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34조 원 스타트업 투자 회수, 공공이 나서야 한다"
[IT동아]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지정우 투자운영실장 인터뷰
"투자는 했는데 투자금은 과연 언제나 회수할 수 있을까?"
모든 스타트업 투자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초기 투자 이후 IPO(기업공개)나 M&A(기업 인수합병)까지 이어지기까지 그 중간 단계,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서 많은 스타트업이 자금난으로 흔들리거나 사라지고, 투자자들은 회수 시점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 2024년 말 기준 국내 벤처펀드에서 회수되어야 할 투자금만 34조 원에 달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대표 이영근, 이하 서울센터)가 내놓은 해법이 바로 세컨더리 투자 플랫폼 'S. Lounge(에스라운지)'다. 개소 10년 만에 첫 펀드를 결성하며 ‘공공 투자기관’으로 변모한 서울센터의 핵심 동력이기도 하다. 서울센터 지정우 투자운영실장을 만나 S. Lounge의 탄생 배경, 진행 성과, 향후 전략 등에 대해 들었다.
우선, 공공기관으로서 세컨더리 투자 플랫폼을 도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투자자, 투자사들이 스타트업 투자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가 '회수의 불확실성'입니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 투자금은 M&A나 IPO, 구주 매각을 통해 현금화됩니다. 그런데 국내 벤처시장에서 M&A를 통한 회수는 IPO에 비해서 비율이 상당히 낮은 편이고요. IPO도 스타트업이 상장까지 짧게는 8년, 길게는 15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초기투자 이후 회수기간이 너무 길어집니다.
문제의 핵심은 투자펀드의 구조입니다. 초기투자 펀드인 개인투자조합은 5~6년 만기가 일반적인데, 현재 활동 중인 대형 세컨더리 펀드 운용사들은 시리즈 B, C 이후의 IPO가 임박한 기업, 즉 상대적으로 안전 투자가 가능할 기업에 많은 자금을 투여합니다. 그러다 보니 창업 6년차 10년차 사이에 초기 투자금은 회수에 공백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이 때문에 스타트업들이 초기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죠.
2024년말 기준 한국 벤처펀드에서 회수돼야 할 투자금 만기예정액이 34조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를 효율적으로 현금화할 수 있는 여건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이에 엔젤투자나 시드 투자의 구주 회수를 도와주는 브릿지 성격의 세컨더리 투자 매칭이 절실한데요. 국내 벤처/스타트업 생태계에 꼭 필요하고, 누군가는 주도해야 하는 이 역할을 서울센터가 작년에 과감하게 시도했습니다.
최근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의 펀드 결성 성과도 눈에 띕니다.
작년에 투자운영실장으로 부임하면서 투자 재원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그 결과 우리 센터 개소 10년 만에 첫 번째 펀드인 '서울창경 베터 핀테크 투자조합 1호'를 결성했습니다. 농업정책보험금융원(농금원) 모태펀드에도 선정되는 등 추가 펀드를 계속 만들게 됐습니다. 투자목적이 다양한 펀드들이 조성되면서, 핀테크, 농식품, 인공지능(AI), 유통 플랫폼 등 분야별 투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간 펀드 운용 이력이 없던 공조직의 첫 펀드 조성이라는 점에서 우려의 소리도 나왔지만, 1년 안에 3개 펀드를 결성하며 그 우려를 일부 불식시켰습니다. 이는 우리 센터 모든 직원들의 벤처 생태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S. Lounge는 어떻게 운영되나요?
스타트업 세컨더리 주식 거래는 대개 신주 투자를 받는 공개 IR이 아닌, 비공개 IR을 통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Private IR 형식으로 구현해봤습니다. 초기에는 창업시장 관계자들도 이에 관해 반신반의했는데, 현재는 140여 개의 AC(액셀러레이터), VC(벤처캐피탈), 신기술사업금융회사, 증권사, 캐피탈사, 대기업 투자부서 등이 적극 참여하고 있고, 매월 5개의 세컨더리 매각 스타트업을 발굴하여 현재까지 80여 건의 투자 매칭에 성공했습니다. 물론 실제 구주 거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운영한지 1년도 안 돼서 140개 기관/기업이 참여할 정도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기존에 없던 거래 모델이다 보니 초기엔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만족할 성과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서울센터가 가지고 있는 '공공의 신뢰성' 덕분입니다. 일반적으로, 서로 경쟁 관계라 할 수 있는 민간투자사들은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 이상, 세컨더리 거래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 마련입니다. 이에 반해, 서울센터는 정부 산하 기관이기에 불안감 없이 세컨더리 거래 문의를 받을 수 있고, 이 거래를 효율적으로 민간 자본시장에 중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이 주효했다고 판단합니다.
