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연세의료원 “프라이빗 LLM으로 의료기기 AI 임상 시대 개막”

[IT동아 차주경 기자] 사람이 더욱 건강하게 살도록 돕는, 더러는 생명까지 구하는 의료기기를 만드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론과 개념을 다지고 실험 단계의 제품을 만들어 성능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어려우면서 중요한 것이 성능 검증, 즉 임상이다. 임상은 의료기기의 성능은 물론 부작용, 위험이 없는지 검증하는 과정이다. 의료기기의 이론과 개념이 아무리 좋아도, 기기의 완성도가 높고 효용이 우수해도 임상을 통과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선진국은 의료기기 기업과 함께 임상시험수탁기관(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이하 CRO)도 성장하도록 힘을 싣는다. CRO는 어렵고 중요한 임상을 의료기기 기업들이 한결 수월하게 통과하도록, 그 과정에서 자원을 절약해 성장에 더욱 큰 힘을 싣도록 돕는다. CRO와 의료기기 기업과 산업계는 동반 성장 관계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의료기기 제조 중심 클러스터인 강원특별자치도 원주 강원지역혁신클러스터에도 이러한 생태계가 잘 마련됐다. 이 곳에 자리 잡은 의료기기 기업들은 클러스터의 지원을 토대로 2021년 기준 6억 5500만 달러(약 9550억 원)에 달하는 수출액을 올렸다. 여기에 힘을 더하는 곳이 연세대학교 원주연세의료원이다.

임상시험 통합플랫폼 전용 프라이빗 LLM을 소개하는 박성빈 원주연세의료원 CRO 센터 교수 / 출처=IT동아
임상시험 통합플랫폼 전용 프라이빗 LLM을 소개하는 박성빈 원주연세의료원 CRO 센터 교수 / 출처=IT동아

원주연세의료원은 상급 종합병원이자 지역사회 기반 병원이다. 국가혁신클러스터 고도화 사업 주관 병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병원 연계형 디지털헬스케어 사업을 포함, 강원지역혁신클러스터 내 의료기기 기업의 성장을 이끌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정보통신기술과 의료계의 융합을 시도하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다. 원주연세의료원은 앞서 이동통신망을 활용, 응급이송차량(구급차)이 환자의 상태를 빠르게 진단하고 지역 내 소방서 혹은 응급의학과와 연계해서 움직이는 응급의료 시스템을 개발했다. 덕분에 응급의료의 속도와 품질을 함께 높였다. 닥터헬기도 운용한다.

2022년 문을 연 원주연세의료원 의료기기 CRO 센터의 활약도 눈여겨볼 만하다. 클러스터 내 의료기기 기업들이 임상을 원활히 수행하도록, 나아가 세계 의료 선진국의 임상에도 대응하도록 이끄는 곳이다. 앞서 이 곳은 지역 내 의료기기 기업과 제약사 임직원들이 언제 어디서나 고품질 CRO 교육을 받도록 ‘메타버스 교육 시스템’을 만들었다. 덕분에 관계자들은 임상 현장을 그대로 재현한 가상 공간에서 현실감 넘치는 교육을 받고, 서로 자유롭게 의견과 지식을 나누며 동반 성장했다.

임상시험 통합플랫폼 전용 프라이빗 LLM 구축 사업 소개 현장 / 출처=원주연세의료원
임상시험 통합플랫폼 전용 프라이빗 LLM 구축 사업 소개 현장 / 출처=원주연세의료원

이어 원주연세의료원 의료기기 CRO 센터는 2024년 ‘임상시험 통합플랫폼 전용 프라이빗 LLM(이하 프라이빗 LLM) 구축 사업’을 시작해 최근 마쳤다. 사람과 대화하듯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정확한 정보를 얻는 생성 인공지능으로 의료기기 임상 종사자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내용이다. 이들이 더 쉽고 간편하게 임상시험의 절차와 필요 조건을 이해하도록, 여기에 필요한 서류를 알맞게 준비하도록 돕는 목적도 가졌다.

원주연세의료원 의료기기 CRO 센터의 주도 하에 정보기술 강소기업인 ‘솔비트(SOLBIT)’가 개발과 실증을 진행했다. 기존에도 비슷한 도구가 있었지만, 문자로만 정보를 주고받아야 했다. 프라이빗 LLM은 문자뿐만 아니라 사진을 인식하고 그에 걸맞는 설명을 만든다. 사진 제작도 해낸다. 병원에서 만들어진 신뢰 가능한 정보만 활용하며 민감한 의료 데이터가 유출되지 않도록 정밀한 보안 체계도 갖춘다. GPU 기반 클라우드 인프라에서 운영하므로 언제 어디서나 활용 가능한 장점도 가졌다. 프라이빗 LLM은 약 6개월 간의 개발과 실증을 마친 후 현장에 배치돼 고도화 중이다.

