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오전에만 17만 명 가입"··· 애플 페이의 한국 서비스가 지닌 의의는?
[IT동아 남시현 기자] 23년 3월 21일, 애플코리아가 아이폰 및 애플워치, 아이패드, 맥용 결제 시스템 ‘애플 페이’의 국내 서비스를 개시한다. 애플 페이는 2014년 10월 첫 서비스를 시작한 모바일 결제 시스템으로, 삼성페이와 비슷하게 스마트폰에 신용카드 주요 정보를 등록한 후, 비접촉 및 온라인 방식으로 결제할 수 있다. 현대카드 보유자는 오늘부터 애플 기기에 신용카드를 등록하고 국내 가맹점에서 애플 페이를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해외 결제를 지원하는 카드에 한해 전 세계 76개 지원 국가에서도 애플 페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던킨 올비(Duncan Olby) 애플 페이 인터내셔널 총괄은 “2014년 공개된 애플 페이는 기존의 카드 결제 방식을 디지털로 제시한 혁신적인 결제 방식이며, 애플 가치의 근간인 쉽고 안전하면서도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목표에도 부합한다”라고 애플 페이의 개념을 소개했다.
이어서 “오늘날 애플 페이는 전 세계 70여 개 이상 국가에서 서비스되고 있으며, 약 1만여 개의 은행과 글로벌 결제 네트워크를 통해 사용자의 아이폰에서 신용카드 및 체크카드를 바로 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라면서, “앞으로는 커피 전문점에서 라떼를 주문할 때, 백화점에서 옷을 구매하거나 온라인으로 항공권과 열차표를 끊을 때에도 애플 페이를 활용해 사용자 생활과 편의성에 안전을 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 페이, 신용카드를 아이폰에 담는 기술
애플 페이 사용법은 쉽다. 애플 아이폰과 애플워치, 맥, 아이패드에 기본 내장된 ‘지갑’ 앱을 켠 다음, 상단의 추가 버튼을 눌러 현대카드 신용 및 체크카드 등록을 누른다. 그다음 카드사 앱에서 제공하는 설정 방법을 따르면 등록이 끝난다. 사용 과정에서 카드 포인트나 마일리지 등은 자동으로 적립되고, 카드사의 리워드나 혜택도 반영된다.
사용 방법은 애플 페이 혹은 NFC(Near Field Communication, 근거리 무선 통신 기술) 로고가 있는 가맹점에서 아이폰 측면 버튼을 이중 클릭해 지갑 앱을 띄우고, 그 상태에서 페이스 ID나 암호를 입력해 인증한 다음 카드 리더기에 아이폰 및 애플워치 화면을 단말기에 가져다 댄다. 그러면 결제가 끝난다.
승인 방식은 EMV 지불 토큰화 사양(EMV Payment Tokenisation Specification)이라는 보안 기술이 사용된다. 이 기능은 고객의 신용카드 또는 직불카드 정보를 거래마다 새롭게 생성되는 코드로 제공해 소매점에서 결제 정보를 비공개로 처리하도록 한다. 따라서 고객 이외에 결제처나 은행 등에서 카드의 사용량 및 결제 내역을 추적할 수 없다.
