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사이더리 “양구 파치 사과로 지역과 사람을 잇습니다” [농업이 IT(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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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강형석 기자]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며 한반도의 농업 지도가 급변한다. 과거에는 사과 불모지로 일컬어졌던 강원도 접경 지역 양구가 이제는 사과 산지가 된 것이 사례다. 하지만, 이 지역 사과 농가들은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인지도가 낮아 판매처를 확대하기 어렵고, 재배와 수확 환경을 최적화하지 못해 생산성도 다소 낮다. 이 가운데에서도 맛과 영양은 일반 사과와 같지만, 외관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상품성을 인정 받지 못하는 '파치 사과(못난이 사과)'는 큰 고민거리로 꼽힌다.
최근 파치 작물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 시장에 적극 유통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파치 작물이 시장에 유통되지 못하고 사장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장되기 직전의 파치 사과를 활용,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기업이 있다. 2019년 설립해 다양한 양구 파치 사과 관련 상품을 선보이고 있는 까미노사이더리(Camino Cidery)다.
까미노사이더리는 상품화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강원도 양구의 파치 사과를 활용해 애플 사이더 비니거와 발사믹 등을 생산 중인 ‘푸드 업사이클링’ 기업이다. 파치 사과를 활용한 까미노사이더리의 사업 모델은 단순 생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양구 파치 사과를 어떻게 활용하게 됐는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듣기 위해 강정현, 권무령아 까미노사이더리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파치 사과와 맺은 인연으로 시작된 창업 여정
“강원도 양구로 귀촌한 후 농가 일손 돕기 차원에서 한 사과 농원을 방문했습니다. 최소한의 농약으로 사과를 재배하는 농가였는데 버려지는 파치 사과가 많다는 것을 경험했죠. 순간 파치 사과를 활용해 농가와 지역을 이어주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강정현, 권무령아 대표는 상품성에 밀려 버려지는 파치 사과와 그 문제를 오롯이 감내하고 있는 농부들을 만난 후 창업을 준비했다. 지역 문제에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강정현, 권무령아 대표는 파치 사과를 활용할 방안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애플 사이더(Apple Cider)’를 떠올렸다.
애플 사이더는 사과로 만든 술의 일종으로 일반적인 탄산음료인 사이더와 다르다. 알코올 유무에 따라 스윗 사이더(Sweet Cider), 하드 사이더(Hard Cider) 등으로 나뉜다. 미국에서는 가을 수확철, 할로윈, 추수감사절과 연관된 계절 음료로 인식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하드 사이더가 긴 역사를 가진 전통 음료로 영국의 펍(선술집) 또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 식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강정현, 권무령아 대표는 애플 사이더 제조 방법을 익히기 위해 2017년 영국 서머셋에서 사과주 제조 기술을 습득하며 연구 기반을 다졌다. 2019년에는 양구 사과 농가와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까미노사이더리 법인을 설립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애플 사이더를 생산하려면 주류제조면허가 필요한데 까미노사이더리 사옥이 위치한 지역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면허 발급이 불가능했다. 애플 사이더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대안을 찾았는데 바로 애플 사이더 비니거와 발사믹 식초다.
애플 사이더를 자연 발효하면 애플 사이더 비니거(사과 식초)가 된다. 톡 쏘는 맛 뒤에 사과 특유의 풍미가 특징이다. 요리에 쓰거나 물에 희석해 음료로 마시기도 한다. 이 애플 사이더 비니거를 증류하면 화이트 식초가 된다. 애플 사이더 비니거를 농축하면 발사믹 식초가 되며, 가공하면 발사믹 펄을 만들 수 있다. 비록 애플 사이더를 만들 수 없더라도 다양한 파생 상품 생산이 가능한 것이다.
까미노사이더리는 한국발사믹식초협회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아 강원도 양구 지역 파치 사과를 활용한 애플 사이더 비니거를 개발했다. 2019년에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애플 사이더 비니거를 공개, 목표 모금액의 1420%를 초과 달성하며 시장 가능성을 확인했다. 애플 사이더 비니거 출시 이후 발사믹 캐러멜, 발사믹 블록, 발사믹 젤리, 콤부차 등을 선보이며 제품군 확장을 진행했다. 성장하는 반려동물 시장을 겨냥, 사과건지와 양구에서 생산된 아스파라거스 밑둥으로 만든 반려견용 AA 비건바도 출시했다.
