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Market-Fit] 잘 팔리는 제품과 서비스의 비밀 [1]

결핍의 시대에서 풀소유의 시대로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했을 때를 묘사한 그림 / 출처=패스파인더넷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했을 때를 묘사한 그림 / 출처=패스파인더넷

무슨 그림이죠? 콜롬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했을 때를 묘사한 그림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마케팅이나 사업 기획, 상품 기획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관련한 대부분의 이론들이 1970년대나 1980년대,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1990년대까지 정돈이 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 때에는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고객의 니즈를 찾아 거기에 맞춰 괜찮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면 팔릴 거야’라는 전제로 모든 이론이 나왔습니다. 지금도 사실 그 이론은 기본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그 이론대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저 그림을 보여드린 것입니다. 아직 아무도 찾지 못한 신대륙 같은 고객의 니즈를 찾자는 생각은 옛생각입니다. 21세기인 요즘 대입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거를 고객들의 모든 니즈가 아직 충족되지 않았던 ‘결핍의 시대’라고 말한다면, 요즘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아마, 개발도상국 이상의 경제 규모에서는 고객들이 이미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왠만한 니즈를 다 충족한 ‘풀(Full)소유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핍의 시대에 나온 이론을 풀소유의 시대에 적용하려고 하다 보니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물건은 필요해서 삽니다 / 출처=패스파인더넷
모든 물건은 필요해서 삽니다 / 출처=패스파인더넷

이 사진을 보시면 충격적이게도 사진 속에 쓰레기는 없습니다. 쓰레기통에 있는 쓰레기 이외에 다 쓰는 물건들이에요. 글을 읽고 계신 일부분들은 우리 집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일단 물건을 다 샀을 것입니다.

잘 팔리는 제품과 서비스의 비밀을 먼저 공개합니다. 여러분들이 상대해야 할 '현재 시장과 고객에게 없는 니즈를 찾아, 그것을 만족시켜서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가질 것을 모두 가진 고객이 또 다시, 더 많이 사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요즘의 상품 기획과 신사업의 핵심입니다. 위 사진 속에 있는 고객이 물건을 더 사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이 고객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 3가지

이런 고객들한테 내 물건과 서비스를 팔도록, 몇 차례의 기고문으로 여러분의 시각을 전환할 것입니다. 일단 여러분들이 고객에게 가진 편견 세 가지부터 깰 거예요.

1.고객은 니즈를(Needs) 충족시켜주면 지갑을 연다? 이것은 마케팅에서 거의 기본적인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은 고객 니즈를 아무리 충족시켜줘도 왠만해서는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풀소유를 하고 있다보니 왠만해서는 집에 다 있으니까요.

2.고객은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렇죠, 사실 저 전제조건이 없으면 사업모델과 제품, 서비스를 설계하기 너무 힘들어져요. 왜냐하면 합리적인 고객이어야 우리가 좋은 제품을 만들 때 그것을 살 거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고객이 항상 합리적이고 능동적일까요?

3.고객은 반드시 필요해야 제품이나 서비스를 산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과연 저럴 때만 뭔가를 살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최근 한 달 동안 산 물건들 중에서 '내가 진짜 이거 아니면 못 산다, 이 물건 없으면 불편해서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제품이 몇 개나 될까 한번 떠올려 보세요.

앞서 말한 1, 2, 3번은 당연히 받아들여야만 하고 이 전제를 깔고서 사업을 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안에만 갇혀 있으면 정말로 팔릴 만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고객은 니즈가 아니라 욕망과 판타지에 반응하고 자극한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객이 필요해서 살 것이라는 수동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고객이 내 제품과 서비스를 소유하고 싶게 만들어야 됩니다.

첫번째, 고객은 니즈에 지갑을 열지 않는다. 실제로는 판타지에 반응한다.

