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으로 RISC-V 반도체 자체 개발··· '인간의 천 배 속도로 설계'

남시현 sh@itdonga.com

[IT동아 남시현 기자] 컴퓨터 과학의 할아버지로도 불리는 앨런 튜링은 1950년 ‘컴퓨터 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을 통해 ‘기계가 생각을 할 수 있는가?(Can machines think?)’라는 화두를 던졌고, 추후에는 본질을 가다듬고 ‘기계가 우리가 사유하는 존재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가?’’로 그 질문을 고도화한다. 즉 기계가 생각하는 실체로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대체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은 기계가 인간의 고유성을 대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며, 기계와 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은 ‘튜링 테스트’의 기초가 된다.

2013년 1월 공개된 RISC-V 시제품 반도체, 이번에 인공지능이 개발한 제품과는 관련없음. 출처=위키미디어
2013년 1월 공개된 RISC-V 시제품 반도체, 이번에 인공지능이 개발한 제품과는 관련없음. 출처=위키미디어

그런데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상을 보면 기계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말, 중국과학원 및 과학기술대학교 등의 소속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오픈소스 기반의 명령어로 구성된 RISC-V 반도체를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 연구팀은 기계가 인간처럼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는지를 목표로 세웠는데, 인공지능이 RISC-V 반도체를 설계하는 데 걸린 시간은 사람이 동일한 성능의 반도체를 설계하는 데 걸리는 5천 시간 이상보다 천 배는 빠른 5시간 이내에 불과했다.

5시간 설계로 인텔 486 성능 달성, 설계 배경은?

RISC-V 반도체는 축소 명령어 집합 컴퓨터 기반의 반도체로, 제품에 대한 권리가 개방돼 있어서 누구나 칩과 소프트웨어를 설계, 제조, 판매할 수 있다. RISC-V는 사용하는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소형 임베디드 제품부터 클라우드 컴퓨팅까지 널리 쓰이고 있지만, 설계 팀이 최신 상용 전자 설계 자동화(EDA) 도구를 활용해 최소 몇 달에서 몇 년까지 수작업으로 정식 프로그램 코드를 만들고, 이를 검증하고 최적화하는 작업까지 거쳐야 해 쉽게 대중화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구성(좌측 상단)과 패키징(좌측 하단), 인쇄 회로 기판(우측). 출처=arxiv.org
반도체 구성(좌측 상단)과 패키징(좌측 하단), 인쇄 회로 기판(우측). 출처=arxiv.org

그런데 이번에 연구팀은 EDA를 활용하지 않고, 인공지능에게 여러 구성의 CPU가 입력, 출력하는 데이터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한 뒤 이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설계를 지시했다. 과장해서 설명하자면 항구에 드나드는 배의 크기와 규모, 시간대 등의 자료만 가지고 항구를 설계한 것과 비슷한 수준의 추론이다. 특히 인공지능은 현대적 방식의 컴퓨터 구조인 폰 노이만 아키텍처를 독자적으로 발견하기도 했다.

다섯 시간 만에 설계된 RISC-V 반도체는 65나노미터 공정의 설계 구조로 생성됐고, 300MHz 주파수로 동작한다. 또한 리눅스 커널 5.15 버전에서 온전하게 동작했으며, SPEC CINT2000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실행했다. 인공지능 성능 시험을 위해 드라이스톤(dhrystone)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에서는 1991년 중반에 설계된 인텔 80486SX(i486SX) 칩셋과 비슷한 성능을 보여주었다.

CPU-AI의 성능은 사람이 설계한 486 컴퓨터와 비슷한 성능을 낸다. 출처=arxiv.org
CPU-AI의 성능은 사람이 설계한 486 컴퓨터와 비슷한 성능을 낸다. 출처=arxiv.org

결과적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반도체 설계는 산업용 반도체 생산에 혁신이 될 수 있다. 현재 RISC-V 반도체의 이용 및 사용료는 무료지만, RISC-V 반도체를 설계하는 인건비와 구인 과정을 고려하면 차라리 arm에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는 게 낫다는 게 보편적인 인식이다. 이 과정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면 전 세계적으로 RISC-V 반도체가 대세가 될 수 있다. 특히 개발 과정에서 인간이 인지하지 못한 새로운 방향과 시도가 등장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점이다.

산업 현장에서 ‘인공 일반지능’의 가능성 열까?

인공지능은 이미 반도체 업계에서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3월, 엔비디아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최대 30배까지 칩 설계 효율을 끌어올리는 ‘AutoDMP’ 기능을 소개한 바 있다. AudoDMP는 반도체 설계를 종료할 때 초대형 통합 회로를 배치하는 과정을 신경망 훈련과 같은 방식으로 구축하는 DREAMPlace를 자동화한 절차다. 칩 설계자가 기존에 사용하는 EDA 시스템에 연결하면 최적의 배치를 찾는 데 필요한 시간 소모를 30배까지 줄일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설계자는 전력 소비와 칩 성능 및 효율성을 더욱 최적화할 수 있다.

칩 설계자가 EDA 도구로 설계한 최적화와 AutoDMP로 자동 최적화된 결과물 비교. 출처=엔비디아
칩 설계자가 EDA 도구로 설계한 최적화와 AutoDMP로 자동 최적화된 결과물 비교. 출처=엔비디아

또한 미국의 EDA 기업 시높시스(synopsys)는 2021년 EDA 제품군에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해 최장 24개월이 걸리던 칩 설계 시간을 24주로 단축한 바 있다. 이미 시높시스 DSO.ai는 200개 이상의 반도체를 설계하고 출하 과정까지 거쳤으며, 올해 초에는 절차 전반에 인공지능을 도입한 시높시스.ai를 공개해 더 빠르고 효율적인 인공지능 기반 반도체 설계 환경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은 가공할만한 속도를 앞세워 여러 산업군에서 지금껏 인간이 가보지 못한 영역으로 인간을 이끌고 있다. 물론 이번 RISC-V 반도체 개발은 결과물만으로는 의미 있는 성과로 보기 어렵지만, 반도체를 설계한 과정이나 의의만 놓고 보자면 주목할만한 사건이다. 엔비디아 최고 경영자 젠슨 황은 ‘지난 20년이 놀라웠다면, 앞으로의 20년은 공상과학 같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RISC-V 설계 자동화도 이 말에 신빙성을 더한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

IT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