁력 강화를 돕는 곳입니다. IT동아는 울산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사업 선정 기업을 소개하고 이들의 스케일업을 지원합니다.

클로이수 브랜드를 통해 선보인 다양한 형태의 칠보 제품 / 출처=남정
클로이수 브랜드를 통해 선보인 다양한 형태의 칠보 제품 / 출처=남정

[IT동아 김영우 기자] ‘명품’이라 불리는 브랜드는 뭐가 다른 걸까? 제품 자체의 개성적인 디자인이나 높은 품질은 기본이고, 여기에 이른바 ‘헤리티지(Heritage)’라고 하는 역사와 전통, 그리고 정체성 및 스토리까지 갖춰야 비로소 명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전통 공예 역시 명품이 될 수 있는 개연성은 갖추고 있다.

실제로 전통 공예를 현대적 명품으로 재해석하고자 시도한 브랜드가 브랜드가 적지않다. 그러나 실제로 성공하는 사례는 드물다. 전통 기법을 유지하면 생산성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반대로 대중화에 초점을 맞추면 정체성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한국 칠보 브랜드 ‘클로이수(Cloisoo)’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남정의 김홍범 대표는 이 문제를 정면 돌파하고 있다. 내년 6월에는 서울 모 유명 백화점 명품관에 독립 매장도 오픈할 계획이다.

다만 백화점 매장 오픈 및 운영에는 적잖은 자금이 든다. 이를 위한 본격적인 투자 유치를 앞둔 시점에서 김홍범 대표는 울산시와 울산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가 지원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를 통해 유력 벤처캐피탈(이하 VC)인 넥스트지인베스트먼트 소속의 투자 전문가, 이세종 상무의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1400년 칠보 역사의 뿌리, 울산에서 찾다

김홍범 대표는 멘토링 자리에서 클로이수의 역사와 현재 상황을 설명하며 운을 띄웠다. 클로이수의 뿌리는 1968년 창덕궁 낙선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가 귀국 후 낙선재에서 문화 활동을 시작하면서 칠보 작업도 진행했고, 고(故) 김익선 고문이 이 작업에 참여했다. 그의 배우자인 이수경 명인이 왕실 칠보 기법을 전수받았다.

김익선 고문과 이수경 명인 부부는 초기에는 서울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하지만 고문서를 통해 약 1400년 전 신라시대에 칠보가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곳이 바로 울산지역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칠보의 뿌리와 기원을 찾아 그들은 울산으로 거점을 옮기며 전통 칠보의 명맥을 이어왔다.

칠보 작업에 임하는 이수경 명인 / 출처=남정
칠보 작업에 임하는 이수경 명인 / 출처=남정

김홍범 대표는 김익선 고문과 이수경 명인의 아들이다. 부모님의 칠보 작업을 보며 자란 그는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가업에 뛰어들었다. 2002년 주식회사 남정을 설립했고, 2014년에는 클로이수 브랜드를 론칭했다. 23년의 업력 동안 그는 단순한 2세 경영인이 아닌, 전통 공예를 현대적 명품으로 재창조하는 혁신가로 거듭났다. 현재도 울산 남구에 본사와 전시장을 두고 칠보의 본향에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홍범 대표는 그동안 자본보다 시간과 노력으로 단계를 밟아왔으며, 이제 1단계가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내년 초 착공해 6월 오픈 예정인 서울 모 유명 백화점내 명품관 매장은 본격적인 도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브랜드 리뉴얼, 인력 충원, 매장 인테리어 등 모든 준비를 진행 중이다.

세 번의 위기, 그리고 돌파

다만 여기까지 오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김홍범 대표는 사업을 이어오며 세 번의 큰 위기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첫 번째는 2014년 아버지 김익선 고문의 별세였다. 당시 부모님이 모두 작품 활동에 참여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생산 체계가 흔들렸다. 김홍범 대표는 작품 활동을 분업화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이를 극복했다.

두 번째 위기는 2016년 이전까지 명확하지 않았던 타겟 고객 문제였다. 저가부터 고가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다 보니 브랜드 정체성이 흐려졌다. 김홍범 대표는 과감하게 저가 제품을 정리하고 고급화 전략으로 전환했다. 작업장도 더 나은 환경으로 이전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했다.

