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가 제시한 AI발 '일자리 위협' 해법은?

권택경 tk@itdonga.com

[IT동아 권택경 기자] “인공지능(AI) 노사 분쟁 시대의 막이 올랐다”

미국 CNN이 지난 24일(현지 시간) 잠정 합의안에 이른 미국 작가노동조합(WGA, 이하 작가노조) 파업 사태 소식을 전하며 덧붙인 말이다. 1만 1500여 명을 조합원으로 둔 WGA는 앞서 지난 5월부터 파업을 이어왔으나 약 150일 만에 영화 및 텔레비전 제작자연합(AMPTP, 이하 제작자연합)과 잠정 합의에 도달했다.

이번 파업은 작가노조와 제작자연합 간의 최소 기본 합의(Minimum Basic Agreement) 체결을 위한 재협상이 결렬되면서 시작됐다. 최소 기본 합의에는 작가들에게 보장해야 할 처우, 권리 등에 대한 내용이 담긴다. 일종의 표준계약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매년 3년 단위로 체결되며 지난 2020년 맺었던 합의의 만기가 올해 5월이었다.

미국 LA 파라마운트 픽쳐스 앞에서 열린 미국 작가노조의 피켓 시위 모습 / 출처=셔터스톡
미국 LA 파라마운트 픽쳐스 앞에서 열린 미국 작가노조의 피켓 시위 모습 / 출처=셔터스톡

이번 작가노조 파업이 주목받았던 건 작가에 대한 처우 개선과 더불어 AI로부터 작가의 권리를 보호할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의 인간 일자리 위험에 대한 우려가 실질적인 갈등으로 이어진 첫 사례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작가노조의 요구, 그리고 이를 반영한 합의안의 핵심은 AI를 쓰더라도 인간에게 주어지는 보상과 권리는 단독 작업과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합의안은 작업물에 AI가 참여했더라도 작가의 권리나 기여도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게 했다. AI를 초안 작성이나 편집 과정에 활용하더라도 공동 집필처럼 작가에게 원고료를 일부만 지급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외에도 사측의 동의를 받고 작가가 AI 사용 여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는 있지만, AI 사용을 강제할 수는 없게 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또한 작가의 작업물을 AI로 편집하거나, AI 작업물과 통합할 경우에는 작가에게 이를 알리도록 했다. AI 훈련에 작가의 작업물을 사용할 경우 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법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두었다.

합의안의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AI를 퇴출한다기보다는 사용 기준을 마련하는 것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안이 AI의 일자리 위협에서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선례 사례가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합의안은 일주일간의 조합원 투표를 거쳐 지난 9일 비준됐다.

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아담 세스 리트윈(Adam Seth Litwin) 미국 코넬대학교 노사관계학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이번 작가노조의 합의는 일자리를 AI로부터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CNN은 “위협받는 일자리가 늘어날수록 직원들은 가드레일을 세워달라고 요구할 것”이라며 "이번 작가노조와 제작자연합 간의 협상안이 당분간 비슷한 분쟁에서 일종의 템플릿(Template)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 또한 AI로 배우를 대체하려는 제작사들의 움직임 등에 반발해 지금도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만을 헐값에 학습한 AI나 이를 응용한 디지털 휴먼과 같은 기술이 배우들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이 우려하는 지점이다.

미국 정부가 AI 규제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 노조 협상이 AI 규제의 최전선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 및 정치 관련 작가인 해밀턴 놀란(Hamilton Nolan)은 영국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작가노조가 AI 사용을 규제하는 실질적이고 강제력 있는 표준을 만든 최초의 주요 노조 계약을 따냈다”면서도 “노조가 없는 90%의 미국인에게는 그런 협상 능력도, 승리도, 보호도 없다”고 꼬집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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