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여대 정정주 교수, “미술가도 창의적인 디지털 크리에이터입니다”
[IT동아 권명관 기자] 지난 2023년 6월, 쉐어박스가 서울시 길음동에 위치한 성북미디어마루 앞 대형 LED 구조물 ‘Meet-Up(이하 밋업)’에 성신여자대학교(이하 성신여대) 조소과 정정주 교수와 성신여대 조소과 졸업생과 재학생인 김희은, 박세은, 오은서 작가들이 참가한 'Scene of City - 도시풍경展(이하 도시풍경전)'을 전시했다. 7월까지 밋업을 통해 약 한달간 전시한 이번 도시풍경전은 작가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현대 도시의 풍경을 재해석한 미디어아트 작품을 담아냈다.
밋업을 개발한 쉐어박스는 평소 다가가기 어려운 현대 미디어아트 작품을 일반인들이 일상 속에서 지나가는 거리에서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이번 도시풍경전을 기획했다. 보행자들의 굳어 있는 말초신경을 깨워주고,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낯선 감각을 유쾌하게 선사하기 위함이다.
전시의 형태를 빌린 예술적 실험이다. 현실에서만 볼 수 있던 예술 작품을 LED 구조물 속 디지털 콘텐츠로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재료를 깎고 새기거나 빚어서 입체 형상을 만드는, 조형 예술을 추구하는 조소과 교수와 학생들이 작가로 참여했다. 3차원 현실의 입체 예술을 디지털 속에 녹였다. 이에 IT동아가 도시풍경전에 참가한 성신여대 조소과 정정주 교수(이하 정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작품을 대형 LED로 전시한다?
IT동아: 만나서 반갑다. 쉐어박스로부터 밋업에 작품을 전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품을 출품한 작가들이 조소과 교수님과 학생이라는 얘기에 조금 놀랐다. 조소과는 조각으로 예술 작품을 표현하지 않나. 그래서 왠지 디지털 콘텐츠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번 도시풍경전에 함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정 교수: 쉐어박스 밋업은 단순히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LED 구조물이 아니다. 모션 센서, 스피커, 스마트폰과의 연결 등을 통해 관람객과 상호호완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를 지향한다. 그래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현실 속 (조소) 작품이 아니더라도,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통해 관람객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쉐어박스로부터 연락을 받고, 학생들이 학부 과정에서 제작한 콘텐츠를 발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IT동아: 조소과도 학부 과정에서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뜻인가
정 교수: 하하. 음… 조소(彫塑)는 3차원 공간에 입체로 아름다운 형태를 표현하는 조형 예술이다. 소조와 조각으로 구분되는데, 소조는 무른 재료를 안에서부터 붙여가며 만드는 방법을 뜻하고, 조각은 단단한 재료를 밖에서부터 깎아 가며 표현하는 방법을 뜻한다.
그리고 디지털 콘텐츠도 제작한다(웃음). 정확히는 3D 콘텐츠다. 조소과 학생들이 손으로 (붙이거나 깍아서) 만든 피규어를 3D 콘텐츠로 전환하면, 3D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조소과에게 3D 맥스(MAX), 지브러시(ZBrush)), 라이노(Rhino) 등 3D 모델링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오히려 필수적으로 다뤄야 한다. 요즘 미술대학은 손으로만 제작하지 않는다. 어떤 전공이든 3D 프로그램을 다뤄야 한다고 가르친다.
또한, 복합매체를 다루는 현대미술 과정에서도 필수다. 회화와 조각과 같은 전통매체부터 복합매체, 미디어, 첨단매체 등 다양한 소재를 다뤄야 한다.
