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호 홍릉강소특구단장 “바이오 스타트업 생태계 돕고파”

[IT동아 차주경 기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 일대를 흔히 ‘홍릉’이라고 부른다. 과거에 왕가의 능이 있었던 이 곳에, 지금은 연구중심병원 고려대학교 의료원, 세계에서 유일한 동서의학 연구 병원 경희대학교 의료원, 우리나라 주요 종합 연구기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각각 자리 잡았다. 서울바이오허브를 포함한 스타트업 육성 기관, 투자 관계사와 금융 기업도 홍릉에 속속 뿌리를 내렸다.

정부와 서울특별시는 홍릉이 의료·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알맞은 곳이라는 판단에 2020년 7월 강소연구개발특구로 지정한다. 산학연과 병원, 투자 관계사의 힘을 모아서 이 곳을 미국 보스턴 클러스터(특정 산업군 내 구성원들이 모여 분업, 연계해 상승 효과를 내는 집적 단지) 수준의 의료·바이오·헬스케어 클러스터로 만들 계획도 세웠다.

출범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 홍릉강소연구특구는 여러 성과를 거뒀다. 창업과 스케일업, 투자금 유치와 해외 진출 등 스타트업의 전주기 성장 지원 생태계를 마련했다. 덕분에 2023년 기준으로 이 곳에 스타트업 356곳이 입주했다. 여러 지원을 받고 성장한 이들의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은 1,857억 원에 달한다. 홍릉강소연구특구는 해외 유수의 의료·바이오 클러스터와 연결 고리를 만들고 상호 투자와 동반 성장 프로그램도 갖췄다.

최치호 홍릉강소연구특구 단장. 출처 = 홍릉강소연구특구
최치호 홍릉강소연구특구 단장. 출처 = 홍릉강소연구특구

최치호 홍릉강소연구특구 단장은 지금까지 구성원, 입주 스타트업들과 소통하며 노력한 덕분에 성과를 냈다고 말한다. 2023년 3월 임기를 마친 최치호 단장을 만나 지금까지의 여정과 주요 성과, 아쉬운 점을 되짚었다. 홍릉강소연구특구의 발전 방향도 물었다.

“홍릉 지역에 의료·바이오·헬스케어 클러스터를 만들려는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었어요. 정부와 서울특별시의 지원 아래 홍릉강소연구특구 사업단이 기둥 역할을 하고, 고려대학교와 경희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 산학연이 힘을 모아 논의를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제도를 차근차근 마련하고 발전하자 액셀러레이터와 VC 등 투자 업계도 속속 참가했어요. 덕분에 스타트업 창업 플랫폼뿐만 아니라 이들의 가치를 높일 스케일업 플랫폼도 만들었어요.

세계 주요 의료·바이오·헬스케어 기관과 클러스터와 교류,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세계 진출 기반을 닦은 점도 알리고 싶습니다. 이스라엘 혁신청장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의 외빈들이 홍릉강소연구특구를 찾았고, 고도로 발전한 바이오 클러스터를 가진 싱가포르와 업무 협약도 맺었어요. 한국형 바이오 클러스터의 바람직한 사례를 만든 점, 스타트업에게 유용한 성장 솔루션을 제시한 점이 성과라고 봅니다.”

최치호 단장은 이 가운데 ‘스타트업의 전주기 성장 생태계’를 강조했다. 역량을 가진 스타트업을 많이 모으고 부문별 전문가와 함께 이들의 성장을 이끈다. 스타트업이 성과를 내면 이를 투자 업계가 자연스럽게 생태계에 들어온다. 그러면 창업과 투자와 스케일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논리다.

“어떤 산업을 부흥하게 하려면, 다양한 구성원이 많이 모여서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서로 능력을 발휘해 돕고 상생하는 협력 체계를 만들어야 해요. 성과가 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투자금도 많이 드는 의료·바이오 산업에는 이런 협력 체계가 더더욱 필요합니다. 그래서 홍릉강소연구특구 설립 초기부터 유망 스타트업, 그리고 클러스터를 살찌울 구성원을 모으는데 집중했어요.

