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종합 기업 꿈꾸는 AMD··· ZT시스템즈, 사일로 AI 인수 배경은?
[IT동아 남시현 기자] AMD가 지난 19일(현지 시간), 데이터 서버 및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 기업 ZT시스템즈(ZT Systems) 인수를 발표했다. ZT시스템즈는 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축은 물론 엔비디아 시스템을 설계 및 제조하는 등 인프라 업계에서 선도적인 공급업체로 인정받는 기업이다. AMD는 75%의 현금과 25%의 주식을 통해 총 49억 달러(약 6조 5500억 원)를 조달하며, 2025년까지 인수를 마무리한다.
한편, AMD는 지난 12일에도 핀란드에 기반을 둔 AI 스타트업 사일로 AI(Silo AI)의 인수를 마무리했다고 발표했다. 사일로AI는 알리안츠, 필립스, 롤스로이스, 유니레버 등의 기업에 AI 모델 및 플랫폼, 솔루션 구축 사례를 갖고 있으며, AMD 기반으로 오픈소스 대규모 언어 모델을 구축한 바 있다. 해당 거래는 약 6억 6500만 달러(약 8899억 원) 규모에 전액 현금으로 이뤄졌으며, 사일로 AI 팀은 AMD 인공지능 그룹(AIG)으로 합류한다.
AMD의 인수합병은 올해에만 두 차례 진행됐고, 2020년 자일링스 인수를 포함하면 6번째다. 과거 인수 사례와 최근 인수 사례를 통해 AMD가 추구하는 시장 방향, 그리고 인수 건별로 AMD가 추구하는 목적을 짚어본다.
2020년 자일링스 인수, AI 기업으로의 진출 기반 마련
자일링스 인수 이전 AMD의 가장 큰 인수합병은 2006년 ATI 테크놀로지 인수다. ATI는 1985년 설립된 캐나다의 그래픽 카드 및 칩셋 제조 업체로, 2000년대에는 엔비디아의 주요 경쟁사였다. 당시만 해도 그래픽 카드는 게임용 제품으로 여겨졌지만, AMD는 GPU의 부동소수점 연산 처리 능력이 컴퓨터 성능의 핵심이 될 것으로 판단해 ATI를 인수했다.
AMD는 ATI 인수 직후, 시그라프 2006 행사에서 AMD 최초의 컴퓨팅 가속기 제품군인 ‘파이어스트림’을 출시했고, 이 기술력은 파이어 프로 서버, 라데온 스카이, 라데온 인스팅트, 라데온 인스팅트 CDNA 아키텍처 제품군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AMD가 ATI를 인수한 덕분에 현재 인스팅트 MI300 시리즈가 존재할 수 있었고, AI 가속기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다만 AMD는 ATI 인수 이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ATI 인수 이후 6년이 지나 2012년 서버 하드웨어 기술 업체 씨마이크로(SeaMicro)를 인수했고, 2016년 CPU 및 GPU 온도 관리 프로그램 개발사 하이알고(HiAlgo), 2017년 무선 및 디스플레이 기술 기업 니테로(Nitero)까지 CPU 및 GPU에 필요한 기술기업 세 개를 인수한 게 전부였다.
기조의 변화는 2020년 자일링스 인수 시점부터다. 리사 수 최고경영자는 향후 10년 간 고성능 컴퓨팅 시장에서 클라우드, 엣지, 지능형 장치 등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2020년 미국의 반도체 설계 기업 자일링스(Xilinx)를 총 490억 달러 (약 65조 5700억 원) 규모로 인수한다.
자일링스는 프로그래밍을 지원하는 설계형 반도체(FPGA), 적응형 시스템 온 칩(SoC), 엣지 장치 및 소프트웨어 등을 취급한다. AMD는 적응형 및 임베디드 컴퓨팅 그룹(AECG) 사업부를 설립해 기업을 통합했으며, AMD 버설(Versal) 어댑티브 SoC, 스파르탄 및 킨텍스, 징크(ZYNQ) 등의 FPGA 포트폴리오로 AI 및 엣지 컴퓨팅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덕분에 AMD는 과학, 의료, 항공우주, 자율주행 기술 등의 유망 분야로 사업 범위를 넓힐 수 있었으며, 기존 AMD 서버 및 AI 가속기 등과 합쳐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적재적시 인수했던 AMD, 이번 인수도 같은 맥락
앞서 ATI 인수, 그리고 자일링스 인수의 공통점은 시장이 변화하는 시점에 적절한 선택지라는 점이다. 자일링스 합류 이후 AMD의 2022년 매출은 전년 대비 44% 늘어난 236억 달러(31조 5800억 원)를 기록했다. 임베디드 제품군은 전년 대비 19배 높아진 14억 달러(약 1조 8700억 원), 운영 이익 규모는 39배 가까이 늘어났다.
