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달랐다…애플과 메타의 동상이몽
[IT동아 권택경 기자] 애플이 첫 혼합현실(MR) 헤드셋인 비전 프로를 공개하면서 확장현실(XR) 기술 분야를 사이에 둔 빅테크의 경쟁에도 불이 붙을 전망이다. 특히 사명까지 바꾸며 메타버스 등 XR 분야에 집중했던 메타는 애플과 직접적인 경쟁 구도를 그리게 됐다. 메타는 애플의 공개에 앞서 지난 1일 새 헤드셋 퀘스트3를 공개하며 전열을 가다듬기도 했다.
두 회사는 앞으로 XR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겠지만, 동시에 생태계 형성과 확장이라는 면에서는 공생 관계도 그리게 된다. 다만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애플이 비전 프로로 제시한 비전과 가치가 메타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 IT 전문 매체 더 버지에 따르면 저커버그는 지난 9일 메타의 전사 회의에서 애플의 비전 프로가 “내가 원한 것과 다르다”고 밝혔다. 저커버그는 이날 회의에서 “애플 또한 물리법칙에 관해 우리 팀이 아직 탐구하지 못했거나 생각지 못한 마법같은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애플이 현재 MR 헤드셋들이 지닌 한계를 근본적으로 극복하지는 못했다고 평가절하한 셈이다. 저커버그는 애플의 제품이 더 높은 디스플레이 해상도와 성능을 지니고 있지만 가격이 7배에 달하며, 별도의 외장 배터리 연결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러한 저커버그의 평가는 애플의 비전 프로가 기존 VR·MR 헤드셋과 완전히 차별화되는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지는 못했다거나, 시장 판도를 완전히 바꾸기엔 부족하다는 일각의 평가와도 일맥상통한다. 비전 프로 시연 후 비전 프로의 화질과 완성도가 메타의 제품들에 크게 앞선다는 평가가 나온 데 따른 방어적 반응으로도 풀이된다. 더 버지의 닐레이 파텔 편집장은 비전 프로의 화면 품질이 매우 선명하고 깨끗해 헤드셋을 쓴 채 방을 돌아다니거나, 메모를 하고,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고 호평하면서 "메타 퀘스트 프로로는 절대 하지 못 했을 일”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물론 가격 차이를 생각하면 두 제품의 완성도 차이는 당연한 결과다. 저커버크도 이 점을 의식한 듯 가격 전략 차이를 강조한다. 비전 프로에 3499달러(약 454만 원)라는 가격을 매긴 애플과 달리 메타는 퀘스트3에 499.99달러(국내 판매가 73만 원)라는 가격표를 붙였다. 저커버그의 지적대로 비전 프로 가격이 퀘스트3 가격의 7배에 달한다.
가격 정책에서 드러나는 생태계 확장 전략
퀘스트3의 가격은 동급 사양의 대부분의 VR 헤드셋보다도 저렴한 수준이다. 메타는 전문가용 제품을 표방했던 ‘퀘스트 프로’는 이례적으로 1499달러(이후 999.99달러로 인하, 약 129만 원)라는 높은 가격에 판매하긴 했지만, 퀘스트2 시절부터 저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기기를 보급해 생태계부터 확장하려는 전략이다. 이러한 정책에 힘입어 퀘스트2는 1000만 대가 넘게 판매되며 VR 시장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저커버그는 “우리는 우리 제품이 가능한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고, 가격도 합리적일 수 있도록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우리가 하는 일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애플이 책정한 3499달러라는 가격은 대부분의 소비자가 구매를 꺼리게 될 수준으로 높은 가격대다. 이 때문에 애플이 이번 제품이 실제 판매로 이어지는 걸 기대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 관심을 환기하고 미래 개발자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는 전망이 많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의 마크 거먼은 애플이 비전 프로로 당장 이익을 내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메타버스 강조한 메타, 현실과의 연결점 강조한 애플
저커버그가 강조한 애플과 메타의 또 다른 차이점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접근법이다. 저커버그는 “메타버스에 대한 우리의 비전은 근본적으로 소셜(Social)에 있다”면서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친밀해지는 것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커버그는 “애플이 보여준 모든 시연 장면은 소파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고 꼬집었다.
애플 또한 비전 프로로 다른 사람들과 페이스타임 통화를 하는 등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는 장면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저커버그의 지적은 사실과 다소 다르다. 그렇지만 상호작용에 대한 접근법 면에서 애플과 메타의 제품 사이 차이점이 있는 건 분명하다.
메타는 메타버스에 올인한 회사의 방향성이 저커버그의 변덕에 의한 외도가 아니라, 회사 창립 이래 유지해 온 정체성의 연장선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가 디지털 시대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 온 것처럼, 메타버스를 통해 새로운 연결 방식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퀘스트 프로와 같은 하드웨어와 ‘호라이즌 월드’와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을 통해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들이 한 장소에 있는 것처럼 상호작용하는 게 바로 메타가 제시하는 새로운 연결의 방식이다.
반면 애플의 상호작용은 메타버스 내에 있지 않다. 애플은 홍보 영상에서 사람들이 비전 프로를 쓴 채로도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일상을 누리는 모습을 제시한다.
가령 비전 프로를 찬 채 여행 가방에 짐을 싸다가 영상통화를 하거나, 주변 사람과 대화하고, 심지어 아이와 잠시 공놀이까지 한다. 비전 프로를 쓴 채 콘텐츠에 몰입하고 있더라도 옆에서 말을 걸면 콘텐츠 대신 상대방 모습을 비춰주고, 헤드셋을 쓴 내 눈을 상대방이 볼 수도 있게 했다.
다른 장소에 있는 누군가와 나를 연결하는 것보다는 비전 프로를 쓰고도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있는 다른 이들과 제약 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데 좀 더 초점을 맞춘 셈이다. 애플이 비전 프로 발표 내내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이유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