프라이빗 LLM을 쓰는 모습. 사용자가 임상에 관한 자세한 질문을 하면 신뢰 가능한 데이터를 토대로 알맞은 답변을 제시한다. / 출처=원주연세의료원
프라이빗 LLM을 쓰는 모습. 사용자가 임상에 관한 자세한 질문을 하면 신뢰 가능한 데이터를 토대로 알맞은 답변을 제시한다. / 출처=원주연세의료원

프라이빗 LLM 고도화 사업을 주도한 박성빈 원주연세의료원 의료기기 CRO 센터 교수는 꾸준히 정보통신기술과 의료 기술의 융합을 시도했다. 의료기기 부문에서 오래 일했기에 관계자들이 어려워하는 것, 현장에 필요한 기술을 잘 이해하는 덕분이다.

박성빈 교수는 이번 프라이빗 LLM의 주안점으로 고품질 데이터 확보를 들었다. 생성 인공지능의 핵심은 데이터다. 데이터가 틀리면 결과도 틀리거나 잘못되는데, 이는 의료기기 업계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에 원주연세의료원 CRO 센터는 직접 모으고 다룬 자료나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 연구자들의 교차 검증과 감수를 받은 자료만 프라이빗 LLM에 입력했다.

프라이빗 LLM을 쓰는 모습. 사용자가 아주 자세하고 긴 질문에 사진 요청까지 했는데, 이 요청에 대응해 답변을 제시한다. / 출처=원주연세의료원
프라이빗 LLM을 쓰는 모습. 사용자가 아주 자세하고 긴 질문에 사진 요청까지 했는데, 이 요청에 대응해 답변을 제시한다. / 출처=원주연세의료원

센터는 이렇게 만든 프라이빗 LLM을 현장에 제공해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받고, 이를 토대로 고도화 중이다. 사용자들의 반응은 아주 좋다. 임상 관련 보고서, 발표 자료 제작 시 탁월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글자뿐만 아니라 사진도 함께 제공하는 점, 덕분에 어렵고 까다로운 임상의 이해도를 높인다는 평가도 그렇다.

박성빈 교수는 프라이빗 LLM을 꾸준히 고도화하면 의료기기 산업계의 문제인 정보 비대칭을 줄일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까지는 거의 모든 의료 데이터를 병원이 만들고 수집하고 보관했다. 하지만, 병원의 수는 적고 관계자들의 자원은 한정됐다. 그래서 의료기기나 디지털 헬스케어를 연구하는 중소규모 기업은 의료 데이터의 활용과 임상 준비를 어려워했다. 막상 임상에 들어가도 서류가 미흡하거나 꼭 갖춰야 할 데이터를 갖추지 못해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경우도 많았다.

연구원이 프라이빗 LLM을 사용하는 모습 / 출처=원주연세의료원
연구원이 프라이빗 LLM을 사용하는 모습 / 출처=원주연세의료원

반면, 프라이빗 LLM을 쓰면 의료기기,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관계자 누구나 병원의 고품질 데이터를 활용한다. 실제 병원 임상 관계자와 이야기하듯 자유롭게 문답을 나누며 임상을 준비한다.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임상을 준비하는 덕분에 서류 미흡이나 데이터 때문에 시간, 비용을 낭비하는 일도 줄이다.

박성빈 교수는 이를 위해 프라이빗 LLM의 완성도를 높이고 더 다양한 곳에 보급한다. 목표는 우리나라 의료기기,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한결 편리하게 임상을 하도록 돕는 것, 그 결과 혁신 기술을 현실로 이끌고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기기,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은 거의 모두 중소·중견기업이다. 인력과 자본, 그리고 까다로운 임상 허가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 프라이빗 LLM은 이 가운데 임상 허가 문제 해결을 도울 기술로 주목 받는다. 의료기기,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빠르게 바뀌는 기술과 임상 유행에 제 때 적응하도록, 의료 부문에서 올해 일한 교수와 교원들이 기술 연구 개발 후 임상을 더 잘 준비하도록 도울 기술로도 그렇다.

프라이빗 LLM을 소개하는 모습 / 출처=원주연세의료원
프라이빗 LLM을 소개하는 모습 / 출처=원주연세의료원

CRO 센터를 포함해 원주연세의료원은 앞으로도 다양한 정보통신기술을 현장에 도입해 시장 변화에 대응한다. 이 가운데 박성빈 교수가 주목하는 기술은 ‘분산형 임상시험(Decentralized Clinical Trial, 이하 DCT)’이다. 기존 임상은 참가자들을 병원이나 CRO 기관으로 불러 수행했다. 그래서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다. 반면, DCT는 참가자들이 집에서 생활하며 임상에 임하도록 한다. 부담을 상당 부분 줄이지만, 고도의 정보 모니터링 기술이 필요하다. 박성빈 센터장은 프라이빗 LLM을 포함한 정보통신기술이 DCT에 힘을 실어 임상의 완성도와 효율 모두를 높일 것으로 예상한다.

박성빈 교수는 “정보통신기술은 전통 산업의 발전을 이끈다. 원주연세의료원이 의료기기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에 정보통신기술을 적극 이식하는 이유다. 이번에 구축한 프라이빗 LLM은 의료 데이터를 많이 가진 병원과 의료기기 기업을 연결, 상승 효과를 일으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전반의 성장을 이끌 촉매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IT동아 차주경 기자(racingca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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