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스타트업] 10/완. 양자 전쟁시대, 한국의 생존전략은...?
[IT동아]
연재순서
큐비트 나침반으로 양자 시대를 개척하라 (https://it.donga.com/106890/)
양자컴퓨팅, 왜 '지금'인가? (https://it.donga.com/106942/)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는 양자 센서 (https://it.donga.com/107006/)
양자 기술의 위협을 해소하는 양자 보안 (https://it.donga.com/107066/)
AI가 끌고 양자가 민다 - 지속가능한 초지능의 길 (https://it.donga.com/107125/)
작은 가능성을 큰 전환점으로... '링(Ring)' 사례로 보는 스타트업 창의성 (https://it.donga.com/107232/)
지산학연이 만드는 양자 생태계 (https://it.donga.com/107283/)
양자 기술은 실험실에서 시작되어 경험의 확산으로 완성된다 (https://it.donga.com/107382/)
지역거점 양자 인재 양성으로 '퀀텀점프!' (https://it.donga.com/107395/)
양자 기술의 복잡함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양자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에 기여하고자 그동안 연재한 [퀀텀스타트업] 시리즈의 마지막 글이다. 그간의 논의를 종합해 한국의 양자 기술 현실을 진단하고, 생존을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현실이 된 양자전쟁
양자 기술은 더 이상 연구실의 이론이 아니다. 세계 각국이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미국은 구글과 IBM을 앞세워 양자 패권 확보에 나섰다.
구글의 '윌로우' 칩은 기존 슈퍼컴퓨터로 10의 25승 년이 걸릴 연산을 단 5분 만에 처리했다. IBM은 2033년까지 100만 큐비트 시스템 구축을 공언하며 상용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의 행보는 더욱 공격적이다. 2016년 세계 최초로 양자 통신 위성 '묵자'를 발사했고, 베이징-상하이 간 2,000km 양자 통신망을 이미 상용 서비스하고 있다. 76개 광자를 이용한 양자 컴퓨터 '구장'으로 양자 우위를 달성했다고 주장하는 중국은 안후이성 허페이를 양자 허브로 키우며 차세대 기술 패권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10년간 10억 유로(약 1조 6000억 원)를 투입하는 '양자 플래그십'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며, 일본도 토시바, NEC, 후지쯔를 중심으로 실용화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구축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미래 국가 패권을 가를 생존 게임이다.
이에 비해, 현재 대한민국의 위상은 솔직히 미약하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도 분명한 가능성이 있다.
양자 보안 분야에서는 이미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스타트업들이 등장했다. 양자 키 분배와 양자 난수 생성기 기술에서는 세계 톱티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양자 센서 응용 기술도 국방, 의료, 탐사 분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세종시와 대전을 중심으로 한 연구 클러스터도 주목할 만하다. KAIST, ETRI,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이 형성한 연구 생태계는 탄탄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보유한 반도체 제조 기술력도 양자 칩 제조에 큰 강점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양자 기술 격차는 단순한 기술 차이가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성숙도 차이다. 선발 주자들이 쌓아온 연구 인프라, 인재 풀, 투자 규모를 따라잡기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형 생존 전략 4원칙 제안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이 양자전쟁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무작정 따라하기엔 이미 늦었다. 우리만의 차별된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틈새 전략으로 승부처를 선택한다. 슈퍼컴퓨팅 영역에서의 전면전은 피해야 한다. 대신 우리가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특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양자 보안은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영역이다. 5G와 6G 네트워크 보안, 금융 보안, 국가 기밀 통신에서 양자 암호 기술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둘째, 세종시를 세계 최초 '양자-거브테크 도시'로 만든다. 세종시를 양자 기술의 리빙랩으로 활용한다. 정부 세종청사와 행정망, 교통 인프라가 집중된 세종시 특성을 살려 거버먼트 테크놀로지와 양자 기술을 결합하는 것이다. 세종시 행정망에 양자 암호 통신을 구축하고, 자율주행 셔틀버스에 양자 센서를 적용하며, 스마트시티 인프라에 양자 컴퓨팅 기반 최적화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양자-거브테크 도시'가 완성된다.
성공한다면 이 모델을 해외로 수출할 수 있다. 스마트시티와 양자 기술을 결합한 'K-양자시티' 패키지는 새로운 한류가 될 것이다. 싱가포르, UAE,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추진하는 미래도시 프로젝트에 우리만의 차별화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인재 생태계를 지역 거점과 글로벌 네트워크로 확장한다. 양자 기술은 물리학, 전자공학, 컴퓨터과학, 수학이 융합된 초학제 분야다. 기존 틀에 얽매인 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역 거점 대학들과 국책연구기관이 지산학연 협력으로 양자-AI 융합 교육의 거점을 육성해야 한다. 이론 중심 교육이 아닌 스타트업과 연계한 현장형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동시에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도 중요하다. MIT, 옥스퍼드, 도쿄대 등 세계 최고 연구기관과의 공동 연구를 확대하고, 해외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한 장기적 투자가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해외 한인 과학자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이 효과적일 것이다.
넷째, 한국형 협력 모델로 민관 생태계를 구축한다. 정부, 대기업, 스타트업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어야 한다. 미국의 SBIR(Small Business Innovation Research)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되, 우리 현실에 맞는 한국형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정부는 초기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대기업은 상용화와 스케일업을 담당하며, 스타트업은 창의적 혁신을 주도하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삼성, LG, SK, 현대 등 주요 그룹이 양자 스타트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확대하고, 정부는 세제 혜택과 규제 샌드박스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1조원 규모의 '한국 양자 펀드' 설립도 시급하다. 유망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해외 진출 시 발생하는 리스크를 국가가 일정 부분 분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실행력이 승부를 가른다
10회에 걸친 [퀀텀스타트업] 연재를 통해 내린 결론은 명확하다. 양자전쟁의 승부는 기술의 절대적 크기가 아니라 실행력과 확신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구글이나 IBM의 거대한 양자컴퓨터를 따라 만들 필요는 없다. 작지만 확실한 문제를 해결하는 양자 솔루션, 틈새지만 글로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양자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길이다.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완벽한 계획을 기다리다가는 기회를 놓친다. 작은 프로젝트라도 당장 실행에 옮기고,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가며 점진적으로 확장해 가는 접근이 현실적이다.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듯이, 지금 한국의 양자 스타트업들의 상황이 힘들겠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회이기도 하다. 늦게 출발했지만 먼저 간 이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고 실수를 줄일 수 있는 후발 주자의 이점을 활용하고, 선발 주자들이 놓친 틈새를 파고들며 우리만의 독창적 해법을 찾아낸다면, 한국은 분명히 '양자 생존자'를 넘어 '양자 선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시작점이다. 작은 스타트업 하나가 만들어낼 창의적 해법이 곧 한국 양자 기술 전체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글 / 오득창 세종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이사
LG전자에서 23년간 기술/사업개발 분야에서 역량을 쌓았고, 블루오션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이후 민간 액셀러레이터 와이앤아처 부사장, 계명대 핀테크비즈니스학과 교수로 활동했다. 기술 기반 창업 생태계 조성과 퀀텀테크 스타트업 육성 전문가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기자 (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