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IT(잇)다] 서울집시 “타협 없는 풍미와 품질로 100년 이상 이어지는 맥주 브랜드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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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강형석 기자] 맥주와 소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주종으로 꼽힌다. 오픈서베이가 진행한 선호 주종 설문에서 맥주 34.1%, 소주 30.2%를 차지했을 정도다. 다양한 주종이 유행을 타고 성장하더라도 맥주, 소주라는 주종이 한국 주류 시장에서 견고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주류 소비의 형태는 빠르게 변화하는 분위기다.
맥주 소비 유행의 변화를 이끈 것은 소규모 독립 양조장이다. 일반 맥주의 틀에서 벗어나 양조장 특색을 살린 제품으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는 중이다. 양조 과정에 과일, 향신료를 접목하거나 유명 브랜드와 협업하기도 한다. 단순히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니라, 차별화된 맛과 경험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주류 소비 가치가 재정의되고 있다.
서울집시(SeoulGypsy)는 맥주라는 친숙한 포맷을 활용하되 '한국의 술'을 만드는 것이 목표인 독립 양조(Independent Brewery) 기업이다. 2017년 설립된 기업으로 좋은 술을 만들겠다는 가치 아래, 한국의 다양한 제철 재료를 탐구하고 맥주에 접목하는 형태의 독특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 맥주에 한국적 요소를 담고자 했는지, 서울집시가 꿈꾸는 미래는 무엇인지 등을 듣기 위해 이현오 서울집시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단순한 맥주가 아닌 한국의 제철 과일로 계절을 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2022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소주, 맥주의 국내 출고 수량 비중은 84%에 달한다. 한국의 술 문화는 소주와 맥주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단순히 ‘술을 마신다’가 아니라 술 자체의 풍미와 분위기 등 경험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되는 추세다.
서울집시도 주류 문화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 주류 시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맥주라는 틀 안에 한국의 자연과 장인 정신, 기다림의 미학을 담아내고자 했다. 시작은 주류 유행 변화에 대한 이현오 대표의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됐다. 이현오 대표는 “지금은 사람들이 다양한 장르의 술을 즐기지만, 과거에는 주류 시장이 단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외 유명 주류 브랜드 제품처럼 꼭 마시고 싶다 느낄 정도로 독창적인 술을 만들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집시는 평범한 맥주 제품에서 보기 어려운 시도를 이어가는 중이다. ‘계절 과일 맥주’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다양한 제철 재료를 탐구하고 이를 맥주에 접목한 것이다. 제철 과일이기에 생산량은 제한적이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서울집시의 맥주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그 시기에만 맛볼 수 있는 ‘한정판’ 이미지 때문이다. 이런 접근 방식은 특정 지역의 기후, 토양, 지역 식물 등이 주류에 녹아 있는 '테루아(Terroir)' 개념과 비슷하다.
“그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하지만, 본질은 맛있는 맥주여야 하기에 품질은 절대 타협하지 않습니다. 재료 선정 과정에서 유행이나 대중성을 쫓기보다, 해당 재료가 맥주와 얼마나 조화로운 맛을 낼 수 있는지, 서울집시가 추구하는 품질에 부합할지 등을 최우선으로 고려합니다.”
이현오 대표는 제피를 활용한 여름 한정 맥주의 예를 들었다. 톡 쏘는 매운맛이 특징인 제피는 수확 시기가 2주일로 짧다. 흔히 향신료로 활용하지만 맥주와 잘 어울릴 것 같아 과감히 사용했고, 소비자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며 주력 제철 맥주로 자리하게 됐다. 이 외에 서울집시는 프리미엄 라인 맥주 제품도 생산한다. 와인 숙성 과정에서 영감을 받아 오크통에 장시간 발효, 맥주지만 독특한 풍미를 품었다. 프리미엄 맥주 제품은 고가임에도 국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공급될 정도로 상품성을 인정받았다.
맥주 풍미에 영향을 주는 효모를 독자 개발할 정도로 양조에 진심인 이현오 대표. 서울집시 맥주의 차별점은 타협하지 않은 양조 공정에 있다고 강조했다. 맥주 제조 시간 단축을 위한 인위적 방법을 쓰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는 게 원칙이다. 양조사 경험을 토대로 구축한 최소한의 기준인 것이다.
서울집시의 또 다른 경쟁력은 자체 매장 운영에 있다. 서울 종로, 한남, 서촌 등 세 군데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서울집시의 맥주를 음식과 함께 경험 가능하다. 매장 내에는 ‘비어텐더’가 상주한다. 고객에게 맥주를 직접 소개하고 서울집시 맥주의 가치를 알리는 등 브랜드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100년 이상 사랑받는 브랜드로 성장하고 싶어
서울집시의 고민은 유통보다 생산량 확대에 집중되어 있다. 일반 맥주 제조사와 달리 서울집시는 긴 숙성 시간이 필요하다. 프리미엄 맥주 제품은 와인 숙성 공법 때문에 생산에 2년~3년 가량 소요된다. 맥주를 시장에 원활히 공급하려면 시설 증설은 필수다. 이현오 대표는 수익 대부분을 시설에 재투자하고 있지만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 어렵다고 말한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외부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 있지만, 서울집시는 외부투자를 받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외부 투자가 기업 철학에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집시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어요. 하지만 외부 투자를 받는다면 단기적인 목표를 쫓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결국 서울집시의 철학인 품질과 타협을 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 올 겁니다. 일부 양조장이 투자를 받으며 품질과 타협하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서울집시는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어려워도 최대한 자력 성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서울집시가 성장과 품질 사이에서 고민하는 과정에 한국농업기술진흥원과 인연을 맺었다.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은 생산량 증대를 위한 시설 투자에 집중하도록 도왔다. 회계, 경영 컨설팅 등 기업 운영에 필요한 실질적인 교육도 제공했다. 이현오 대표는 “좋은 품질의 술을 공급하려면 지속적인 시설 투자는 필수입니다. 하지만 소규모 기업은 과감한 투자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은 서울집시가 시설에 과감히 투자하고 지속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집시를 100년 이상 이어지는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품질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서울집시의 철학을 유지하면서 소비자 신뢰를 쌓아 목표를 달성하고 싶습니다.”
서울집시는 잊혀져 가는 우리나라의 식재료를 재조명하고, 독창적인 주류 문화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국적 테루아' 구축을 위한 맥주 개발 및 양조장 시설 확장을 진행해 증가하는 시장 수요에 대응한다. 소비자 접점 확대를 위한 영업 매장도 추가 확보할 계획이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