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핀 한계 극복해 고성능 센서 구현…'에이배리스터' [SBA 초격차]
[SBA x IT동아] 서울경제진흥원(SBA)은 10대 초격차 기술을 연구하는 스타트업, 그리고 대·중견 기업을 연결해 동반 성장하도록 이끄는 초격차 개방형 혁신을 주도합니다. 초격차 개방형 혁신을 토대로 세계에서 활약할 유망 스타트업의 실력과 성과를 소개합니다.
[IT동아 김동진 기자] 그래핀은 한때 반도체 성능을 대폭 끌어 올릴 ‘꿈의 신소재’로 주목받았지만 상업화 과정에서 번번이 한계를 드러냈다. 오염에 취약한 구조와 전류를 잘 흘리는 특성 탓에 일관된 성능 확보가 어렵다는 근본적 한계를 드러냈다. 이 난제를 정면으로 돌파한 인물이 있다. '배리스터(Barristor = Barrier + Transistor)'라는 센서 구조를 발명해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에 성과를 게재한 정현종 에이배리스터 대표다. 그는 삼성종합기술원에서 17년간 그래핀을 연구하며 전문성을 쌓은 끝에 배리스터 개발에 성공했다. 그는 연구실을 넘어 상용화에 도전하며 우리나라 그래핀 센서 산업 생태계 조성을 주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서울 광진구 에이배리스터 사무실에서 정현종 대표를 만났다.

그래핀 한계 극복할 혁신적 센서 구조 발명…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에 성과 게재
그래핀은 이론상 전자 이동도가 실리콘의 100배에 달한다. 이 때문에 수많은 글로벌 연구팀이 그래핀 기반 트랜지스터(FET)로 기존 반도체를 대체하려 했다. 하지만 실험은 번번이 실패했다.
정현종 대표는 “그래핀을 반도체 소재로 활용하려면 전류를 흐르게 할 뿐만 아니라 차단도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핀은 전류 차단이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도체 상태와 부도체 상태를 오가는(스위칭) 효율이 매우 낮아 반도체 소재로 적용이 불가능했다. 또한 표면 오염에 취약해 바이오·환경 센서로 활용도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정현종 대표는 이 문제를 ‘그래핀을 반도체처럼 쓰려 한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실패로 본다.
그는 “그래핀을 반도체 소재로 활용하려면 전류 흐름과 차단을 무수히 반복해야 하는데 전류를 잘 흘리는 특성 탓에 적합하지 않았다. 예컨대 자동차 창문을 내리다가 멈춰야 하는데 멈추는 게 어려운 것”이라며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다. 그 결과 실리콘과 그래핀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해법을 찾았다. 배리스터라고 명명한 그래핀 결합 방법이다. 실리콘과 그래핀이 맞닿은 부분에 형성된 에너지 장벽의 높이를 정밀하게 조절해 전류 흐름과 차단을 반복하는 방식이다. 이같은 방식으로 도출된 구조가 배리스터(Barristor = Barrier + Transistor)”라고 설명했다.

정현종 대표는 이같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배리스터를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고, 트랜스퍼와 출력 특성 관련 연구 결과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 및 어드밴스드 일렉트로닉 머티리얼즈(Advanced Electronic Materials)에 발표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특히 난제로 여겨졌던 고성능 센서 효율 제고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배리스터는 기존 그래핀 트랜지스터 대비 100만 배 이상 높은 스위칭비를 구현하며 센서 신호를 기존 대비 100배 증폭하는 것으로 입증됐다. 특히 저전력(구동 전류 1/1000)으로 동작하므로 기존 센서와 비슷하거나 더 저렴한 가격으로 높은 성능을 내는 제품 개발이 가능하다. 이같은 특성 때문에 극미량 검출이 필요한 센서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배리스터 기술을 극미량 검출이 필요한 의료 영역에 적용한다면, 코로나와 같은 신속한 감염진단이 필요한 상황에서 PCR 검사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극미량 검체로도 빠르게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성능을 지닌 검사 장비를 기존과 비슷하거나 더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다.