앞서 이야기한 고객에게 가진 편견 세 가지 가운데 첫번째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예시를 하나 들겠습니다. 흔히 '친환경 제품이면 가격이 10%가 더 비싸도 산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친환경 제품을 개발해서 팔아보셨나요? 얼마까지 가격을 높여서 팔아보셨나요? 효용이 같지만, 친환경 제품이 아닌 경쟁사 제품과 비교해 얼마나 비싸게 팔아보셨나요? 실제로는 가격이 10% 비싼 제품을 고객은 사지 않습니다. 내가 사고 싶은 제품이 있고, 그 제품과 가격이 같으면서 친환경이라고 하면 특정 고객군이 아닌 이상 관심은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격이 10% 비싸다고 하면 사는 것을 망설일 것입니다. 즉, 친환경이라는 속성 자체가 제품을 사야 할 첫 번째 이유는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친환경 의식조사 결과 / 출처 = KB 트렌드 보고서 ‘소비자가 본 ESG와 친환경 소비 행동’ (’21.9)
친환경 의식조사 결과 / 출처 = KB 트렌드 보고서 ‘소비자가 본 ESG와 친환경 소비 행동’ (’21.9)

다른 예시도 볼까요? 식품 업계에서의 비건 음식, 혹은 건강한 음식 이야기입니다. 시장 조사를 하면 흔히 '고객이 자기 건강을 지키려고 살 것이다'고들 말하는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죠. 흥미로운 점은, 이런 시장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제품을 출시한 식품회사들이 거의 다, 예외 없이 실패한 점입니다. 특히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크게 손해 본 곳이 우리나라 식품 대기업 A사입니다.

A사의 대표 브랜드인 B라면, 이 가운데 건강에 좋다는 B라면이 있어요. 사실 건강에 좋다기보다는 원래 B라면보다는 건강을 지키는데 더 낫다 정도가 보다 정확할 듯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B라면 ㅇㅇ’이라는 이름으로 고급화해서 출시했습니다. 아마도 드셔보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대기업 A사는 우리나라 비건, 건겅 음식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말, 그리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들 상품을 고객이 원할 것이라는 말을 10년 전부터 들었다며, 과감하게 공장 생산 라인을 새로 만드는 투자를 했습니다. 하지만, 수요가 아주 적어서 출시 후 5년여가 지난 지금도 심각한 가동율 문제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A사는 지금도 고생 중입니다. 그런데, 스타트업 대비 훨씬 자원이 풍부하고 자금이 탄탄한 A사가 조사 없이 쉽게 의사결정을 내렸을까요?

A사는 실제로 ‘B라면 ㅇㅇ’을 개발하려 시장 조사를 했고, 필자는 다른 사업 개발 컨설팅 과정에서 그 결과를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시장 조사 결과 '고객은 라면을 먹고 싶어하면서 건강까지 챙기고 싶어한다', '면을 기름에 튀기지 않아 몸에 더 좋을 듯하다', '유탕면과 달리 면의 식감이 쫄깃하고 일본 라멘과 맛이 비슷해 좋다'는 결과, 그야말로 대박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A사는 공장을 새로 짓고 라인을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라인 가동율이 낮아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고객들은 말을 그렇게 했지만, 정작 제품을 잘 안 사 먹었어요. 시장 조사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실제로는 그냥 튀긴 면으로 만든 라면을 먹었고 먹고 있습니다. 새로운 라면의 면도 맛있기는 한데 기름기가 빠진 탓에, 그 무언가 2% 모자라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즉, 고객 인터뷰와 시장 조사를 아무리 많이 해도 이것만 갖고는 전략을 세우기 모자랍니다. 물론 참고해야 하고 기본 정보를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여기에 한 단계 더 깊게 들어가 봐야만 합니다.

여러분도 시장 조사와 인터뷰를 많이 하고 통계로 쓰고 계실 텐데, 마케팅과 사업전략 전문가들끼리는 우스개 소리로 '결국 고객은 다 싼 데서 산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쿠팡'이 결국 고객이 많이 쓰는 서비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쿠팡이 가장 싸지 않아요. 그런데 여전히 고객들 머릿속에서 쿠팡이 꽤나 싸다는 이미지가 남아있습니다.

그러면 고객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했는가?

