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후드 "AI 기반 스마트 자판기로 지역 관광지 활성화 도울 것" [SBA x IT동아]
[SBA x IT동아 공동기획] 서울특별시와 서울경제진흥원(SBA)은 서울 창동·성수·동작에 창업허브(센터)를 마련했습니다. 스타트업을 발굴, 초기 창업부터 성장기까지 단계별 프로그램을 지원해 육성합니다. 2025년 두드러진 활동을 펼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유망 스타트업을 소개합니다.
[IT동아 박귀임 기자] K-콘텐츠 열풍과 함께 국내 관광지 방문객이 급증한다. 그러나 현장은 녹록지 않다. 방문객은 운영 마감 시간 후에도 관광지를 찾아가지만 안내소는 문을 닫고, 해설가는 퇴근한다. 야간 방문객이 오히려 더 많은 관광지도 적지 않다. 상주 인력을 늘리자니 인건비 부담이 크고, 아르바이트로 대체하면 서비스 품질을 담보하기 어렵다. 직원들은 반복되는 주말과 야간 근무로 방문객 응대부터 삶의 질까지 떨어진다.
이러한 관광지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타트업 88후드가 나선다. 공간 대여와 아트 콜라보 등의 사업을 하며 현장 애로사항을 체감한 임정민 88후드 대표는 AI 기반 스마트 자판기를 개발, 지역은 물론 관광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현장서 겪은 문제 해결하려 사업 전환

"방문객은 오후 5시 종료 이후에도 관광지를 찾기 일쑤다. 최근 K-콘텐츠 열풍에 따라 이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운영 마감 시간에 따라 안내소는 문을 닫고 해설가는 퇴근해 관광지의 매력을 알리는 데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임정민 대표는 지난 7년 동안 관광지 공간 대여와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며 목격한 문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초반에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했으나 서비스 품질 관리가 어려웠고, 정규 직원을 투입하자 대부분의 수익을 인건비로 지출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88후드는 2024년 경남 남해 독일마을에서 1년간 라운지를 운영하는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독일마을은 1960~70년대 독일로 건너간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의 역사가 담긴 특별한 공간이다. 임정민 대표는 "독일마을을 단순히 산책하는 곳이 아니라 깊이 있게 체험하는 공간으로 운영했다. 독일마을이 탄생한 이유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면서도 "라운지는 오후 5시에 문을 닫았다. 그 후에도 독일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점차 늘어났다. 야간 시간대에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주 인력 부족이나 비용 문제로 이들에게 해당 공간의 매력을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임정민 대표는 24시간 이용 가능한 자판기가 눈에 띄었다. '자판기처럼 해설가가 24시간 그 자리에 있다면?'이라고 생각하며 AI 기반 스마트 자판기를 떠올렸다. 관광산업이 발전하고 있는 데다가 스마트 자판기를 통해 업계의 인력 문제도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그렇게 88후드는 사업 전환의 신호탄을 쐈다.
기존 사업 경험 바탕으로 자판기씨 탄생
임정민 대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판기는 기원전 215년 이집트에서 성수(聖水)를 판매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동전을 넣으면 그 무게만큼 접시가 기울어져 물이 나오는 방식이었다. 1880년 영국 런던에서는 우편 엽서를 판매하는 동전 투입식 자판기가 등장하며 본격적인 자판기 시대가 열렸다.

자판기의 역사에 주목한 임정민 대표는 "자판기는 로봇이 상용화되기 전 가장 많은 무인 인프라 역할을 해왔다. 88후드는 자판기를 살짝 비틀었다. 기존 판매 기능에서 해설사이자 프로그램 운영자로 자판기에 역할을 추가했다"면서 "스마트 자판기는 일반적인 하드웨어 고철이 아니라 해설사나 운영자 등 사람의 역할을 분담하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아 '자판기씨'라고 지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무인 음성 도슨트와 자판기를 결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공간 운영자 입장에서 필요한 기능을 하나씩 추가했다. 체험 키트 판매와 QR 코드 연동 해설을 제공해 무인으로 프로그램 운영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기존에 아트 콜라보 사업과 QR 코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그 결과 지역 및 공간 맞춤형 자판기 제작으로 사업 모델을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임정민 대표는 "그동안 콘텐츠 중심으로 아트 콜라보 사업을 운영하다 보니, 콘텐츠나 예술이 공간에 생명력과 가치를 불어넣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경험과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자판기씨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웬만해선 앱 설치를 꺼린다. 기존 관광지에서 제공하는 오디오 해설 전문 오디(ODI) 앱은 다운로드가 필수다. 자판기씨는 QR 코드만으로 손쉽게 해설을 듣도록 만들어 반응이 좋다"고 덧붙였다.
특히 자판기씨에 AI 기술을 적극 활용했다. 임정민 대표는 "계절이나 상황에 따라 바뀌는 지역 및 관광지의 매력을 빠르게 반영하려면 해설 수정이 용이해야 한다. AI 기술을 통해 해설 내용 업데이트나 목소리 수정까지 가능하다. AI 음성으로 다국어 해설도 지원한다"고 밝혔다. AI 기반 재고관리 시스템으로 체험 키트나 포토카드 판매 데이터도 실시간 분석한다. 보통 6개월 걸리는 ERP 시스템을 AI 툴로 단기간에 자체 개발해 활용 중인 것. 이를 바탕으로 재고부터 판매율이 높은 제품군까지 데이터로 확보 가능하다.
경주·서울 순차적으로 도입…지역 상생 모델 구축
자판기씨는 올해 6월 경북 경주에 위치한 코오롱 호텔 로비에 첫 선을 보였다. 경주나 코오롱 호텔 곳곳의 풍경과 관련 해설이 담긴 QR 코드를 엽서에 담아 감각적으로 제공했다. QR 코드의 해설에 따라 해당 공간을 더욱 잘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 ▲자개 썬캐처 만들기 ▲전통 보석 족두리 만들기 ▲솔방울 팔찌 만들기 등 체험 키트도 판매하며 가족 단위 고객까지 사로잡았다. 바쁜 호텔 라운지에서 컨시어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경주 코오롱 호텔은 자판기씨의 내년 연장 계약도 확정지었다.