현재 사용 가능한 가맹점은 코스트코와 맥도날드, 이케아 등 외국계 브랜드는 물론 투썸플레이스나 이디야, 빽다방, 더벤티, 할리스, 블루 보틀 커피, 파리바게트, 베스킨라빈스 등의 카페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이와 함께 GS25, CU,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등 편의점이나 다이소, 롯데마트, 농협하나로마트, 홈플러스, 롯데백화점, 더현대, LG 베스트샵 등에서도 활용할 수 있으며 지원 가맹점은 꾸준히 늘 전망이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가맹점 목록은 단말기 보급이 확정된 기업들이다. 매장에 따라 단말기 설치가 완료됐을 수도, 단말기 설치가 진행 중일수도 있으므로 모든 매장에서 애플 페이를 곧바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원 가맹점 정보는 애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애플 페이의 국내 서비스 도입을 이끌어낸 현대카드의 정태영 부회장은 “현대카드는 사업의 확장뿐만 아니라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DNA가 있다. 그래서 항상 애플 페이의 한국 진출에 관심이 많았고, 서비스 도입에 앞장서달라는 요청을 받아왔다”라면서, “현대카드 사용자가 50% 이상인 가맹점이 사용처가 됐는데, 앞으로도 사용처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애플 페이가 한국에 진입하면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EMV 승인 방식(EMV Contactless)이 한국에 처음 도입됐다. 우리 생활에서 훨씬 안전한 NFC(Near Field Communication, 근거리 무선 통신 기술) 단말기가 보급됐다는 점에서 한국 결제 시장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애플 페이, 사용성·보안 등 넘어서는 의미 있어
애플 페이의 국내 도입을 통해 아이폰 점유율이 높아진다거나, 비접촉 결제 시장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허나 이번 애플 페이의 도입은 단순히 숙원 사업을 해결했다 정도를 넘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단 애플 페이가 도입되기 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애플 페이를 쓸 수 없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뿐이었음에도 우리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독자적인 생태계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고, 독자 생태계가 장벽이 되어 고립을 가속해 왔다. 하지만 가장 도입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애플 페이가 성공적으로 출시된 만큼, 충분한 협력과 추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법적·제도적 한계로 가로막혀 고립되고 있는 다른 사례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NFC 결제가 국내에 도입되면서, 경직된 금융 생태계도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간 우리나라 비접촉 결제 시장은 애플 페이 없이 삼성페이가 독식해 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삼성페이에 대응하는 마그네틱 보안 전송(MST)이 대세가 됐고, 글로벌 표준으로 떠오르는 NFC 방식 결제는 찾을 수 없었다.
다른 국가에서는 MST가 도태되고 NFC가 대세가 되고 있는 점과 정 반대며, 자연스럽게 구글 월렛이나 페리카 등의 표준 서비스도 국내에 도입되지 못했다. 다행히 애플 페이를 통해 금융 생태계의 변화가 시작되면서, 비접촉 결제를 비롯한 다른 여러 금융 기술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 가능성이 있다.
애플 페이의 확산 속도도 주목해야 한다. 애플코리아는 오전 8시에 애플 페이의 공식 서비스를 발표했지만, 온라인에서는 이미 새벽 5시부터 애플 페이를 활용할 수 있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정태영 부회장이 발표를 하던 10시쯤에는 이미 17만 명의 현대카드 이용자가 애플 페이에 가입한 상태였다. 만약 다른 카드사들까지 모두 동시에 서비스를 개시했다면 최소한 100만 명 이상이 같은 시간에 애플 페이에 가입했을 수도 있다.
이번 사례로 볼 때 디지털 기술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은 지대하며, 그 수준은 기업들이 예상하는 수준을 크게 상회한다. 애플 페이의 빠른 가입자 수 확보는 단순히 속도를 넘어서, 최신 기술을 도입하는 것에 주저하는 기업들에게 경종을 울린 것이라 볼 수 있다.
애플 페이는 글로벌 생태계에서 역차별을 만드는 K-생태계도 변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우리는 스스로가 충분히 디지털화했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유튜브 뮤직 무료 버전이 우리나라에서만 안된다거나, 구글 및 애플 서비스에서 정밀 지도를 지원하지 않고, 분실된 기기를 찾는 '나의 찾기' 앱을 쓸 수 없다거나, 망 중립성 문제로 국내 동영상 화질이 제한되는 등 한국 시장에만 적용되는 역차별을 우리는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갈라파고스화가 진행 중이다.
이번 애플 페이 도입 자체는 현대카드가 총대를 메고 도입을 주도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를 가로막고 있던 여러 문제들도 결국은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