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스타트업] 6. 작은 가능성을 큰 전환점으로... '링(Ring)' 사례로 보는 스타트업 창의성
[IT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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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7일, 국내 한 전문가 대담에 참석한 아이온큐(IonQ)의 전 CTO인 김정상 교수는, "양자기술은 마치 반도체 산업 초창기의 전자계산기와 같은 단계라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렇기에 대중화의 전환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언급했다. 그의 말대로, 양자기술은 아직 불안정하며, 상용화까지는 제법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미완의 기술은 스타트업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된다.
즉 완성형 기술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가능한 수준의 요소 기술을 조합해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기술의 성숙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조합하고 어디에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창의적 시선이다.
Ring, 완성된 기술보다 중요한 '창의적 조합'
2012년, 제이미 시미노프는 기존 인터폰을 대체할 스마트 도어벨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로 '링(Ring)'을 창업했다. 요소 기술 자체는 그리 혁신적이지 않았다. 와이파이 연결, 모션 감지 기능, 영상 녹화 등은 이미 상용화된 기술이다. 그는 이를 '현관 앞 불안을 해소하는 솔루션'으로 재조합했다. 기존 기술의 창의적 결합, 그것이 링의 핵심 전략이었다.
링은 통신 기술이 유선에서 무선으로 발전한 흐름에 맞춰, 유선 도어벨을 무선 기반 스마트 도어벨로 바꾸고, 모바일 네트워크 기술을 통한 문자 알림과 영상 연결 등 다양한 기능을 무선 환경에 맞게 통합하며 서비스를 점진적으로 고도화했다.
링은 미국의 TV쇼인 '샤크 탱크(Shark Tank)'에 출연했는데, 특별한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투자는 받지 못했지만, 이후 보안 카메라, 스마트 조명, 알람 시스템, 네이버후드(Neighbors) 앱 등으로 보안 생태계 전체를 확장했다. 그러다 2018년에는 아마존에 약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에 인수되며 글로벌 홈 시큐리티 시장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선제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딥테크 기업들의 기술을 '고객의 불안'이라는 문제 해결의 맥락에 맞춰 실용화한 것이 링의 방식이었다. 기술 자체보다 문제 정의와 적용 방식에 집중한 전략이 지속적인 서비스 확장으로 이어졌고, 이 점이 링을 단일 제품이 아닌 보안 솔루션 플랫폼으로 성장시킨 결정적 요인이 됐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 정의'
링의 성공은 첨단 기술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 통신업계가 3G, 4G 등 네트워크 고도화에 집중할 때, 시미노프는 ;사용자 불안' 문제 자체에 집중했다. 링은 기술을 개발한 스타트업이 아니라, 기술을 문제 해결에 적용한 솔루션 스타트업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만들지 않고, 기존 기술을 맥락에 맞게 재구성해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했다. 이 실행 전략이 링을 시장의 선도 기업으로 이끈 핵심이었다.
양자 분야에서도 링과 같은 접근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아직 완전하지 않은 기술을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조합하고, 적용하는 스타트업들이 시장을 열고 있다.
플랑키안(Planckian, 이탈리아): 양자역학 원리를 응용한 차세대 에너지 저장 기술(Quantum Battery) 개발 스타트업. 배터리 충전 효율과 에너지 밀도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에너지 분야에서 양자의 실용화 가능성을 실험 중이다.
Q‑CTRL(호주): 노이즈가 많은 양자컴퓨터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오류 억제 기반 최적화 솔루션을 개발. QAOA 알고리즘의 정답 도출률을 수 배 향상시켰고, IBM, 아이온큐 플랫폼에서 실제 유틸리티급 문제 해결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이와이엘(EYL, 한국): 양자 난수 생성(QRNG) 기술을 기반으로 한 보안 칩셋을 개발. 암호화 모듈과 하드웨어 보안 솔루션을 통해 양자보안 통신의 상용화를 선도하며, 양자 기술의 실질적 보안 적용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완성형 기술을 기다리지 않고, 지금 가능한 범위 안에서 시장의 필요에 먼저 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양자 스타트업의 창의성은 링의 방식에서
스타트업의 경쟁력은 기술의 정교함보다, 그 기술을 어떻게 조합하고 어디에 적용할지를 보는 시선과 실행력에 있다. 링은 이미 존재하던 기술을 재배열하고, 새로운 문제 해결 방식으로 재정의함으로써 보안 생태계의 판도를 바꿨다.
양자 분야에서도 이와 같은 방식은 유효하다. 플랑키안은 양자역학을 에너지 저장에 적용하며, Q‑CTRL은 노이즈 많은 양자컴퓨터에서도 최적화 문제를 해결하고, 이와이엘은 실질적 보안 환경에 양자를 접목시키고 있다. 이들은 기술을 만든 기업이 아닌, 기술의 쓰임새를 재정의한 기업이다.
하나의 기술을 더 정밀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술이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가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양자 스타트업이 시장을 여는 열쇠다.
링의 사례는 말한다. 양자의 미래도 문제 해결을 향한 창의적 시선에서 시작된다.
글 / 오득창 세종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이사
LG전자에서 23년간 기술/사업개발 분야에서 역량을 쌓았고, 블루오션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이후 민간 액셀러레이터 와이앤아처 부사장, 계명대 핀테크비즈니스학과 교수로 활동했다. 기술 기반 창업 생태계 조성과 퀀텀테크 스타트업 육성 전문가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기자 (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