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ing] 들깨, 메밀로 만든 초콜릿…카카오 대체 식품이 뜬다
[IT동아 권택경 기자] 전 세계적 기후 변화로 주요 작물들의 지속가능성에 의문 부호가 붙으면서 식품 업계에서는 대체 원료를 찾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만 40% 이상 가격이 급등한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작황 악화, 아동 노동 착취, 중금속 오염 등 여러 문제로 지속가능성에 적신호가 켜진 대표적인 작물로 꼽힌다. 기존에도 지중해산 콩과 식물인 캐롭(Carob) 등이 대체재로 활용됐으나, 실제 카카오 풍미와는 거리가 있어 시장에 완전히 자리 잡지는 못 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스타트업이 실제 카카오와 풍미가 유사한 카카오 대체 원료 개발에 나서 눈길을 끈다.
지난 9일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대체식품 소재 전문 스타트업 HN노바텍 사무실에서 직접 맛본 대체 카카오 시제품은 미리 귀띔을 받지 않았다면 실제 초콜릿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풍미가 유사했다. 겉모습도, 맛도 영락없는 초콜릿이지만 실제 원료에서 카카오가 차지하는 비율은 2%에 불과하다.
카카오를 대신하는 건 들깨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유박), 메밀껍질 등 부산물이다. 이들 원료에서 카카오 풍미를 재현할 수 있는 성분만 추출해 사용한다. 친환경(Eco) 대체 카카오 원료라는 의미에서 에카오(Eco+Cacao)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재 시제품에는 식품 표기법에 따라 카카오, 초콜릿 등 표현을 쓰기 위해 부득이 카카오 2%를 넣었지만, 에카오만 100% 사용해도 풍미에는 차이가 없는 수준이라고 HN노바텍 측은 설명했다.
HN노바텍은 원하는 여러 재료에서 원하는 요소만 추출하고 조합해 전혀 다른 식재료를 재현하는 자체 기술에 ‘구성 요소 모방 기술(Ingremimetic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분자 분석 방식이나, 안전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화학 합성 방식과는 구별되는 혁신 기술”이라는 게 HN노바텍의 설명이다. 생산 단가도 카카오에 비해 20% 정도 저렴하다.
이처럼 HN노바텍이 대체 카카오 원료 개발에 나선 것은 현재 협업을 논의 중인 미국의 모 대형 식품기업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글로벌 식품기업들이 카카오 대체 소재나 작물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작황 악화로 카카오 가격은 날로 오르는 추세다.
지난해 11월 뉴욕선물거래소에서는 그해 12월 인도분 카카오 가격이 톤당 3786달러를 기록하며 44년 만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코트디부아르, 가나, 카메룬, 나이지리아 등 서아프리카 등 전 세계 카카오 수확량의 75%를 차지하는 주요 카카오 생산지들이 엘니뇨 현상을 겪으며 작황이 악화해 카카오 공급 부족 현상이 벌어진 탓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도 이런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대체 카카오는 초콜릿의 중금속 오염 문제로부터도 자유롭다는 점도 장점이다. 미국 소비자 매체 ‘컨슈머 리포트(Consumer Reports)’가 지난 2022년 시중의 초콜릿 제품 28개를 조사한 결과, 23개 제품에서 카드뮴과 납이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검출됐다. 컨슈머 리포트는 지난해 에도 48개 제품으로 규모를 확대해 재조사를 진행했는데 16개 제품에 여전히 중금속 함량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 브랜드, 공정무역, 유기농 제품 여부와 무관하게 카카오 함량이 높은 다크 초콜릿일수록 중금속 함량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카카오 자체가 생산지의 오염된 토양과 대기로부터 중금속에 노출되는 탓이다.
HN노바텍 관계자는 “대체 카카오 활용 제품들이 중금속 문제로 기피하는 소비자들에게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카페인이 없는 만큼 영유아, 임산부 등 카페인 섭취가 제한적인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식품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HN노바텍은 에카오를 초콜릿의 원재료인 카카오매스 형태로 공급해 식품업체들이 필요에 따라 여러 형태로 가공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소비자 대상으로는 가공품 형태의 제품을 자체 브랜드로 출시하는 것도 준비 중이다.
김양희 HN노바텍 대표는 “카카오 경작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카카오 대체 원료에 대한 수요는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라며 “에카오를 통해 전 세계 대체 카카오 원료 시장을 선점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