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 비중 높은 대한민국, 상호 관세 이어 반도체 품목 관세 파도 넘어야
[IT동아 강형석 기자] 2025년 7월 31일(이하 현지시각)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 상호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상호 관세는 25%에서 15%로 낮아졌다. 유럽연합, 일본, 노르웨이, 이스라엘 등과 동일한 관세율이 적용된 것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무용지물 됐다는 논란은 이어지겠지만 당장 새로운 무역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합의로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은 덜었지만 높아진 관세 장벽을 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호 관세 협상에서 반도체는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국가안보 조항, Section 232 of the Trade Expansion Act of 1962)에 따라 반도체 품목 관세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이다. 2025년 7월 27일,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 미국 상무부 장관은 "반도체 수입에 대한 국가안보 조사 결과를 2주 이내에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표에 따라 이르면 2025년 8월 중순경 관세 범위가 정해질 예정이다.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수입품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수입량 제한, 고율의 관세 부과 등 긴급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한 규제 조항이다. 이는 미국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강력한 반도체 관세 카드를 꺼내 교역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25% 상호 관세 피했지만, 반도체 품목 관세 파도 밀려온다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의 조사 범위는 구형 반도체부터 최첨단 반도체까지 광범위하다.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관세나 수입량 제한(쿼터) 조처가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결과에 따라 우리나라 반도체 시장은 투자, 공급망 재구축 전략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2025년 7월 31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추후 부과가 예고된 반도체·의약품 관세도 다른 나라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반도체 품목 관세 적용 범위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어 불확실성만 남아있다. 결국 관세가 부과되면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관세를 부과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지만, 대부분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주로 과세를 통해 상대 국가의 지원금 효과를 상쇄하거나 수입품 가격을 인상시켜 국내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자국 내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명분으로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설계(미국), 소재·부품·장비(일본·유럽), 제조(한국·대만), 후공정(중국·동남아) 등 여러 국가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정 국가의 품목 관세가 과하게 부과되면, 연쇄적인 생산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최종 제품인 스마트폰, PC, 인공지능 가속기 등 반도체를 쓰는 제품 전반의 가격 상승을 유발한다.
2024년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은 1419억 달러(약 197조 1984억 원)로 전체 수출의 21%를 차지했다. 이 중 107억 달러(약 14조 8698억 원)가 미국으로 향했다. 규모는 작지만 반도체 품목 관세에 따른 가격 변화가 시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낸드플래시, 일반 디램(DRAM) 등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주요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상호 관세와 동일한 15%가 적용된다면 두 기업의 매출은 약 2.6% 가량 하락(2024년 총매출 기준)할 것으로 예상된다. 품목 관세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지형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그 어느 때보다 전략적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Made in USA’ 기준이 무엇인지에 따라 반도체 시장 움직일 듯
시장조사기업 가트너의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14% 성장한 7170억 달러(약 997조 7055억 원) 규모로 예상되며, 2030년 1조 달러(약 1391조 5000억 원) 돌파가 전망된다. 메모리 시장은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 수요에 힘입어 20.5%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 시장 리더십을 유지하면서 관세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들은 ‘미국 생산(Made in USA)’을 인정받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생산 제품으로 인정 받으면 관세 부담을 최소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우선 미국 현지 공장 건설 및 투자로 관세 리스크를 회피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할 방침이다.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 반도체는 미국 내 제품으로 인정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 차세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다. 당초 4나노미터(10억 분의 1미터) 공정을 목표로 했으나,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을 겨냥해 최첨단 2나노미터 공정 생산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테슬라와 체결한 AI6 칩 생산 계약은 긍정적 신호지만 꾸준한 고객 확보가 중요한 과제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 웨스트라피엣에 고대역폭메모리(HBM)용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는다. 인공지능 가속기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 시장 공략이 목표다. 2028년 하반기 제품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퍼듀 대학교 등 현지 연구기관과 연구개발 협력도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 현지 생산 기준이 미국 내 공장에서 만들어진 최종 제품인지, 미국에서 만든 부품이 기준인지에 따라 상황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최종 제품 기준이라면 인공지능 연산장치 같이 여러 부품을 조합해 만든 것도 미국 생산으로 인정된다. 만약 부품 단위라면 제품 가격 인상폭이 확대된다. 부품 단위라면 결국 관세 부담을 감내하거나 부품 공장을 미국에 세워야 한다. 각 국가마다 적용되는 관세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에 따라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 변동성은 더 커질 전망이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