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파머스그룹·씨앗 “농부 지식자산을 인공지능 농업 토대로”

[IT동아 차주경 기자] 농업 기업 굿파머스그룹은 경북 상주에 6,000평 규모의 딸기 유리 온실 농장과 2,400평 규모의 육묘장을 설치 운영한다. 축구장 네 개 크기, 우리나라의 딸기 농장 가운데 단일 규모가 가장 큰 이 곳에서 매일 딸기 1톤 가량을 수확한다.

이 딸기 농장의 특징은 큰 규모뿐만이 아니다. 온습도와 영양분 등 딸기의 생육 환경을 가장 알맞게 조절하고,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이 수확하도록 돕는 스마트팜 기술도 이 곳에서 딸기와 함께 자란다. 이 곳을 세우고 가꾸는 이들은 박홍희 굿파머스그룹 대표, 그리고 그를 돕는 곽연미 씨앗 대표다. 이들은 스마트팜 기술에 농부들의 지식 자산을 더해 농업 인공지능을 만든다.

곽연미 씨앗 대표(왼쪽)와 박홍희 굿파머스그룹 대표. 출처 = 굿파머스그룹
곽연미 씨앗 대표(왼쪽)와 박홍희 굿파머스그룹 대표. 출처 = 굿파머스그룹

박홍희 대표는 10여 년 전에 귀농해 딸기 재배와 스마트팜 기술을 갈고 닦은 전문가다. '우공의 딸기정원' 상표로 대형 딸기 농장과 스마트팜을 운영하고, 딸기 재배를 배우려는 젊은 농부들도 돕는다. 그가 우리나라 딸기 농업의 디지털화, 농부들의 세대교체를 이끌 기술로 선택한 것이 유리 온실 스마트팜이다. 기존 비닐 온실보다 대규모로 설계 가능하고, 날씨와 기온 등 환경 변수 제어도 손쉬운 유리 온실 스마트팜을 구축한 그는 이내 또 다른 문제와 마주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딸기 농업은 대부분 소규모로 이뤄졌다. 그나마도 농가들이 한 데 모이지 못해서 각기 따로, 파편화 발전했다. 그래서 유통 과정에서 생산자인 농부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고, 딸기의 품질도 균일하게 관리하지 못했다. 딸기 상표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재배 규모가 작아 수출마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

박홍희 대표는 대규모 유리 온실 스마트팜이 이들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것으로 전망했다. 먼저 딸기를 스마트팜 기술로 재배해 품질을 균일하고 좋게 유지한다. 거점 농장을 기준으로 주변 농가와 힘을 합치고, 딸기 재배량을 기존보다 1.5배에서 2배 가량 늘려 물량을 확보한다. 이를 토대로 생산자의 목소리를 유통 과정에 반영해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 받도록 돕는다. 딸기 품질과 물량을 보증해 해외 수출길도 개척한다.

씨앗이 구축 예정인 농업 특화 IT 인프라의 구조. 출처 = 씨앗
씨앗이 구축 예정인 농업 특화 IT 인프라의 구조. 출처 = 씨앗

이어 그는 스마트팜 운영 효율을 높이려면 복합 환경제어 시스템과 행잉 거터(공중에 매다는 회전식 재배장) 등 ‘하드웨어’ 기술뿐만 아니라, 이들을 하나로 묶어 상승 효과를 낼 ‘소프트웨어’ 기술이 꼭 필요한 점을 깨닫는다. 그래서 딸기 스마트팜 기술과 이를 통합할 IT 인프라를 개발하는 SI(System Integration, 정보시스템 통합) 스타트업 ‘씨앗(SSIAT, Systems & Solutions for Intelligent Agri-Tech)’을 세운다. 씨앗의 회사 이름은 새로운 농업을 싹틔운다는 의미이기도, 우리나라 농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홍희 대표와 함께 딸기 스마트팜 기술을 연마하고 개선해 온 곽연미 대표가 씨앗을 이끈다. 임무는 농업, 그 중에서도 딸기 재배에 최적화한 IT 인프라 연구 개발이다. 농업을 잘 이해해야, 풍부한 농사 경험을 쌓아야 농업과 잘 맞는 IT 인프라를 개발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나아가 씨앗은 지능형 농업 기술 전반과 이를 다룰 시스템 연구 개발로까지 사업 영역을 넓힌다.