올해 9월부터는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도 자판기씨가 설치됐다. 이 자판기씨의 경우 청계천에 서식하는 새 포토카드를 랜덤으로 제공한다. 포토카드 뒷면에 있는 QR 코드로 해설을 들으며 청계천을 산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실제 청계천에서 촬영한 새로 포토카드를 구성, 의미를 더한다. 해당 자판기씨 수익금은 (사)한국조류협회에 기부되는데 새 보호 활동에 사용된다고 안내해준다.
자판기씨의 운영 효과는 수치로 나타난다. 임정민 대표에 따르면 현재 평일과 주말 각 9시간으로 주 63시간 대응하는 관광지가 자판기씨를 통해 24시간 운영으로 전환될 경우 주 168시간 운영이 가능해진다. 운영 시간이 2.7배 확대되는 셈이다.
지역 관광지 해설가와의 상생 모델도 구축했다. 해설가는 좋은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자판기씨는 이들의 기존 역할을 분담하는 것. 임정민 대표는 "자판기씨는 인력 대체가 아니라 역할 분담 솔루션이다. 직원이나 해설가가 휴일이나 늦은 시간까지 방문객 응대를 하면 피곤해지고 콘텐츠 퀄리티도 떨어진다. 자판기씨 도입으로 더 좋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제때 퇴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경주에 설치한 자판기씨는 현지 숲 해설가가 제작한 체험 키트를 판매 중이다. 체험 키트 판매 수익이 숲 해설가와 배분되도록 한다. 인기 체험 키트의 경우 88후드가 재발주하기 때문에 숲 해설가는 더 양질의 프로그램을 연구하거나 개발하게 되는 지역 상생 선순환 구조도 가능하다.
88후드는 제주 오름 관리의 사례를 자판기씨에 적용할 계획이다. 제주의 '1단체 1오름 가꾸기 운동'은 자연 보호와 지역 활성화에 기여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88후드에 따르면 현지 관리자마다 한 자판기씨를 1대1로 매칭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임정민 대표는 "자판기씨는 무인으로만 운영할 수 없다. 재고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에 자판기씨와 현지 관리자 혹은 실제 해설가가 1대1로 함께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은 해당 지역이나 공간을 잘 알기에 시시각각 바뀌는 해설과 관광객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을 연구해 자판기씨에게 맡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자판기 변형부터 콘텐츠 다양화까지 주력
이러한 88후드의 빠른 성장에는 서울 창업허브 창동 역할이 컸다. 88후드는 올해 6월 서울 창업허브 창동 입주 기업으로 선정, 사무 공간부터 각종 지원을 받았다. 임정민 대표는 "서울 창업허브 창동 입주 후 벤처 인증을 받았고,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특히 88후드는 9월 서울 창업허브 창동에서 열린 '2025 이노웨이브 데이(2025 Inno-wave Day)'를 통해 3일 동안 23곳의 공공기관 및 대기업과 만났다. 2025 이노웨이브데이는 오픈 이노베이션 참여 수요기업의 협업 주제와 초격차 스타트업의 컨소시엄 협업 과제를 평가하는 행사로 서울시(SBA)와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원이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때 88후드는 산림청 산하의 한국수목정원관리원 등 5곳과 실질적 계약으로 이어졌다. 임정민 대표는 "서울 창업허브 창동 덕분에 1년 이상 걸릴 일을 3일 만에 해냈다. 한국수목정원관리원의 경우 자판기씨 도입이 확정됐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88후드는 청계천처럼 신규 자판기 납품뿐만 아니라 기존 자판기를 변형하는 컨설팅에도 주력한다. 예를 들어 경북 영주역 사과 판매 자판기에 현지 관광 소개를 결합하거나, 전남 고흥 특산물 판매장 자판기에 현지 관광 콘텐츠를 넣는 식이다.
임정민 대표는 "기존 음료 자판기를 콘텐츠에 따라 변형할 수 있다. 새롭게 납품하는 것보다 비용도 절감할 수 있어 사업성이 뛰어나다"면서 "방치돼 매출이 저조한 자판기 역시 콘텐츠만 바꾸면 된다. K-팝 아이돌 포토카드가 작지만 5000원대에 판매되는 것처럼 콘텐츠 접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존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팝업스토어 대체 서비스도 선보인다. 오는 12월부터 홀로그램 팝업 전시 현장에 자판기씨를 설치, 공식 운영이 종료되는 오후 6시 이후에도 방문객을 위한 안내와 무료 홍보자료 배포할 예정이다. 임정민 대표는 "전시회나 박람회용으로 자판기씨의 3~5일 단기 대여 문의도 이어진다. 비용 부담으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나 스타트업 역시 자판기씨를 마케팅 채널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88후드의 목표는 자판기씨로 지역 관광지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자판기씨가 매력적인 관광 공간을 만들고, 지역 상생으로 수익 창출까지 가능하도록 힘쓸 계획이다.
IT동아 박귀임 기자(luckyim@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