세 번째이자 가장 큰 위기는 코로나19였다. 월매출이 90%나 급감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정부 지원금을 받아도 계속 소모되기만 했다. 이때 김홍범 대표는 VIP 고객 유치 계획을 개시했다. 소수의 상위 5% 고객을 대상으로 한 전시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틀 만에 잠실이나 부산에서 억대 매출이 나왔고, 어설픈 명품 브랜드는 압도할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김홍범 대표는 VIP 클래스를 통해 얻은 피드백을 철저히 적용하면서 회사의 모든 면모가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품질이 올라가고 진짜 명품을 원하는 고객층을 확보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 극복 경험은 그에게 확신을 심어줬다. 현재는 생산 매뉴얼, 마케팅 매뉴얼이 모두 갖춰졌고, 어디에 어떻게 해야 매출이 나는지 파악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도약 앞두고 커지는 고민

이렇게 세 번의 위기를 극복하며 클로이수는 탄탄한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내년 백화점 명품관 매장 오픈을 위해서는 최소 수십억 원의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홍범 대표의 고민은 자금 조달이었다. 매장 오픈과 운영 자금 확보를 위해 별도 법인(주식회사 서진)을 설립했지만, 본격적인 VC 투자는 받지 않은 상태다.

김홍범 대표는 앤젤 투자와 엑셀러레이터 자금은 받았고 각종 IR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VC 투자는 매장 오픈 후 실적이 안정된 다음에 받는 것이 전략적으로 맞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가 울산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의 스케일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도 이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을 찾기 위함이었다.

울산에 위치한 본사 매장을 소개하는 김홍범 대표 / 출처=남정
울산에 위치한 본사 매장을 소개하는 김홍범 대표 / 출처=남정

명품과 VC 투자사이의 미스매치(부조화) 극복해야

이세종 상무는 김홍범 대표의 IR 자료를 검토한 후 하나씩 질문을 던지며 현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먼저 명품 사업과 VC 투자의 본질적인 미스매치(부조화)에 대해 설명했다.

이세종 상무는 VC가 보통 6~7년을 보고 빠른 엑시트(투자회수)를 원하는 반면, 명품은 전통적으로 50년, 100년을 바라보고 하는 사업이라는 점을 짚었다. 이 부분에서 맞지 않는 지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명품은 희소성과 브랜드 통제력이 핵심이기 때문에 샤넬, 에르메스 같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대부분이 비상장이거나 가족 회사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세종 상무는 ‘에르메스’도 상장했지만 가족 지분이 70% 이상이며, '루이비통'도 LVMH라는 홀딩스(지주회사)를 세워 브랜드를 지배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명품 브랜드는 100년, 200년 가업을 이어온 경우가 많아 VC가 이런 장기 투자를 견디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남정의 투자 유치 전략은 어떻게 세워야 할까? 이세종 상무는 두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첫째는 글로벌 명품 그룹이나 대기업의 M&A를 목표로 하는 것이고, 둘째는 김홍범 대표가 원한다고 밝힌 IPO(기업공개) 모델이다. 다만 IPO 모델로 가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조언했다.

IPO 위한 세 가지 핵심 과제

이세종 상무는 IPO를 전제로 VC 투자를 받기 위한 구체적인 조언을 전했다. 첫 번째는 법인 구조 정비다. 현재 김홍범 대표는 생산 및 IP를 담당하는 남정과 유통 및 매장 운영을 담당하는 서진 두 개의 법인을 운영 중이다. 2개 회사는 연결재무제표상 완전 독립회사이며, 운영상 어쩔 수 없이 100% 지분 독립된 구조로, VC 입장에서는 선호하지 않는 형태라는 것이다.