위와 같은 경우들을 떠올리면서, 제품을 사는 고객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고객의 말만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 모두 한 단계 더 깊게 들어가 심리적 요인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모두 반드시 이렇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추론해볼 수 있다' 정도로 보시면 좋겠어요. 고객 니즈로 알 수 없는 부분을 논리적 추론으로 꺼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연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친환경 제품을 사는 고객을 예로 들겠습니다. 진심으로 친환경을 생각하고 생각과 행동이 항상 일치하는 소수 고객은 제외하고, 가끔 혹은 종종 친환경 제품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을 생각해보세요.

이들은 ‘자기가 친환경에 기여하는 기분’이 드니 친환경 제품이나 서비스를 삽니다. ‘나 좀 있어 보여’라며,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이 앞서지요.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모금을 할 때 사람들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이런 감정을 노골적으로 만드는 기법은 이미 고전적입니다. 더더욱 노골적인 이유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친환경적을 생각할 만큼 의식 있는 나’입니다. 자기만족을 넘어 남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심리죠.

이런 심리가 잘 드러나는 경우를 예로 들겠습니다. 취미 활동 가운데 어딘가 놀러가서 혹은 조깅을 하면서, 심지어는 바다나 계곡에 다이빙하며 쓰레기를 줍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심히 생각해보면, 진짜 이런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SNS에 사진을 많이 올리지 못합니다. 활동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언제 사진 찍고 올릴까요? 반면, 많은 사람들은 이런 활동을 하는 자기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립니다.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거죠.

또 하나 고객이 제품과 서비스를 살 때를 가정합니다. 그러면 ‘환경 파괴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도 있을 겁니다. 환경 파괴에 대한 죄책감을 자극 받는 경우지요. 일반적으로 언제 이런 죄책감이 제일 많이 들까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분리 수거를 할 때 들 것입니다. 내가 정말 지구를 아프게 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 때, 타이밍을 맞춰 광고나 홍보 활동을 펴서 제품과 서비스를 파는 일은 흔합니다.

한마디로 고객은 '니즈가 아니라, 자신의 속마음을 자극하거나 해결해주는 제품 혹은 서비스에 지갑을 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고객은 항상 합리적이고 능동적으로 판단하고 소비하지는 않는다.

고객은 매우 수동적이에요. 제품이나 서비스를 살 때 일일이 비교하는 일이 드뭅니다. 일반 고객뿐만 아니라 B2B (Business To Business) 사업에서의 기업 고객조차도 종종 이런 성향을 보입니다.

고객은 자기가 가진 돈이 얼마인지에 따라, 혹은 내 돈이냐 남의 돈이냐에 따라,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이나 가치에 맞춰서 얼마나 합리적이고 능동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지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가 내가 지불한 가격에 미치지 못할 상황까지 반영해서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잃을 것인지 본능적으로 계산합니다. 이런 위험이 적으면 제품과 서비스를 비교는 하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이 비교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느 순간이 되면 고객은 의사 결정 프로세스를 아예 멈출 수도 있어요. 하다가 귀찮다는 생각이 들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과 행동에는 오히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면이 있습니다. 고객이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얼마나 쓸지 결정하고 행동한 결과라서입니다.

고객은 우리 생각보다 수동적입니다 / 출처=패스파인더넷
고객은 우리 생각보다 수동적입니다 / 출처=패스파인더넷

위 사진은 평소 필자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의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주중에 열심히 일하고 나면,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정말 피곤해집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집에 쓰러져 있을 것입니다.

이 때 SNS를 보면 어떤가요? 나 빼고 다 놀러 다니고 있는 것을 봅니다. 밖에 나가 꽃놀이도 가고 캠핑도 가고 쇼핑도 가고 맛집 찾아다니고…...모두 이런 가운데 나만 집에서 가만히 누워 우울하게 보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잠시 밖에 나가보면,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나 야외 주차장에 생각보다 차가 많은 것을 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내 생각과는 달리, 밖에 놀러 나간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열 명 중에 한두 명 놀러 나갔고, 나머지 여덟 아홉 명은 나처럼 늘어져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귀찮음에 매우 취약하고, 그래서 은근히 수동적입니다.

요리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의 선택은?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아도, 실제 식재료 판매량은 많이 늘지 않는다 / 출처=TVN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아도, 실제 식재료 판매량은 많이 늘지 않는다 / 출처=TVN

사람이 귀찮음에 약하다는 증거를 대 볼까요? 음식을 만드는 TV 프로그램을 보겠습니다. 상식저으로 생각하면, 음식을 만드는 TV 프로그램이 방송될 때 가장 많이 판매되는 상품은 무엇일까요? 온오프라인에서요.