IT동아: 복합매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
정 교수: 복합매체는 여러 사물을 가지고 깍거나 붙이는 등 다양한 기법으로 작품을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조각, 소조에서 사용하는 재료는 기본적으로 흙, 돌, 나무, 금속이다. 하지만, 현대미술로 넘어오면서 사진, 동영상 등 미디어도 사용한다. TV, LCD, LED 등을 사용하는 미디어 아트(Media Art)도 있지 않나. 이제는 작가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온갖 사물을 사용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평면을 다루는 회화가 아닌 미술은 모두 조각, 소조의 범위다. 백남준 선생님의 미디어 아트다 대표적이다. 이제는 작가들이 작품 속에서 동영상과 입체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IT동아: 많이 어렵다. 지금까지 미술가라고 하면,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뭔가를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정 교수: 현대미술에는 미디어가 들어간다. 사진, 동영상, 3D 콘텐츠 등을 작품에 사용한다. 사실 이를 두고 ‘미술이다’, ‘미술이 아니다’라는 의견 대립은 수없이 이어져 왔다(웃음). 미디어 아트를 포함하는 현대미술은 그만큼 파격적이고 획기적이며 다양하다.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수없이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다고 말이다.
미술가도 창의적인 디지털 크리에이터입니다
IT동아: 밋업에 출품한 작품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정 교수: 주로 도시의 구조와 빛을 주제로 작업을 해왔었다. 이번에 전시한 작품 ‘Wave of Space’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자연의 풍경인 파도의 이미지와 도시의 풍경인 건축구조물의 형태를 겹쳐 디지털 영상으로 변환했다. 도시와 자연을 잇는 체험을 선사하고자 했다.
김희은 작가는 도시 환경에서 보여지는 혼란스러움과 복잡한 사회상을 '나'라는 캐릭터에 빗대어 표현한 위트있는 애니메이션 ‘꿈 속’을, 박세은 작가는 로얄드 달의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모티브삼아 귀여운 모습 뒤에 보여지는 도시의 기계적이고 반복되는 시스템을 표현하는 작품 ‘oo의 초콜릿 공장’을 전시했다. 마지막으로 오은서 작가는 인터넷으로 매개되는 현대의 관계성을 손으로 표현하고, 이를 통해 얇지만 따뜻한 관계를 표현하는 작품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을 전시했다.
IT동아: 언제부터 작품을 준비했는지.
정 교수: 5월말쯤이었다. 학생들에게 참여 의사를 물어보고, 준비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전에 만들었던 콘텐츠를 밋업에 어울리도록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 전시했다.
IT동아: 교수님과 학생들에게는 또 다른 경험이었겠다.
정 교수: 조소과에 입학하는 학생 중 순수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 지망 졸업생은 매년 10~20%다. 나머지 80~90% 졸업생은 취업과 창업이라는 현실을 맞이한다. 이 때 애니메이션, 3D 콘텐츠, 게임 속 캐릭터를 현실로 꺼내는 조형 작업 등의 경험은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특히, 조소과 학생들은 3D 콘텐츠, 3D 데이터를 다루는게 자연스럽다. 우리 학생들은 직접 손으로 작품을 만든다. 현실에서 만들어 본 작품을, 디지털로 옮긴다. 이 부분에서 처음부터 디지털로만 다룬 학생과 차이를 만들어낸다. 단언컨대, 더 자연스럽고, 더 창의적이며, 더 섬세하고, 더 사실적인 작품을 표현한다. 자기의 감정과 생각을 담아 표현하는 작품을 현실과 디지털 속에 구현하는 능력을 지녔다. 이번 도시풍경전처럼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다.
IT동아: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 교수: 현대에 이르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결합한 다양한 창작물을 요구한다. 이제는 모든 사람 사람이 크리에이터로 활동할 수 있지 않나. 유투브 크리에이터처럼 말이다.
조소를 전공한 사람들은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기에 좋은 공부를 하고 있다. 자신을 표현하는 미술적인 기법을 배우면서 일반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생각한 결과물을 여러 기법으로 구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때문에 어떤 분야에 도전하더라도 창의적인 크리에이터로 성장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웃음). 앞으로도 조각과 소조를 전공하는 우리 학생들이 더욱 창의적인 디지털 크리에이터로 활동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