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ing] 에스엘즈 “XR, AI 활용해 플랜트 설계와 시공 효율 극대화할 것”
[IT동아 권택경 기자] 2015년 게임 엔진인 언리얼 엔진이 무료화를 선언하면서 여러 산업에서 이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활성화됐다. 건축 업계도 그중 하나다. 3D 게임 속 건물을 만들 듯 실제 건설물이나 설계안을 시각화해 의사 결정 과정을 효율화하려는 시도다. 여기에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등 이른바 확장현실(XR) 기술까지 더해지면서 시공 현장에서 이를 활용하려는 시도까지 나타났다.
콘테크(ConTech, 건설+기술) 스타트업 에스엘즈(SLZ)를 창업한 정재헌 공동대표는 이처럼 건축 업계에 3D, XR 도입 물결이 일 때 그 가능성을 일찌감치 눈여겨봤다. 현재는 서울시립대 스마트시티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한 정 대표는 이전에는 공동창업자이자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인 이유미 대표와 함께 가상경관설계 수업을 개설하여 학생들에게 XR을 활용한 조경 및 건축 설계를 가르치기도 했다.
다만 정작 졸업한 학생들이 현업에서는 XR을 활용할 기회를 좀처럼 찾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생각보다 실무 현장에서의 확산이 더딘 탓이었다. 그 원인에 대해 정 대표는 “업계가 공유하는 플랫폼이 있는 게 아니라 저마다 그때그때 필요한 XR 콘텐츠를 매번 일일이 개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3D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건설업에 대한 이해도 또한 높아야 한다는 점 또한 XR 활용의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업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졸업한 제자들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하겠단 목표에 서울대 강사 시절 연을 맺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이유미 교수 또한 공감했다. 그렇게 의기투합한 두 사람이 2020년 공동 창업한 에스엘즈는 첫 제품으로 올해 초 ‘콘빌드 원’을 출시했다.
콘빌드 원은 3차원 설계 도면이라 할 수 있는 BIM(건축 정보 모델링, 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을 언리얼 엔진을 통해 자동으로 XR 콘텐츠로 변환해 주는 소프트웨어다. 매번 XR 콘텐츠를 직접 개발할 필요할 필요 없이 오토데스크 레빗(REVIT)처럼 업계에서 보편적으로 쓰는 BIM 소프트웨어로 작성한 데이터만 있으면 바로 XR 장비에서 바로 재생할 수 있는 데이터를 생성할 수 있게 했다. 건설 업계의 XR 활용에 물꼬를 터주는 소프트웨어인 셈이다.
이렇게 생성된 XR 콘텐츠는 현장에서 홀로렌즈로 MR 기기로 확인하거나, 태블릿을 통해 AR 형태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단순 도면보다 훨씬 결과물에 가까운 설계안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어 시공 효율을 높인다.
에스엘즈는 인공지능을 통한 건설 설계 효율화 또한 시도하고 있다. 특히 집중하고 있는 건 반도체 플랜트 시장이다. 공정 단계가 많고 복잡한 반도체는 그만큼 플랜트의 MEP(기계, 전기, 배관) 설계 또한 복잡해 시공 못지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에스엘즈는 이 MEP 설계를 AI를 통해 클릭 한 번이면 자동화할 수 있는 ‘스마트라우팅 AI’를 개발 중이다.
정 대표는 “반도체 플랜트 작업이 가능한 BIM 전문가는 수요에 비해 숫자가 적고 진입장벽도 높아 여러 현장을 오가며 작업하는 상황”이라며 “스마트라우팅 AI를 활용하면 설계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완전 자동 설계 구현을 위해서는 아직 더 개발이 필요하지만 일부 기능은 현재도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이다. 스마트라우팅 AR’은 천장 등에 위치한 1차 배관에서 장비로 연결되는 2차 배관을 연결하는 작업인 훅업(Hook-Up) 공정에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간섭 없는 최적의 배관 경로를 AI가 자동으로 생성한다.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2를 활용해 MR이나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활용한 AR 형태로 이렇게 생성된 경로를 현장에서 바로 확인하며 작업할 수 있게 했다.
올해 하반기 출시된 스마트라우팅 AR은 미국에서는 라우티 AR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였으며, 내년 1월 열리는 내년 미국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4)에서 혁신상 수상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편, 스마트라우팅AI는 2023년 애드슨어워드를 수상했다. 애디슨어워드는 발명왕 토마스 애디슨의 업적을 기리는 상으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수상한 바 있는 권위 있는 상이다.
에스엘즈는 언리얼엔진을 활용한 디지털 관제 솔루션 또한 개발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건물의 혼잡도, 일조량, 강수량 등을 모니터링하거나 모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는 등의 일이 가능하다. 최근 현대자동차그룹 자산운용팀과 제로원프로그램을 통해 6개월간 실증(PoC)을 마쳤다.
정 대표는 에스엘즈 인력의 50%가 건설기술 분야 전공자라는 점도 강점으로 강조한다. 그는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회사라면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은 있어도 건설현장에 대한 도메인이 없어 개발의 시작이 어렵지만, 우리 팀은 전문화된 영역에서 정확한 개발의 방향성을 정의하는 데서부터 개발을 시작한다”면서 “저는 도시건축 설계 전공자이고, 이유미 대표님 또한 미국조경기술사라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다른 개발사들보다 빠르게 개발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에스엘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건설 면허 또한 가지고 있다. 직접 시공을 하며 자체적으로 솔루션에 대한 검증과 이를 바탕으로 한 기능 고도화를 빠르게 추진하기 위해서다.
제조업 위주에서 미래 첨단 산업으로의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는 시흥에서도 에스엘즈는 주목하는 유망 기업이다. 시흥산업진흥원의 보육 기업인 에스엘즈는 현재 시흥창업센터에 마련된 입주공간을 제공받아 연구개발센터로 활용 중이다.
정 대표는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서는 금전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실증 사례를 만들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시흥산업진흥원의 도움을 받은 사연도 풀어놨다.
“저희가 직접 조경공사를 한 따오기 아동 문화관에 신기술(NET) 인증을 위한 시험을 하려고 했으나 시에서 협조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시흥산업진흥원에서 물심양면으로 나서서 시를 설득해 준 덕분에 시청 협조를 얻을 수 있었죠.”
서울대학교기술지주의 시드 투자를 시작으로 씨엔티테크, 한국사회투자,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현재까지 누적 16억 원을 투자받은 에스엘즈는 내년 상반기 시리즈 A를 준비 중이다. 에스엘즈는 무엇보다 스마트라우팅 AI가 업계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 대표는 “반도체 플랜트뿐만 아니라 초순수(Ultra Pure Water)를 산업용수로 활용하는 플랜트 전반에 스마트라우팅 AI를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클릭 한 번이면 하루 만에 MEP 설계가 가능해지는 걸 목표로 앞으로도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