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IT] 기술탈취 판례 (3) 경찰청과 더치트 간 기술탈취 분쟁
‘판례’란 법원이 특정 소송에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내린 판단입니다. 법원은 이 판례를 유사한 종류의 사건을 재판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합니다. IT 분야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속도보다 현저히 빠른 특성을 보여 판례가 비교적 부족합니다. 법조인들이 IT 관련 송사를 까다로워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을 거치며, IT 분야에도 참고할 만한 판례들이 속속 쌓이고 있습니다. IT동아는 법무법인 주원 홍석현 변호사와 함께 주목할 만한 IT 관련 사건과 분쟁 결과를 판례로 살펴보는 [그때 그 IT] 기고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경찰청과 더치트 간 기술탈취 분쟁’으로 본 공공기관과 민간 업체 사이의 기술 모방 공방
“공공기관에서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해 버리면…”
물가가 많이 오르다 보니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KB증권과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25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며, 앞으로도 시장 규모는 계속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중고거래 시장이 성장하는 만큼, 중고사기 피해도 급증한다는 점입니다. 올 3월 경찰청이 유동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중고거래 사기 건수는 총 8만3214건으로 하루 평균 228건이 접수됐다고 합니다. 피해 액수도 2021년과 유사한 약 3600억원 정도로 예상된다고 하니, 대부분이 소액사기라고 해도 가볍게 취급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대부분의 중고거래 사기는 판매자가 물품대금을 선입금 받고 거래대상 물품을 보내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따라서, 판매자가 제시한 연락처나 은행계좌 등이 사기에 이용되고 있음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중고거래 사기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기 의심 판매자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로 민간 업체에서 제공하는 더치트(TheCheat)와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사이버캅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토스(Toss)와 같은 모바일 금융서비스 제공업체에서 더치트와 사이버캅으로부터 사기 의심 계좌 정보를 제공받아, 해당 계좌로의 송금 시 경고 알림을 보내는 사기 피해 예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더치트는 김화랑 대표가 대학시절 3번의 온라인 거래 사기 피해를 당한 뒤 2006년 1월경 비영리로 개설한 국내 최초 사기 피해 정보공유 사이트입니다. 더치트에서는 사기 피해자가 공유한 사기꾼의 아이디, 계좌번호, 휴대폰번호 등 10여가지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다른 이용자들에게 제공해 2차 피해를 방지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한편, 사이버캅(舊 넷두루미)은 2010년 2월경 경찰청에서 개설한 사이트로, 더치트와 동일하게 판매자의 휴대폰번호와 계좌번호를 이용해 사기 등으로 경찰에 신고된 사실이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사이버캅은 출시 초기부터 공공기관에 의한 민간 서비스 모방 및 사업권 침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다만, 초기 사용자가 많지 않았고 더치트와 경찰청 사이에 사회적 사기방지 플랫폼 구축을 목적으로 한 협업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이슈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경 경찰청이 더치트를 배제하고 네이버와 업무협약을 체결, 사이버캅이 네이버 검색 결과에서 상위 노출됨에 따라 더치트는 이용자 수 감소로 인한 피해를 입게 됐습니다. 이에 더치트 측에서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 ‘공공기관의 민간 스타트업 사업모델 베끼기’가 사회적 논란이 됐습니다.
그로 인해 2016년 1월경 공공데이터법(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공공기관의 장이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개인·기업 또는 단체 등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중복되거나 유사한 서비스를 개발·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제15조의2)이 신설됐습니다. 2018년 2월경에는 김수민 의원 등이 공공기관의 업무 수행이 민간 경제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규정한 공공기관운영법(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단, 임기만료로 폐기됨).
더치트 측은 국회의원실 등을 통해 공공기관에 의한 아이디어, 특허권 및 사업권 침해 사례가 사이버캅이라고 주장하며 부당성을 적극 알렸으나, 아직까지는 국가를 상대로 어떠한 소송을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사업 베끼기 논란의 종결 여부와 관련해 더치트나 경찰청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향후에도 분쟁이 재점화될 소지는 남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무총리 소속 공공데이터 전략위원회가 2023년 4월경 발표한 ‘2023년 민간과 중복·유사 서비스 정비계획(안)’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민간 서비스와 중복됐거나 유사한 서비스로 정비를 권고받은 앱 서비스는 총 203개이며, 그중 188개 앱에 대한 정비가 완료됐다고 합니다. 최근 공공기관에서 앞다퉈 앱을 출시하고 있는데, 앱 기획 단계부터 민간과 중복·유사 서비스로 판단될 여지가 있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글 / 홍석현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
홍석현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제4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가, 현재는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kd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