지금 우리가 음식을 만드는 TV 프로그램을 본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요리사가 시원한 무국을 만듭니다. 그러면, 이 방송을 보는 사람은 무엇을 사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일단 무를 사고 고기를 사야 합니다. 무국을 만드는 재료를 살 것이라는 사실이 정상적인,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TV 프로그램은 주로 저녁 시간대에 방송됩니다. 저녁 식사를 할 때 혹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야식을 먹을 타이밍에 주로 방송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합니다. 고객이 음식을 만드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자극을 받아 요리 재료를 사도록 이끌려면, 저녁 식사 시간이 아니라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에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나요?

예, 맞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음식을 만드는 TV 프로그램을 방송해도 음식 재료 판매량은 그리 많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정작, 방송 후 바로 반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제품과 서비스입니다. 위의 상황을 견줘보면, 무국을 만드는 TV 프로그램이 방송되면 정작 인기를 모으는 것은 배달음식입니다.

고객은 무국을 내가 직접 맛있게 만들어 먹겠다는 이성적인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당장은 재료가 없으니 주말에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다 해 먹겠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당장 식욕을 자극받아 무국을 먹고 싶은 상태가 되니, 배달음식을 주문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절대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귀찮게 여깁니다.

건강정보라 말하는 프로그램 속 광고를 본 사람들의 선택은?

건강 정보를 보는 고객들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 출처=방송사
건강 정보를 보는 고객들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 출처=방송사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아침과 이른 저녁 시간에는 건강 정보를 제공한다는 건강 프로그램이 공중파와 케이블 TV를 장악하다시피 자주 방송됩니다. 건강 프로그램이 한참 방송되는 동안 다른 채널, 특히 홈쇼핑 채널을 보면 건강 프로그램이 소개한 건강 노하우 혹은 성분을 담은 제품을 팔고 있습니다. 온라인이나 모바일에 푸시 광고, 배너 광고도 함께 노출되고요.

건강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노하우 혹은 성분을 이야기하는 것이 ‘광고’라는 사실을 공식 언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한 것이 최근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유형의 광고는 아는 사람들만 알고 있었어요.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정보와 의견을 방송으로 만들고, 이를 관련 제품과 연계해 파는 마케팅 기법은 소위 판을 깔고 고객 니즈를 만들어내서 물건 파는 기업들이 수십년 간 구사한 전술입니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고객이라면 이런 방송을 몇 번 본다고 해서 물건을 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전술이 효과가 좋습니다. 방송을 보고 자극 받아 실제 물건을 사는 일이 잦습니다. 그러니 기업들이 많은 광고비를 내면서까지 건강 프로그램에 전문가를 출연시켜, 광고가 아닌 듯한 광고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광고를 보고 제품을 하나 둘 사다 보면, 어느 순간 집 안이 건강기능식품으로 가득 찹니다. 이처럼, 고객들은 생각만큼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돈을 아끼기 위한 마트와 시장 투어의 결과는?

고객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예시를 또 하나 들겠습니다. 우리는 돈을 아끼겠다며 대형 마트, 주변 시장에서 상품 가격을 조사합니다. 이를 토대로 가장 싼 상품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주말에 두세 곳을 돌며 상품을 삽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살펴보면 여러 곳을 돌며 가장 싼 상품을 사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 전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 곳을 돌면 몇천 원이나 몇만 원을 아낄 수는 있겠지만, 그 만큼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할 것입니다. 차량으로 이동한다면 기름값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렇게 돈을 아꼈다고 해도, 고작 몇천 원을 아낀 수준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몇천 원을 아꼈다고 좋아하는 것이 고객입니다. 당장 눈 앞에서 계산해 아낀 만큼 돈을 벌었다고 느꼈을 테니까요. 우리는 이런 고객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팔아야 합니다.