까미노사이더리 제품들은 지역 생산물과 비건이라는 차별 요소를 앞세워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이 중 사과 발사믹 블록, 사과 발사믹 젤리는 동물성 젤라틴이 아닌 국내산 한천(우뭇가사리)을 활용한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지속 가능한 농업 문화 ‘퍼머컬처’ 확산에 앞장서다
까미노사이더리는 제조 중심 운영이 아닌 교육을 병행하는 형태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 중심에는 2023년 개설한 ‘기후미식의 길, 까미노학교’가 있다. 까미노 학교는 강원도 양구군에 있는 폐 천주교 공소를 임대해 조성됐다. 폐 천주교 공소 한쪽에 마련된 텃밭에서 작물을 가꾸고 발사믹 식초, 애플 사이더 등을 참가자들과 함께 만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폐 천주교 공소는 '퍼머컬처(Permaculture)'를 경험할 수 있는 공동체 텃밭과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기후농업, 기후미식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그린프렌드 프로그램이 매주 열린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초록 나눔(Green Swap) 모임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퍼머컬처 활동은 사업 철학을 바탕으로 비영리 운영되고 있다.
퍼머컬처는 영구적인(Permanent)과 농업(Agriculture)에 문화(Culture) 등이 결합된 합성어다. 1970년대 호주의 생태학자 빌 몰리슨(Bill Mollison)과 그의 제자 데이비드 홈그렌(David Holmgren)에 의해 창안된 지속 가능 농업 활동이다. 자연과 함께 일하며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농업 환경 구축이 핵심이다. 농사 기술 외에 건축, 에너지, 물 관리, 공동체 운영 등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
권무령아 대표는 “폐쇄된 공소(公所)가 공유로 소통하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새로운 공소(共疏)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단순히 사과를 가공해 제품을 만드는 것 외에 지역 내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기후 위기 시대에 지속 가능한 기후 행동을 함께하며 손작업의 길을 걷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강원도 양구와 전 세계를 이어주는 기업 되고파
까미노사이더리는 창업 이후 꾸준한 성과를 내며 성장 중이다. 2022년 6월, 지역사회공헌형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으며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로컬크리에이터 최우수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24년에는 로컬벤처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잠재력과 혁신성을 인정받았다. 지역사회 공헌형 양구 제1호 사회적 기업으로 다양한 활동도 진행 중이다.
해외 수출길도 확대되고 있다. 국제식품박람회인 푸드 타이페이(Food Taipei) 2025에 참가해 해외 수출 상담을 진행하며 상품성을 확인했다. 2025년 9월에는 미국 댈러스 지역 수출을 시작으로 전 세계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강원도 파치 사과를 활용한 'K-발사믹'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한다는 게 까미노사이더리의 사업 전략이다.
이런 성장 배경에는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의 지원이 있었다. 농식품벤처기업 지원사업 2년 차 지원을 받고 있는 까미노사이더리는 사업비 지원 및 교육, 컨설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중장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강정현 대표는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은 기업이 중장기 성장 계획을 세우는 데 필요한 지원이 장점입니다. 까미노사이더리처럼 지역 기반의 지속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에 필수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의 지원으로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꾸준한 성장의 길을 걷고 있는 까미노사이더리도 고민이 있다. 지역사회공헌형 사회적기업으로서 지역과 연대하고 지역에 뿌리내려 지속가능성을 일구는 일이다. 인구 소멸위기 지역이자 접경 지역인 양구에 귀촌한 지 9년, 지역 창업 6년이 지났지만 아직 외지인이라는 인식이 남아있다는 게 강정현, 권무령아 대표의 설명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강정현, 권무령아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양구애플프로젝트‘를 기획, 커뮤니티 카페 까미노(CAMINO) 운영 및 친환경 소농들의 장터인 양구잇장 등을 기획하며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데 힘쓰고 있다. 기후미식의 길, 까미노학교도 정기 운영하면서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할 계획이다.
"기후 변화로 사과 생산 지형은 바뀌겠지만 파치 사과는 계속 나올 겁니다. 양구 사과 농가들이 각자 농가형 사이더와 농가형 사과식초를 만드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매년 사이더 경연(컴피티션)도 열고 이탈리아 발사믹처럼 대대로 이어지는 지역 특산물로 자리잡았으면 합니다. 애플 사이더에 대한 꿈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까미노 데 산티아고)처럼 사업 또한 인생길이라 생각하며 기업명을 지었다는 강정현, 권무령아 대표. 삶과 사업, 미래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까미노사이더리를 운영할 방침이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