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메뉴도 매장보다 배달앱에서 더 비싸… 배달가격에 기만당하는 소비자
[IT동아 정연호 기자] 소비자에겐 물건을 살 때 업주로부터 제품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을 ‘알 권리’와 이를 기반으로 구매할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서울 소재의 일부 음식점에선 ‘소비자의 알 권리’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았다. 한국조사원 조사결과, 일부 음식점은 상품가격을 매장보다 배달앱에서 더 높게 받았다. 심지어 소비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업체도 많았다.
음식점 점주들은 높은 배달비와 플랫폼의 과도한 중개 수수료 때문에 배달앱 내 상품 가격을 더 비싸게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반면, 배달플랫폼들은 가격 설정은 점주 권한이라고 반박한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가격’ 문제를 다루는 법규정은 없다. 그래서 정부기관도 이를 통제하기가 어렵다. 전문가들은 배달비 구조와 배달플랫폼 중개 수수료 등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이중가격에 대한 책임소재를 따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11월 배달의민족·요기요·쿠팡이츠 등 배달앱에 입점한 서울 시내 34개 음식점의 메뉴1061개 가격을 조사한 결과, 20개 매장(58.8%)에서 매장 가격과 배달앱 내 가격이 달랐다. 이 중에서 13개 매장(65%)은 두 방식 간 가격 차이가 있다는 걸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서울 시내의 34개 음식점 메뉴 1061개 중 매장과 배달앱 가격이 다른 경우는 541개(51%)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가격 문제가 있는 메뉴 중 529개(97.8%)는 매장보다 배달앱에서 가격이 더 비쌌다. 같은 메뉴임에도, 배달앱과 매장의 상품 가격은 최소 621.4원에서 최대 4500원의 가격 차이가 났다.
또한, 음식점 점주들은 배달 앱에 따라서도 메뉴의 가격을 다르게 설정했다. 한국소비자원이 5개 배달앱(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먹깨비, 배달특급) 중 최소 2개 이상에 입점한 33개 음식점의 가격을 비교해보니, 23개 음식점(69.7%)에서 같은 메뉴임에도 배달앱별로 가격에 차이가 있었다.
이중 가격 문제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프렌차이즈 업종을 직접 방문해 매장의 상품가격과 배달앱 상품가격을 직접 비교해봤다. 선정한 대상은 인기 있는 프랜차이즈 업종 다섯 군데(햄버거, 커피, 샐러드, 베이커리, 샌드위치)다. 각 업종 모두 서울에 있는 매장 두 군데씩을 들러 가격을 확인해보니, 모든 매장에서 메뉴의 매장가격과 배달앱 가격이 달랐다.
‘가’ 햄버거 업체 A 지점과 B지점은 매장에서 X햄버거 세트를 7200원에 판매했다. 하지만, 두 지점 모두 배달앱애서 X햄버거 세트를 8500원에 팔았다. ‘나’ 커피업체 A 지점과 B 지점 모두 Y커피를 매장에서 2000원에 판매했지만, 배달앱에선 이 가격을 2500원으로 올렸다. ‘다’ 샐러드 업체, ‘라’ 베이커리 업체, '마' 샌드위치 업체 모두 매장의 상품가격과 배달앱의 상품 가격을 다르게 설정했다.
다섯 군데의 프랜차이즈 업종에선 같은 메뉴도 배달앱 상품가격이 매장 상품가격보다 최소 200원에서 최대 2500원까지 더 비쌌다. 또한, 기자가 방문한 매장 모두 배달 시 배달비를 별도로 받음에도 배달앱의 메뉴 가격만 더 비싸게 책정했다.
다만, 네 군데의 프랜차이즈 업종 중 햄버거 업체만 유일하게 매장가격과 배달가격이 상이한 점을 배달앱에서 안내했다. 이 경우에도 세부적인 제품별 가격 차이는 알 수 없었다.
프랜차이즈 햄버거 업체에서 음식을 기다리던 여성 A씨는 “매장가격과 배달앱의 가격이 다른데 이를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는 건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배달 가격이 더 비싸기 때문에, 매장이 가까운 곳에 있으면 그냥 매장에 와서 물건을 포장해간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중가격은 매장가격을 올릴 경우 소비자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배달플랫폼을 통한 배달 시 배달비는 점주와 소비자가 분담해서 부담을 한다. 이미 음식점 점주들은 배달플랫폼 중개수수료 등이 올라가자 소비자의 배달비 부담 비중과 매장과 배달앱 내 음식 가격을 높인 상황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작년 11월 배달앱을 이용하는 소상공인 1005명을 조사한 결과에선, 배달플랫폼이 중개 수수료를 올렸을 때 49.4%의 소상공인이 음식 가격과 소비자 부담 배달비를 높이거나 음식량을 줄였다. 여기서 매장의 메뉴 가격을 높이고 소비자 반발을 사는 대신 배달앱 가격만 올리는 우회방법을 택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점점 높아지는 배달비에 부담을 느끼는데다 이중가격이라는 또 하나의 불합리에 시달린다. 작년 11월, 한국소비자원이 1950명의 소비자에게 배달앱의 배달비에 대한 인식을 묻자 977명(50.1%)이 “비싸다고 생각함”이라고 답했다.
소비자들이 음식을 배달 주문할 때 부담하는 배달비는 3000원에서 5000원 정도다. 배달 조건으로 ‘최소주문금액:만원’을 설정한 가게의 경우 배달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려면 소비자는 배달비를 포함해 최소 1만 3000원에서 1만 5000원을 써야 한다. 이미 배달비 때문에 부담이 큰 상황에서 배달앱으로 음식을 주문을 하는 사람은 이중가격 때문에 매장 가격보다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배달플랫폼 업계는 이중가격이 플랫폼이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편의점, 할인마트 등의 유통채널이 같은 식료품도 가격을 다르게 설정하듯, 가격을 정하는 건 점주의 권한이라는 것이다. 배달플랫폼 업계 한 관계자는 “배달플랫폼이 배달 앱에 입점한 가게의 가격에 대해 간섭할 수는 없다”면서 “다만, 음식점 매장 가격과 배달 가격이 다를 경우 앱 내에 관련 내용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내부에서 논의 중이다"라고 전했다.
소상공인의 이중가격을 조사한 한국소비자원 시장조사국 유통조사팀 노웅비 대리는 “이중가격을 규제하는 명확한 법적 제도가 없다. 가격이 다를 수 있음을 표시하지 않은 가게가 많아서, 공정위는 소비자 정보 강화를 위해 가격차이가 있다면 이를 표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천대학교 이영애 소비자학과 교수는 “편의점이나 마트 등의 유통채널은 오픈 프라이스제도(제조사가 아닌 최종판매처가 가격을 정하는 방식)라서 스스로 가격을 설정할 수 있어 이를 문제 삼기 어렵다. 다만, 매장과 배달앱의 이중가격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상품 가격이 매장에서 사는지 배달 앱에서 사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배달플랫폼의 중개 수수료 등을 정확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이중가격 문제가 왜 생기는지 들여다봐야 하는데 ‘수수료를 누가 많이 가져가는지’에 대해 음식점 점주와 배달대행사, 플랫폼이 모두 말이 다르다.”고 했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