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스타트업] 1. 큐비트 나침반으로 양자 시대를 개척하라

이문규 munch@itdonga.com

[IT동아]

1492년,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향해 출항했을 때, 그의 배에는 최첨단 항해 기술은 실려 있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게 확실해진 다음이 아니라, 불확실한 항로라도 먼저 닻을 올리는 '실행력'이었다. 그 선택은 세계사의 방향을 바꿨고, 스페인은 미지의 대륙을 가장 먼저 품은 나라가 됐다.

오늘날 우리는 또 하나의 '대항해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이번엔 바다가 아닌 양자(Quantum) 세계다. '큐비트(qubit)'라는 새로운 계산 단위가 기존의 디지털 문법을 넘어, 전혀 다른 차원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이 기술이 바로 양자컴퓨팅이다.

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의 0과 1만으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 신약 개발, 금융 시뮬레이션, 물류 최적화, 배터리 설계, 암호 해독 등 고난도 문제에서 기존 컴퓨터가 수십 년 걸릴 계산을 단 몇 초 안에 끝낼 수 있는 차세대 계산기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기술은 여전히 낯설고, 비싸며,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성숙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능한 것부터 실험하며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실행력이다.

이 도전에 나선 이들이 있다. 바로 양자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첫 발을 내딛고, 불확실한 양자의 바다에 큐비트 나침반을 들고 뛰어든 개척자들이다.

미국의 '사이퀀텀(PsiQuantum)'은 실리콘 기반 광자 기술을 활용해 상용 양자컴퓨터 개발에 나서며, 현재까지 누적 약 7억 달러(한화 약 9,5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역시 미국의 '자파타 컴퓨팅(Zapata Computing)'은 양자 알고리즘을 실제 산업에 적용하며 글로벌 제약·화학 기업들과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기업은 '아이온큐(IonQ)'다. 이온 트랩 방식을 사용하는 아이온큐는 2021년, 양자컴퓨팅 스타트업 최초로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이 회사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한국인 과학자 김정상 박사다.

메릴랜드대학교 교수였던 그는 실험실을 떠나 기술을 시장으로 이끄는 창업자의 길을 택했다. 그는 '기술'보다 '실행'을 먼저 택한 사람이다. 김 박사의 선택은 한국이 양자 기술 혁신의 중심에 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또 다른 주목할 인물은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의 최순원 교수다. 대전과학고등학교를 조기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MIT에서 양자 물질 및 응집물리학을 연구하며 세계적 석학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까지 그의 논문은 16,000회 이상 인용되었으며, 이는 양자 분야 기초연구에 대한 세계적 신뢰를 상징한다.

최순원 MIT 물리학 교수 / 출처=동아일보DB
최순원 MIT 물리학 교수 / 출처=동아일보DB

이처럼 한국인 과학자들이 글로벌 양자기술 최전선에서 핵심을 맡고 있다는 사실은 기술력뿐 아니라 도전정신에서도 의미가 깊다. 미국과 중국의 양자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지켜보는 나라가 아니라 '실행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

우리 정부는 2023년 '양자과학기술 및 양자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안'을 제정하고 양자기술 산업육성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마련했고, 서울대학교·KAIST·고려대학교 등 주요 대학이 양자 인력 양성 과정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 인프라뿐 아니라, 사업화와 창업을 견인할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은 여전히 미흡하다.

지금 양자 스타트업들이 하는 일은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니다. 그들은 "기술이 완성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지금 가능한 것부터 풀어가며 미래를 준비한다"고 말한다. 이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 이들은 아직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답이 없는 길에 '먼저 도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스타트업이 가진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지금은 작고 낯설지만, 큐비트에서 시작된 이 변화는 반드시 세상을 바꿀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 항로를 개척할 수 있는 '우수한 항해사'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풍부한 과학기술 인재는 물론, 도전정신과 실행력을 갖춘 젊은 세대를 보유한 나라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빠르게 실험하며 방향을 찾는 한국인의 특성은 양자 기술처럼 불확실성이 큰 분야에서 강점으로 작용한다.

스타트업은 실패 가능성을 안고 출발하는 존재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을 누가 먼저 내딛느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보다 용기, 그리고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망설임의 시대는 끝났다. 누가 먼저 움직이는가에 달려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준비됐다.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인재가 있고, 가능성을 믿는 창업가가 있으며, 기술을 현실로 바꿀 저력도 있다. 남은 것은 단 하나다. '양자'라는 미지의 블루오션을 누가 먼저 개척하느냐가 관건이다. 대한민국이 선두에 설 수 있다면, 새로운 시대의 규칙을 우리가 만들 수 있다.

이에, 총 10회에 걸친 이번 연재에서는 양자 기술 기반 창업 기회, 산업별 응용 사례, 글로벌 트렌드, 그리고 한국의 전략적 가능성 등을 짚어본다.

출처=오득창
출처=오득창

글 / 오득창 세종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이사

LG전자에서 23년간 기술/사업개발 분야에서 역량을 쌓았고, 블루오션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이후 민간 액셀러레이터 와이앤아처 부사장, 계명대 핀테크비즈니스학과 교수로 활동했다. 기술 기반 창업 생태계 조성과 퀀텀테크 스타트업 육성 전문가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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