이세종 상무는 VC가 투자한 자금이 다른 법인으로 유출되는 구조를 싫어한다고 지적했다. 두 법인이 분리돼 있으면 남정에 투자했는데 이익이 서진으로 공유되는 형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두 법인을 합병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두 번째는 매출 규모와 스케일업 가능성이다. 이세종 상무는 코스닥 상장을 위해서는 매출에 있어서는 100억이상&기준시가총액300억 이상이 최소조건이지만 전통제조업은 IT, 테크 등 기술기업에 비해 밸류를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받는 경우가 많아 500억원 이상의 매출 정도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VC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매년 성장을 통해 5~6년 후 상장 가능한 매출을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로이수의 현재 연매출은 수십억 원 수준이다. 내년 백화점 매장 오픈으로 100억 원대의 연매출을 기대하고 있지만, IPO를 위해서는 훨씬 더 큰 성장이 필요하다. 이세종 상무는 매장이 늘어나도 생산량이 따라주지 못하면 확장성이 떨어진다며, 명품은 수작업 위주라 생산 시스템의 산업화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세 번째는 매출 구조의 안정성이다. 클로이수의 현재 매출은 전시 및 팝업 비중이 60% 정도로 높다. 이세종 상무는 투자자들이 정기 매출을 선호한다며, 전시 매출은 일회성이라 투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백화점 매장이나 멤버십 등을 통한 상설 매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티스트 브랜드 넘어 산업화 브랜드로 확장 필요

이세종 상무는 또 하나의 과제를 지적했다. 클로이수가 이수경 명인 중심의 아티스트 브랜드의 한계를 넘어 산업 브랜드 범위로도 확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세종 상무는 창업자나 아티스트 중심 구조의 회사는 투자를 받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 명의 이름으로 하는 브랜드는 사업 확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고가/소량생산의 이른바 아티스트 제품군과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산업화 제품군으로 이원화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김홍범 대표는 이미 이 부분을 인식하고 브랜드 리뉴얼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억 단위 자금을 들여 전문 업체와 함께 브랜드 컬러, 로고, 패키지, 홈페이지를 모두 새롭게 바꾸고 있으며, 하나의 통일된 브랜딩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세종 상무는 생산 시스템의 분업화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숙련자와 초급자를 적절히 배치해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을 이미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산업화 가능한 제품군으로 더 확장하려면 장인 아카데미 같은 교육 시스템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클로이수 칠보 제품은 정교한 수작업 공정을 거친다 / 출처=남정
현재 클로이수 칠보 제품은 정교한 수작업 공정을 거친다 / 출처=남정

우회상장, 멤버십 고도화도 검토해볼 만

멘토링 후반부에는 김홍범 대표가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모든 VC가 IPO를 목표로 하는가, 상장 패스트트랙은 가능한가, 정기 매출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등이었다.

이세종 상무는 VC가 기본적으로 IPO를 전제로 투자한다고 답했다. 펀드 만기가 되면 구주 매각을 해야 하는데, 상장 가능성이 없으면 다른 투자자가 매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투자를 결혼에 비유하면서, 아름다운 이혼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높은 밸류를 만들어 함께 성장한 후 투자회수(Exit)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코스닥 상장 패스트트랙에 대해서는 문화 콘텐츠 쪽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클로이수 같은 케이스는 선례가 없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대신 정기 매출 확보를 위해서는 VIP 멤버십을 고도화하고, 한정판 선구매 특혜나 맞춤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세종 상무는 김홍범 대표가 이미 가장 어려운 단계를 통과했으며, 이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기로점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격려했다. 다만 명품 사업은 단기간에 규모를 키우기보다 꾸준히 브랜드 가치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명품 브랜드의 길, 인내와 전략적 접근 필요

멘토링을 마친 김홍범 대표는 "VC 투자의 본질과 명품 사업의 특성을 명확히 이해하게 됐다"며 "법인 구조 정비, 정기 매출 확보, 산업화 라인 구축 등 구체적인 과제를 확인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내년 백화점 매장 오픈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실적이 안정되면 그때 VC 투자 유치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세종 상무는 "클로이수는 58년의 헤리티지와 검증된 품질을 갖춘 브랜드"라며 "특히 왕실 칠보를 3대째 이어온다는 스토리는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도 강력한 차별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전통 공예를 명품으로 키우는 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조급하게 접근하기보다 전략적으로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1968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김익선 고문과 이수경 명인이 전수받은 왕실 칠보. 1400년 칠보 역사의 뿌리를 찾아 울산으로 거점을 옮긴 두 장인의 결정은 이제 아들 김홍범 대표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세 번의 위기를 극복하며 다져진 경영 역량과 장인 정신, 그리고 울산시와 울산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의 체계적인 지원이 만나는 지점에서, 클로이수가 ‘K럭셔리’의 대표 주자로 성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내년 백화점 명품관 입점은 그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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