정현종 대표는 “배리스터 기반의 코로나 바이러스 진단기의 경우 타액으로 현장 진단이 가능한데, 기존 PCR 대비 50배 정확하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는 높은 민감도를 보였다.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배리스터 기반의 면역진단 센서 시제품을 제작해 해외 진단기기 회사의 성능 검토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또한, 심근경색 지표 단백질인 Troponin-I를 1 pg/mL 이하 수준에서 검출할 수 있는 우수성을 자체적으로 검증했다”고 강조했다.
배리스터 소자를 바이오센서에 적용할 수 있는 이유는 반도체와 달리 그래핀 표면이 화학적으로 안정적이어서 바이러스 또는 단백질이 소자의 성능을 떨어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염에 강한 특성 덕분에 다양한 온도와 환경에서 성능을 유지해야 하는 군수용 혹은 산업용 적외선 센서, 자동차 외부에 장착할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 센서에도 응용이 가능하다.
라이다는 빛 탐지 및 거리 측정의 약자로, 레이저 빛을 발사해 그 빛이 물체와 부딪혀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물체까지의 거리를 감지한다. 이후 주변 모습을 정밀하게 그려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덕분에 깜깜한 밤이나 기상 악화로 시야 확보가 어려운 경우에도 운전자에게 사람이나 사물의 존재를 감지해 알린다.
정현종 대표는 “원적외선 IR 센서에 그래핀 배리스터를 응용하는 방식으로 라이다용 1550nm 파장 단파 적외선 센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나 자율주행 기술 기업에 해당 제품을 공급할 예정”이라며 “가스 센서에서도 효용을 확인했다. 기존 그래핀 트랜지스터 기반 가스 센서가 1 ppm의 NO2 가스에 4.5% 정도의 신호 변화를 보이는데 반해, 실험실 수준에서 제작한 배리스터는 1만 배 더 큰 응답성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SBA 지원 속 성능 실험 및 입증…"그래핀 센서 생태계 구축 주도할 것"
에이배리스터가 이같은 성능을 실험하고 입증하기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은 기관이 있다. 서울창업진흥원(SBA)이다. 에이배리스터는 SBA의 초격차 개방형 혁신 홍보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초격차 선정기업의 효과적인 홍보 지원을 통해 기업의 대외 홍보 및 마케팅 역량 제고를 위한 지원사업이다.
정현종 대표는 “창업 초기 캠퍼스타운 기술매칭 지원사업을 통해서 센서 제작에 필요한 기술 중 하나를 개발했다. 캠퍼스타운 소재 대학 연구소와 긴밀하게 연구 개발도 진행할 수 있었다. 기업 부담금 없이 과제도 수행할 수 있어서 초기 기술 기업에게는 적확하고 유용한 지원이었다. 또 초격차 프로그램 덕분에 배리스터 기술을 널리 알릴 홍보의 기회도 잡을 수 있었다”며 “올해는 SBA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CES 2025에 센서 기술을 전시한 바 있다. 덕분에 유럽 라이다 업체의 목소리를 청취할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에이배리스터는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레퍼런스 확보와 홍보 역량 강화를 꼽았다.
정현종 대표는 “에이배리스터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센서를 대신 설계하는 라이센싱 사업을 주력으로 한다. 따라서 사업 초기에는 원쳔특허 확보에 집중했다. 2022년~2023년 동안 한국 내 5개 특허를 등록하고 1개를 출원했으며, 미국, 유럽, 일본, 중국, 타이완, 싱가포르 등 9건의 국제 특허 출원을 완료했다”며 “현재는 고객사 확보 및 기술 검증 단계에 있다. 2026년에는 진단 회사와 가스 센서 회사 등에서 매출 발생을 목표로 삼았다. 미국의 바이러스 자가진단 바이오센서 개발 업체와 배리스터 소자 라이센싱을 위한 기술 검증을 진행 중이다. 국내의 방역관련 기업과는 감염균 검출기기 개발을 협의 중이고, 광센서 기업과도 협업 검토 및 기술 검증을 진행 중이다. 여전히 그래핀 FET(반도체형)에 머물러 있는 메이저 플레이어들을 고객사로 확보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에이배리스터의 구성원은 IR 센서, 가스 센서, 바이오 센서 분야의 개발 및 평가를 담당하는 연구원이 대부분이다. 기술 개발 역량은 모두 뛰어나나 이 기술을 널리 알리기 위한 역량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기술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잘 정리해 홍보하는 방안도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에이배리스터의 향후 계획을 들었다.
정현종 대표는 “최근 정부는 초혁신경제 15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래핀을 선정한 바 있다. 정부는 그래핀이 2030년까지 에너지 저장장치 소재 시장에 진출하고, 2035년까지 센서 소재 시장에 진출하는 것으로 로드맵을 설정했다. 에이배리스터는 이같은 로드맵에 호응하기 위해 그래핀 센서 기반 멀티 프로젝트 웨이퍼(MPW, Multi Project Wafer) 서비스 구축을 목표로 삼았다”며 “MPW란 반도체 산업 초기에 생태계 구축에 사용했던 방법으로, 웨이퍼 최소 생산단위 물량을 발주하지 못하는 다양한 연구 단위(회사, 연구소, 학교) 수요(디자인)을 모아서 파운드리에서 웨이퍼를 만들어주는 제도다. 유럽에서는 그래핀 플래그십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그래핀 FET(반도체형) 센서에 대해서 이 방법을 채택했고, 현재도 유럽의 그래핀 파운드리 업체들은 해당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배리스터라는 혁신적인 그래핀 센서 기술을 기반으로 MPW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래핀 센서 생태계가 구축되는 동시에 실증 인프라도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년에는 에이배리스터의 센서 기술을 사용하고자 하는 고객사와 기술 검증 과정을 대대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배리스터 기반으로 진단 기기를 개발하려는 기업에 센서 칩을 납품하는 방식으로 배리스터 기술을 시장에 공급할 계획”이라며 “이처럼 MPW 서비스와 고객사와의 기술 검증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정부의 로드맵보다 5년 앞당겨 그래핀을 센서 시장에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래핀 센서 생태계 조성을 주도, ‘반도체 산업에 ARM이 있다면 센서 산업에는 에이배리스터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