먼저 병원과 함께 의료·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성장을 이끌 전임상·임상 인증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이어 의사와 제약 기업, 의료 부문 규제 전문가를 초빙해 스타트업 중심의 성장 로드맵을 세웠어요. 스타트업이 시장에 진출하는 시간을 줄이도록, 그 과정에서 각종 규제나 문제에 부딪히지 않도록 도왔습니다.

이 플랫폼의 지원을 받은 스타트업이 전국 대회에서 속속 입상하면서 혁신을 인정 받았어요. 홍릉강소연구특구가 딥테크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인정 받자 TIPS 운용사와 지원 기관, 액셀러레이터와 VC 등 투자 기관이 속속 참가했습니다. 덕분에 스타트업의 성장 단계별 전주기 투자 생태계를 만들었어요. 실제로 큐어버스, 트윈피그바이오랩 등의 스타트업은 VC로부터 수십억 원 단위의 투자금을 유치하기도 했습니다.

이 성과를 앞세워 2022년에는 해외 진출 거점도 여러 곳 만들었습니다. 주요 거점 싱가포르와 기업의 상호 투자 구조는 물론, 해외 VC와 홍릉강소연구특구 소속 VC의 공동 펀드도 조성 중입니다.”

홍릉 지역 내 산학연과 기반 시설들. 출처 = 홍릉강소연구특구
홍릉 지역 내 산학연과 기반 시설들. 출처 = 홍릉강소연구특구

성과도 있지만, 그는 홍릉강소연구특구 설립 초기에 그린 청사진 가운데 몇몇을 이루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도 말했다. 클러스터와 지역 및 주민간 상생, 스타트업과 병원의 융합을 더 원활히 하지 못한 것이 사례다.

“북유럽 최고의 클러스터로 불리는 스웨덴 시스타 클러스터, 이 곳의 성공 비결은 트리플 힐릭스(Triple Helix, 정부와 산업계, 대학교가 상호작용하며 긍정 역할을 주고받는 3중 나선모형)입니다. 이 성공의 비결을 홍릉강소연구특구에 이식하고 싶었습니다. 정부와 산업계, 대학교에 언론, 지역 사회까지 더해 4중 나선모형을 만들려는 욕심도 있었어요. 그러면 클러스터의 장점을 지역 주민과 나누는, 지속 가능한 건강한 클러스터가 되니까요.

아쉽게도, 홍릉강소연구특구는 아직 지역 사회에까지 잘 녹아들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리빙 랩(창업과 주거 복합 임대공간)을 마련했지만, 지역 주민들과의 거리감은 좁히지 못했어요. 의료·바이오·헬스케어는 사람이 건강하도록 돕는 기술입니다. 그래서 지역 사회, 주민과 융합해 실질 혜택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의료·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이 병원·의사와 손쉽게, 더 많이 협업하도록 도울 체계도 어느 정도 만들었지만, 아직 미흡해요. 병원장 협의체를 구성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스타트업과 병원의 연계 체계를 만들려 했습니다. 병원 안에 리빙 랩을 만들고 혁신 스타트업과 협업, 검증하는 모델도 구상했어요. 이 성과를 토대로 융합을 이끌고 규제 완화를 돕고 투자금도 유치하려 했지만, 아직 보완할 점이 많습니다.

이전에 일본 고베 바이오 클러스터를 방문했었습니다. 병원 안에 스타트업의 기술을 검증하고 시험할 센터를 만들고, 지역 주민 서포터 1,500여 명과 함께 호흡하며 기술을 보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앞으로 홍릉강소연구특구는 클러스터와 주민과 병원이 상생하며 동반 성장하는 체계를 만들고 강화할 것입니다.”