첫걸음으로 씨앗은 농업에 특화된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통합정보 시스템)부터 만든다. 일반 ERP는 회계 중심으로 설계된다. 그런데, 농업 현장에서 쓸 ERP는 회계는 물론 농작물의 생산량과 유통 현황 점검, 매출과 재고까지 다뤄야 한다. 곽연미 대표는 딸기 스마트팜을 운영한 10여 년의 경력을 살려 농부들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는 농업 ERP를 만들 예정이다.

씨앗은 농부의 노하우, 재배 경험을 수행하는 룰 세트 인공지능을 구축한다. 출처 = 씨앗
씨앗은 농부의 노하우, 재배 경험을 수행하는 룰 세트 인공지능을 구축한다. 출처 = 씨앗

이어 씨앗은 스마트팜의 인공지능 기술을 갈고 닦는다. 단, 이들의 인공지능은 오늘날 일컫는 그것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씨앗이 추구하는 것, 먼저 만들 것은 ‘룰 세트 인공지능’에 가깝다.

인공지능의 힘은 대단하다. 하지만, 그 힘을 발휘하려면 풍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농업계에는 아직 고도화된 인공지능을 만들 만한 데이터가 없다. 데이터를 정리할 기준도, 농업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변수를 반영할 기준도 없다.

박홍희 대표와 곽연미 대표는 농업 인공지능의 이전 단계로, 농부들이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설정 값으로 만들어 스마트팜에 적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농부들이 만든 지식을 교과서로 만들어서 스마트팜에 입력하는 셈이다. 입력한 지식, 미리 해 둔 설정에 따라 일 하면서(룰 세트) 배운다(인공지능)는 의미에서 룰 세트 인공지능이다.

굿파머스그룹과 씨앗이 운용 중인 딸기 유리온실 스마트팜 전경. 출처 = 씨앗
굿파머스그룹과 씨앗이 운용 중인 딸기 유리온실 스마트팜 전경. 출처 = 씨앗

그러면 누구나 손쉽게 농부들의 지식을 빌려서 스마트팜 농업을 한다. 수많은 변수가 생겨도 비교적 빠르게, 원활하게 대응한다. 이전에 성공한 농업의 공식을 따르는 셈이니 성과도 균일하게 얻는다. 인공지능은 이 성과를 데이터로 만들고 다음 운영에 참조하는 학습 기능도 가졌다.

룰 세트 인공지능은 데이터가 없거나 모자란 상황에서도 큰 효율을 발휘한다. 나중에 고도화된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그 때까지 룰 세트 인공지능으로 거둔 성과를 데이터로 제공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 기술은 농부들의 노하우를 소중한 자산으로 만들고 보존하는 장점을 가졌다.

곽연미 대표는 농부들이 수백 년 이상 쌓아온 농업 지식을 아주 소중한 지식재산권이라고 말한다. 지역마다 딸기를 기르는 방법과 주의할 변수는 다르다. 이들 농업 지식 가운데 가장 알맞은 것, 가장 큰 효과를 낸 것만 모아서 고도화하면 딸기 수확 효율을 높일 값진 지식재산권이 된다.

굿파머스그룹과 씨앗이 운용 중인 딸기 유리온실 스마트팜 전경. 출처 = 씨앗
굿파머스그룹과 씨앗이 운용 중인 딸기 유리온실 스마트팜 전경. 출처 = 씨앗

굿파머스그룹과 씨앗은 스마트팜 솔루션 기업 우성하이텍과 함께 이 기술을 연구 개발한다. 굿파머스그룹은 10여 년 동안 쌓은 딸기 스마트팜 재배 노하우를, 씨앗은 이를 관리할 특화 IT 인프라를, 우성하이텍은 여기에 필요한 기술과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프로그램 통신 도구)를 각각 제공한다.