자일링스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친 AMD는 AI 역량 강화에 몰두하고 있다. 인수 기업은 22년 4월 펜산도 시스템즈(Pensando Systems), 23년 8월 밉솔로지(Mipsology), 같은 해 10월 노드.AI(Nod.AI), 24년 7월 사일로 AI, 그리고 최근 인수한 ZT시스템즈까지 총 다섯 개다. 이중 펜산도 시스템즈, ZT시스템즈는 서버 인프라 관련, 밉솔로지와 노드.AI, 사일로 AI는 AI 역량 강화를 위한 인수다.
AMD AI 가속기의 최대 약점은 소프트웨어 지원이다. 엔비디아는 20여 년에 걸쳐 쿠다 생태계를 구축해 온 반면, AMD는 2016년 ROCm을 발표한 뒤 작년에 들어서야 윈도우를 지원할 정도로 속도 차이가 난다. 자체 개발만으로는 엔비디아를 따라가기 힘든 만큼, 기업 인수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중이다.
밉솔로지는 텐서플로, 파이토치, 오닉스 등 업계 프레임워크를 지원하는 지브라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현재는 AMD 하드웨어의 AI 모델 배포 간소화를 위한 소프트웨어 스택을 개발한다. 이어서 인수한 노드.AI는 오픈소스 기반 AI 소프트웨어 개발사로, 지금은 AMD 하드웨어에 맞춤 설계된 고성능 AI 모델의 배포 효율 및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제공 기술 등을 개발한다.
가장 핵심은 사일로 AI 인수다. 로이터가 보도한 사일로 AI 인수 금액은 6억 6500만 달러로, 구글의 영구 딥마인드 인수 이후 가장 큰 AI 스타트업 인수다. 사일로 AI는 유럽의 사설 AI 연구소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스마트 기기, 자율주행차, 인더스트리 4.0, 스마트 시티 구축과 관련해 200여 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AMD는 사일로 AI 인수를 통해 그간 엔비디아에 비해 약점으로 손꼽혔던 AI 소프트웨어 개선 및 모델 개발, 배포 가속화 작업을 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 인수를 통해 AI 소프트웨어를 강화하는 한편, 주력 사업인 데이터 서버 시장 영향력도 키우고 있다. 22년 4월 인수한 펜산도 시스템즈는 데이터 서버 운영 환경을 위한 DPU(Data Processing Unit) 반도체 생산 및 관련 소프트웨어 제조 기업이다. 지금은 AMD 펜산도 DPU 제품군으로 포트폴리오가 편입됐고, AMD 에픽(EPYC) 등 자사 데이터센터 제품군의 성능과 확장성에 쓰이는 중이다.
펜산도 인수가 제품 효율화라면, ZT시스템즈 인수는 반도체 설계부터 안정적인 시장 공급까지 통제력을 높이려는 시도다. 서버 인프라 시장의 주요 사업자로는 델 EMC, HPE, 슈퍼마이크로가 있다. 다만 시장 점유율이 인텔 75%대 AMD 25%로 큰 만큼 운동장 자체가 기울어있다. 그래서 ZT시스템즈를 통해 AMD 기반 공급망을 안정화하고, 경쟁사 등 외부 변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게 목적이다. 또한 AI로 인해 시장 변화가 빠른 만큼, 직접 시장에 참여해 대처하겠다는 의의도 있다.
팹리스 넘어 종합 AI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게 목적
AMD는 올해 초 MI300 시리즈를 공개하면서 CPU 제조사에서 AI 반도체 종합 기업으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하지만 AI 가속기 시장에서는 소프트웨어 생태계 부족으로 엔비디아에 밀리고, CPU 시장에서도 여전히 인텔 점유율이 높다. 인텔의 저력이 약화했음에도 시장 점유율 차이가 두 세배에 이른다.
그 와중에 엔비디아는 신제품 주기를 2년에서 1년으로 앞당겼고, 인텔은 서버 및 AI 반도체를 넘어 파운드리로 사업을 확장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엔비디아의 대체제로도 점유율을 확보할 수 없고, 몇 년뒤 인텔이 자체 파운드리로 가격 경쟁력 및 기술력까지 확보하는 시점에는 어렵게 올린 점유율을 도로 뺏길 수 있다.
AMD 인스팅트 AI 가속기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복합적이고, x86, 서버, GPU까지도 여전히 인텔 점유율이 높다. 서버 시장에서는 Arm 기반의 자체 설계 반도체가 대세가 됐고, 노트북 및 AI 시장은 퀄컴이 경쟁사로 등장했다. 가능한 여력이 있을 때 많은 행동을 취해야 할 시점이다. 연이은 AMD의 투자가 20여 년 전 ATI 인수처럼 빛을 발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