홍릉강소연구특구가 마련한 스타트업 전주기 지원 플랫폼. 출처 = 홍릉강소연구특구
홍릉강소연구특구가 마련한 스타트업 전주기 지원 플랫폼. 출처 = 홍릉강소연구특구

최근 세계 스타트업의 업황은 급격히 나빠졌다. 경기 불황과 자금 경색 때문에 스타트업의 투자금 유치와 성장 모두 어려운 시기다. 최치호 단장은 국내외 창업 환경이 얼어붙은 이 시기, 홍릉강소연구특구의 전문가들과 함께 대응 방안을 찾자고 권했다.

“2020년 네이처 지에 등록된 논문에 따르면, 스타트업이 성공할 가능성은 대개 20% 남짓으로 낮다고 합니다. 그런데, 클러스터에서는 이 가능성이 45%까지 높아진다고 해요. 클러스터가 스타트업 창업과 성장, 투자 유치와 해외 진출 등 전폭으로 지원하는 덕분입니다. 홍릉강소연구특구도 그렇습니다. 스타트업의 창업과 성장 지원 프로그램, 전략 수립과 진단을 도울 전문가, 임상 실험과 상품화를 도울 산학연과 투자사가 이 곳에 있어요.

‘홍릉 러시’와 ‘홍릉 임팩트’를 추구할 것입니다.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홍릉강소연구특구를 찾아와 입주와 협업, 성장 방안을 문의하는 것이 홍릉 러시에요. 그리고 이들에게 성장으로 가는 지름길, 성공으로 향하는 나침반을 제시해 스케일업을 이끄는 것이 홍릉 임팩트입니다. 이 둘을 더욱 강화할 거에요.

지금은 스타트업 생태계의 혹한기입니다. 투자금 유치도, 성장도 어려운 시기에요. 홍릉강소연구특구는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에게 핵심 파이프라인, 주요 비즈니스모델의 가치를 높일 전략을 제시하려 합니다. 문의를 주면 전문가 그룹과 머리를 맞대, 혹한기를 극복할 전략을 함께 짜고 실행하겠습니다.”

홍릉강소연구특구 내 스타트업 지원 사업 가운데 하나인 그랜드 K 창업학교. 출처 = 홍릉강소연구특구
홍릉강소연구특구 내 스타트업 지원 사업 가운데 하나인 그랜드 K 창업학교. 출처 = 홍릉강소연구특구

최치호 단장은 홍릉강소연구특구를 떠난 후에도 경력을 살려, 의료·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과 클러스터를 하나로 묶는데 힘쓸 예정이다. 이들이 힘을 합치고 각자의 장점을 발휘해 상승 효과를 내면 세계 수준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나올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다.

“우리나라 정부는 2027년까지 딥테크 유니콘 기업을 10곳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앞으로 5년 안에 연 매출 1조 원이 넘는 신약을 두 개 만들고 의약품 수출량도 두 배 늘린다는 K 신약 블록버스터 계획도 있습니다. 이를 현실로 이끌려면 클러스터와 신성장동력, 기업의 주체들이 힘을 한데 모아야 해요. 산학연과 금융, 대학교와 스타트업, 대기업이 함께 혁신의 씨앗을 심고 가꿔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크고 작은 바이오 클러스터가 19곳 있습니다. 이들이 각자의 장점을 강화하고 융합하면 세계 수준의 기술과 인력이 만들어질 거에요. 의료·바이오 클러스터의 대명사인 미국 보스턴 클러스터 수준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우리나라 스타트업 기관이 해외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해외 스타트업 기관이 우리나라를 먼저 찾아올 날이 올 것입니다.

세계 창업 생태계 평가기관인 스타트업지놈은 지난해, 서울특별시를 '세계에서 스타트업하기 좋은 도시' 10위로 선정했어요. 서울특별시는 이 순위를 2030년까지 세계 5위로 올려 세계 창업 도시의 중심에 서겠다고 밝혔습니다. 홍릉강소연구특구와 함께 이 계획을 이루는데 힘을 싣고 싶습니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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