이번 세컨더리 투자 사례를 통해, 공공기관과 민간의 실질적인 협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모험 자본시장이 위축된 요즘 같은 시기에는, 공공기관의 안정적 신뢰성과 민간 금융의 효율적 전문성의 결합은 단순한 협력을 넘어서는 필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비영리 기반의 공공기관 신뢰성과 정책자금이 초기 투자의 위험을 일부 분담함으로써 민간 자본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더 많은 자금이 혁신 스타트업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민간 투자사는 공공의 신뢰성과 정책적 지원을 레버리지로 활용하면서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전문성과 효과적인 회수 전략을 적용해 투자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모험 자본시장에서 민-관 협력 모델은 단순 협업에 그치지 않고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성장시키고, 전체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력을 되찾는 데 확실히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는 세컨더리 거래를 위해 매월 정기 IR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참여 기업이나 투자사 선정 기준은 어떤가요?
진행 초기에는 주로 엔젤투자나 시드 투자금 회수가 필요한 스타트업들이 참여 기업으로 선정됐고, 참여 투자사들도 초기투자기관들이 많았습니다. 이후 긍정적인 성과가 입소문을 타면서, 이후 증권사나 대형 투자사들도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수요에 맞게 M&A 딜이나 Pre-IPO 세컨더리 대형 매물도 함께 선보이고 있습니다. 현재는 투자금 회수가 절실한 시리즈A 단계의 스타트업이 가장 많이 참여합니다. 이는 우리 센터가 추구하는 '브릿지' 역할과도 부합합니다.
이외 NH투자증권과의 협력도 '국내 최초 실행형 협업 모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서울센터가 처음으로 NH투자증권 ECM(Equity Capital Markets) 부서와 협업을 통해, Pre-IPO 기업 발굴과 IPO 요건 검토를 병행하는 공동 IR 플랫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Pre-IPO 기업의 구주 거래와 IPO 주관사 검토까지 한 번에 진행하는 시험적인 협업 모델입니다. 스타트업이 상장회사로 성장하는 경로의 자금을 지원하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기존의 상장 지원 프로그램과 차별점은 구주 거래부터 IPO까지의 전 과정을 연결한다는 것입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상장 준비 과정에서 구주 거래로 주주 구성에 변화를 줄 수 있고, IPO 요건도 점검할 수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Pre-IPO 단계의 기업에 투자하면서 상장 구체성까지 체크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 구주 거래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투자자/투자사 관점에서 IPO 위주의 회수시장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구주 거래 기반의 중간회수가 좀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구주 거래는 IPO에 비해 짧은 기간 내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 투자자/투자사의 회수 부담을 경감하고, 이 회수금이 또 신규 스타트업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구조가 궁극적으로 스타트업 시장의 수익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공 액셀러레이터로서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가 민간 액셀러레이터와 차별화되는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다양한 스타트업 소싱 능력이 무엇보다 큰 차별점이라 여깁니다. 우리 센터는 ‘도전 K-스타트업’, ‘창업패키지 지원사업’ 등 정부의 창업 사업 프로그램과 더불어, 50여 개 대기업과 함께 진행하는 벤처 프로그램이 40여 개 있습니다. 한 해에 1만여 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우리 센터를 거쳐갑니다. 이런 풍부한 스타트업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옥석을 가리고, 선별된 스타트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점이 강점이라 생각합니다.
S. Lounge 플랫폼을 전국으로 확산할 계획이라 들었습니다.
S. Lounge의 긍정적인 성과에 따라, 이를 전국 19개 창경센터 중심으로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서울 지역의 세컨더리 플랫폼이 ‘S. Lounge’이니, 전국 대상의 플랫폼은 ‘S. Lounge Korea’가 되겠습니다. 이를 통해 전국 곳곳에 숨겨진 우수한 스타트업이 대거 발굴되기를 기대합니다.
향후 구체적인 운영 계획도 궁금합니다.
앞으로는 시드 투자금 회수와 IPO 사이 공백기를 이어주는 ‘정책형 세컨더리 브릿지 펀드’를 결성해 구주 거래 중개와 함께, 직접 세컨더리 투자도 병행하려 합니다. 펀드 이름은 ‘시드 턴(Seed Turn) 펀드'로 정했습니다. 세컨더리 중개 플랫폼과 세컨더리 펀드를 동시에 운용하는 최초의 공공기관이 되겠습니다.
또한 최근 OpenAI의 14조 원 규모의 세컨더리 거래 사례처럼, 우수한 우리 스타트업들의 세컨더리 주식을 해외 액셀러레이터와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 벤처시장에서 초기 투자금은 스타트업을 돕는 지원금 성격의 '굿 머니'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투자 자금이 수익으로 환원되지 않으면, '굿 머니'는 계속 나올 수가 없습니다.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해 영리한 수익을 내는 '스마트 머니'의 성격과 초기기업을 지원하는 '굿 머니'의 성격을 동시에 가져야 하는 것이 벤처캐피탈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측면에서 S. Lounge 는 단순한 주식 거래 플랫폼을 넘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인프라로 자리잡으리라 기대합니다.
IT동아 이문규 기자 (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