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도심의 밤을 그리는 속도의 문화 - 질주 본능 'F1'

이문규 munch@itdonga.com

[IT동아]

최근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본능의 질주: F1(Drive to Survive)'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에서도 F1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높아졌다.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자동차 경주의 속도감과 스릴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수와 팀 간의 경쟁과 협력,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 드라마를 심도있게 조명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SNS와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회자되면서 국내의 모터스포츠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영화 'F1'까지 개봉하면서 F1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화 'F1 더 무비' 포스터 / 출처=네이버 영화소개
영화 'F1 더 무비' 포스터 / 출처=네이버 영화소개

하지만 F1 경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주 자체가 아니라, 이 스포츠가 도시와 지역 공간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활용하며, 경제적, 문화적 가치를 형성하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F1은 개최 도시의 고유한 특성을 강조하고, 그 도시만의 매력을 극대화하며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의 아이콘, F1 서킷과 도시 이야기

전 세계에서 유명한 F1 서킷은 이미 도시의 공간을 재정의하는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서킷은 좁고 복잡한 도심과 아름다운 항구가 경주 코스가 되어 매우 독특한 경관을 제공한다. 좁은 골목과 날카로운 코너로 이루어진 이 서킷은 레이서들에게 극도의 집중력과 정확성을 요구하며, 관중에게는 도심 속 스릴 넘치는 경주를 가까이서 관람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화려한 항구에 정박된 요트와 그 뒤로 펼쳐지는 모나코의 호화로운 도시 풍경은 모나코 그랑프리만의 독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서킷 전경 / 출처=모나코그랑프리티켓닷컴
모나코 몬테카를로 서킷 전경 / 출처=모나코그랑프리티켓닷컴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서킷은 아시아 최초의 야간 F1 레이스로, 도심의 고층 빌딩과 형형색색의 조명이 어우러진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한 레이싱을 보여준다. 이 독특한 시도는 전 세계 관광객을 유치하며 싱가포르를 글로벌 관광지로 자리 잡게 했으며, 경기 기간 동안 진행되는 다양한 축제와 문화 행사들은 도시 전체를 하나의 큰 축제장으로 변모시켰다.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서킷 전경 / 출처=chensiyuan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서킷 전경 / 출처=chensiyuan

이탈리아의 몬자 서킷은 '속도의 성전'이라는 별명을 가진 유서 깊은 장소로, 넓은 자연 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어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역사적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1922년에 설립된 이 서킷은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열정적인 이탈리아 팬들이 모이는 장소로 유명하다.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과 자부심을 높이는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영암의 교훈, 한국에서의 F1은 왜 멈췄나?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 전라남도 영암에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이 건설됐다. 영암 서킷은 총 길이 5.615km, 18개의 코너로 구성된 국제적인 수준의 경기장이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F1 코리아 그랑프리를 개최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 / 출처=나무위키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 / 출처=나무위키

하지만 접근성이 떨어지고 수도권과 멀어서 관람객 방문이 원활하지 않았으며, 경기 기간 이외에는 활용도가 낮아 유지 관리 비용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게다가 지역 사회와의 긴밀한 연계 및 지속적인 문화 콘텐츠 개발 부족으로 인해 결국 F1 대회 유치 계약을 조기에 종료하고 말았다.

이런 경험으로 F1 이벤트 성공은 단순한 시설 투자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공적인 F1 유치를 위해서는 접근성 확보, 지역 사회와의 적극적인 협력, 해외 유입되는 관광객을 위한 호텔, 카지노 등 다양한 문화 이벤트의 결합 등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서울의 빛, 부산의 바다, 제주와 자연이 만드는 한국형 레이스

그렇다면 한국의 도시 공간에서 레이싱이 성공할 가능성은 없을까? 서울 광화문 광장과 여의도 일대는 야경과 현대적인 도시 미학이 공존하는 곳으로, 도심 속 레이싱의 화려함과 도시의 상징성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광화문의 역사적 배경과 현대 건축물이 어우러져 밤에 펼쳐지는 도심 속 경주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 여의도 빌딩숲과 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코스는 도시의 역동성과 자연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주는 무대로 적합하다.

부산이라면 광안리와 해운대, 마린시티와 같은 해안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독특한 도시 축제형 레이싱 이벤트가 가능하다. 특히 광안대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야간 경주는 바다와 도시의 아름다운 야경을 배경으로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수 있다.

제주는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친환경 레이스 시나리오를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적 레이싱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최첨단 친환경 기술을 활용한 서킷을 구축하여 환경과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문화적 축제로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도시별 특성을 잘 살린 F1 이벤트는 한국 도시의 공간적 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나아가 도시 브랜드의 글로벌 인지도까지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레이싱으로 도시를 깨운다

이처럼 F1은 자동차 레이싱 관람을 넘어, 도시를 살아 숨쉬게 하는 문화적 축제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도시는 본래 사람이 살아가고 즐기는 무대이며, 이러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레이싱 축제는 단순 볼거리를 넘어 도시와 시민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도시를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공간이 가진 역사와 문화를 발견하고 그것을 함께 즐길 줄 아는 시선이 필요하다.

한국의 도시들은 레이싱이라는 축제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 브랜드를 강화할 수 있다. 다양한 문화와 이벤트가 어우러진 도시는 전 세계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시민들에게는 자부심을 심어줄 것이다. 서울의 빛나는 야경과 부산의 아름다운 바다, 제주의 깨끗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레이싱 축제는 각 도시의 독특한 매력을 세계에 알리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새로운 문화적 공간을 창조할 것이다.

이제 도시의 심장을 깨우고,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레이싱과 함께하는 축제는 도시가 가진 고유한 정체성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고, 시민과 도시가 함께 성장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글 / 정훈구 담장너머 대표 (wjdgnsrn95@naver.com)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공간기획사인 담장너머의 공동대표. 연세대학교 대학혁신지원사업 전문가이며, 마포문화재단 전시 코디네이터, 하나금융 소셜벤처 창업 퍼실리테이터로도 활동했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기자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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