이들은 2023년 안에 룰 세트 인공지능의 시험 모델을 만들고 우리나라 농가에 적용 예정이다. 성과를 분석해 딸기 외에 다른 작물에도 적용 가능하도록 개량한다. 그러면 새로운 농업 부문, 치유 농업이나 도시형 농장의 발전에도 힘을 실을 것으로 기대한다.

딸기 스마트팜 기술을 고도화하면 굿파머스그룹의 주요 목표인 ‘젊은 농부’의 지원 육성 체계 구축도 자연스레 이뤄질 전망이다. 대규모 유리 온실로 교육 공간을 마련하고, 주변 농가와 협업해 만든 거점 농장을 실습 공간으로 삼는다. 딸기의 생산량을 많이 늘리고 스마트팜 기술을 고도화한다. 주변 농가와 협업·상생하면서 젊은 농부들도 가르친다. 박홍희 대표는 이번 협업이 일석사조라고 강조한다.

굿파머스그룹, 씨앗과 함께 딸기 재배를 배우는 농부. 출처 = 씨앗
굿파머스그룹, 씨앗과 함께 딸기 재배를 배우는 농부. 출처 = 씨앗

그는 한편으로는 스마트팜과 귀농에 관심을 가진 젊은 농부들에게 ‘스마트팜의 장점과 한계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박홍희 대표는 수 년 동안 우공의 딸기정원에서 젊은 농부를 가르쳤다. 그 과정에서 농부들이 스마트팜을 오해하는 것을 발견한다. 스마트팜은 다루기 편리하고 농작물의 수확량도 많이 늘리는 기술이지만, 노동을 완전히 대체하는 기술은 아니다. 만능이 아니다. 스마트팜을 도입해도 여전히 딸기를 포함한 농작물 재배는 어렵고 고된 일이다.

곽연미 대표도 비슷한 조언을 건넨다. 씨앗이 개발할 스마트팜과 IT 인프라를 잘 활용하려면 최소한 세 작기, 3년은 농사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지식도 쌓고 여러 변수에 대응하는 능력도 기른다고, 귀농에 실패할 가능성을 줄인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농사 경험을 쌓아야 자신에게 어울리는 농작물이 무엇인지 배운다. 농사 계획과 목표를 어떻게 세우는지도 배운다. 귀농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만큼 큰 대규모 투자다. 실패하면 안된다. 그래서 역량을 잘 쌓고 철저히 준비하며 대비해야 한다.

박홍희 대표와 곽연미 대표는 딸기 스마트팜·IT 인프라와 인공지능을 확보해, 귀농 각오를 마친 젊은 농부뿐만 아니라 40대~50대 중년 농부도 돕는다. 중년 농부는 사회 경험을 쌓았고 농업도 비교적 친숙하게 여긴다. 그래서 농업에 금방 익숙해지고, 젊은 농부들의 귀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굿파머스그룹의 목적은 농업의 세대교체를 성공리에 이끄는 것이다. 그러려면 젊은 농부뿐만 아니라, 이들의 길잡이이자 멘토 역할을 할 중년 농부도 잘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다.

굿파머스그룹의 농부 교육 현장. 출처 = 굿파머스그룹
굿파머스그룹의 농부 교육 현장. 출처 = 굿파머스그룹

굿파머스그룹과 씨앗은 우공의 딸기정원을 교육의 무대이자 농업 세대교체의 장으로 꾸민다. 고효율 스마트팜 기술로 품질 좋은 딸기를 많이 거둔다. 주변 농장과의 상생책도 마련한다. 협업 구조로 수익화 방안을 만들면 기존 농부에게는 이익을, 세대교체를 할 젊은 농부에게는 확신과 지식을 각각 가져다준다. 한 걸음씩 농촌의 문제를 해결한다.

곽연미 대표는 “농업의 디지털화와 세대 교체는 하기 어려운 문제다. 굿파머스그룹과 씨앗은 천천히, 우직하게 시도하겠다. 농업 데이터를 차근차근 모으고 유효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해, 스마트팜과 농업 세대 교체의 길잡이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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