또 하나, 대형 마트에 가면 벌크 제품이 많습니다. 개당 단가를 따지면 아주 싼 상품들입니다. 고객은 정말 싸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벌크 상품을 삽니다. 그런데, 그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대부분은 다 먹지 못하고 일부를 결국 버립니다. 4인이나 5인 가족이라면 모를까, 2인이나 3인 가족이면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빵 벌크 상품의 가격이 3만 원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이 벌크 상품의 절반 크기 제품이 2만 원이라고 가정하고요. 보통 소포장일수록 개당 단가가 비쌉니다. 그러니 우리는 대부분 3만 원짜리 빵 벌크 상품을 삽니다. 유통기한 내에 이것을 다 먹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요. 우리가 이것을 절반만 먹고 나머지를 버린다면, 1만 5000원 상당의 가치만 먹고 나머지를 버리는 셈입니다. 이럴 바에야 개당 단가는 비싸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2만 원짜리 빵 벌크 상품이 더 합리적입니다. 결과를 보면 1만 원을 아낀 셈이니까요. 기업은 식품류 이외 상품도 벌크나 묶음 판매를 하면서 “집에 쟁여두세요”라는 마케팅 메시지를 강조하며 개당 단가가 싸다는 것을 내세우지만, 이는 우리 기대만큼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케팅과 사업모델의 3 뮤즈?

참고로 필자는 마케팅이나 사업 전략, 기획을 고민할 때 항상 참고하는 것(뮤즈)이 세 개 정도 있어요. 하나는 '홈쇼핑'입니다. 실시간 판매에 있어서 온오프라인과 모바일의 어떤 채널보다도 훨씬 더 파급력이 큽니다. 한물 간 유통채널이라는 평가를 누군가는 하지만, 한시간에 몇억 원에서 몇십 억 원 상당의 제품이 팔리는 것을 보고 있자면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시간 제약을 갖고 실시간 판매를 하다 보니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메세지가 훨씬 더 자극적이고 정교해요.

게다가 20년 이상 생방송 판매 경험을 쌓았으니, 노하우가 어마어마합니다. 온라인과 모바일 라이브 쇼핑도 결국 홈쇼핑 업체들에게 하나 둘 접수되는 것을 보면 이 노하우의 위력을 압니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문제가 된 SNS의 허위, 과장 광고나 불법 광고도 홈쇼핑에서는 감히 '거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어요. 아무리 자극적으로 가더라도 불법까지는 가지 않거든요. 당장 광고 카피나 메시지를 뽑고자 할 때 홈쇼핑 콘텐츠를 참고하면 아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이비 종교'예요. 지금까지 사람이 만든 모든 제품과 서비스 중에 가장 완벽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가가 매우 낮고 동일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해서 활용할 수 있는데 고객이 맹목적으로 돈을 쏟아붓게 만듭니다. 이런 사업모델이 어디에 있어요?

마지막은 '다단계 마케팅'입니다. 네트워크 마케팅, 팬덤 마케팅 등 이름을 우아하게 바꿔 변신하면서 합법과 불법 사이를 오가고 열심히 자기를 포장하지만, 기본 원리는 다단계 마케팅으로 이미 다 옛날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뮤즈를 모두 믿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불법 요소를 빼고 어떻게 참고할지, 어떻게 조합해서 내 제품과 서비스와 사업에 활용할 지 고민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당신이 고객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 중 세 번째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글 / 강재상 패스파인더넷 공동대표

삼성SDI 마켓인텔리전스팀 마케팅 전략, 현대카드/캐피탈 커머셜 브랜드 매니저와 마케팅 담당을 거쳐 두산인프라코어 APE 마케팅 파트장, ST 유니타스 스콜레 본부장과 브랜드 메이저 전략실장을 맡았습니다. Product-Market-Fit을 토대로 스타트업과 로컬 비즈니스, 대기업 사내벤처와 신사업·신제품개발팀에게 교육과 컨설팅을 제공합니다. 사업과 일을 키우려는 사람을 위한 C 라운지도 운영합니다. 저서로 <당신의 제품과 서비스가 팔리지 않는 이유>, <뉴 노멀 시대, 원격 꼰대가 되지 않는 법>,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습니다>, <일의 기본기, 일 잘하는 사람이 지키는 99가지>를 썼습니다.

정리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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