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가상과 현실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쫓는다
[IT동아 권명관 기자] 지난 2020년 이후 3년 만에 정상 개최된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 2023)’가 막을 내렸다. 173개국에서 3,000여 개 기업이 참가해 약 11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하며 기대 이상의 흥행을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에서 참여한 기업 수는 550여 개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고, 혁신 기술과 제품에 수여하는 혁신상을 수상한 한국 제품은 216개로 전체(612개)의 35%를 차지했다. 또한,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에 수여하는 최고혁신상 수상기업 23개사 중 12개가 국내기업이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지난 1월 18일 공개한 ‘CES 2023으로 살펴본 혁신 기술 트렌드’ 보고서를 통해 올해 CES를 ‘HUMAN’이라고 분석했다. ‘초연결(Hyper-connected)’, ‘초지속(Ultra-sustainable)’, ‘메타버스(Metaverse)’, ‘모빌리티(Automobility)’, ‘신(新)디지털 헬스케어(New-healthcare)’, ‘인간안보(For Human)’ 등 6가지를 올해 CES 트렌드로 꼽고 머릿글자를 따 'HUMAN'으로 요약했다.
이 중 메타버스, 디지털 헬스케어, 초연결 등은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인해 단절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했던 시기에 발전한 기술 트렌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강제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보내야 했던 우리는 일상에 맞춰 대응한 결과다. 타인과 직접 만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는 원격 회의·채팅, 협업 도구, 비대면 의료 등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했다.
특히, 메타버스는 CES 최초로 선정된 주요 키워드다.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의 스티브 코잉 부사장은 ‘메타버스를 차세대 인터넷’에 비유하며, 과거 인터넷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삶을 바꿀 기술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CES 2023에는 다양한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기가 스마트폰의 뒤를 이어받을 기기로 등장했으며, 전 세계 여러 기업이 관련 서비스를 선보이며 관람객의 이목을 끌었다.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글로벌 IT 기업도 메타버스 관련 기술 개발과 제품을 출시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로블록스, 메타, 네이버 등이 콘텐츠, 플랫폼 분야의 시장 선점을 위해 노력 중이다.
CES 2023에서 선보인 다양한 메타버스 서비스
코로나19 팬데믹은 비대면 서비스를 대하는 시각을 바꿔놓았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만나지 않아도 경험할 수 있다’는 가능성 중심이었다면,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된다는 강제적 팬데믹 시기를 겪으며 비대면 서비스는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상현실은 비대면 시기에 관계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주목받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상현실과 메타버스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아직은 경험하지 못한 낯선 문화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번 CES에서는 가상(디지털)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일상과 융화되는 구체적인 가상세계의 등장을 알렸다. 롯데정보통신은 자회사 캘리버스를 통해 가상현실과 증강현실로 공연을 보거나, 쇼핑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을 마련했다. 롯데 하이마트, 세븐일레븐 등을 테마로 꾸민 가상세계 속에서 의류나 화장품, 가전 등을 체험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제공했다. 계단형 의자에 앉은 관람객들은 VR 기기를 쓰고 허공을 향해 손짓하며 메타버스 공간을 돌아다녔다.
신한은행은 핀테크 카테고리에 단독 부스를 마련해 메타버스 플랫폼 ‘시나몬’을 소개했다. 시나몬은 은행 시스템과 직접 연계할 수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국내 금융권에 적용되는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클라우드 위에 금융권 엔터프라이즈 인프라 환경을 별도 구축했다. 은행이 보유한 다른 플랫폼 서비스와 금융 데이터를 연계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국내 전시공간 디자인 업체인 엑스오비스(Xorbis)는 CES 2023 전시관에 360도 파노라마 영상 기술 ‘홀로 파노라마 X’를 선보였다.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형 구조물에만 들어가도 가상세계에 들어간 듯한 경험을 제공했다. 동작 센서를 통해 이용자의 손동작을 인식, 허공에 손짓하는 것만으로 조작할 수 있는 기술도 선보였다.
캐논은 부스를 영화 속 무대처럼 꾸몄다. 영화 ‘식스센스’를 연출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신작 ‘노크 앳 더 캐빈’의 배경인 오두막이다. HMD을 쓴 채 오두막으로 들어가면 실제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가는 느낌과 영화 속 배우와 대화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 니콘은 부스에 오토바이를 설치하고, LED 앞에서 관람객들이 미래형 오토바이를 타는 듯한 가상현실 체험을 제공했다.
소니는 7개의 스캐너로 둘러싸인 공간에 잠시 서 있으면 가상세계에 똑같은 아바타를 구현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몸을 움직이면 가상세계 속 아바타도 똑같이 움직이는 기술을 선보였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시티와 협업 중인 소니는 이를 활용해 같은 팀을 응원하는 전 세계 축구팬들을 연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메타버스, 가상과 현실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쫓는다
CES 2023에서 메타버스는 일상 속으로 조심스럽게 한발 내딛었다. 다소 낯설었던 형태의 기기인 HMD와 최적화하지 못했던 콘텐츠 등으로 메타버스의 성장 가능성을 지적했던 목소리도 있었지만, 비대면 문화 확산과 함께 주요 기술 트렌드로 떠올랐다. 천차만별이었던 HMD도 주요 몇몇 기기로 재편되었으며,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도 속속 등장했다. 이러한 기기와 콘텐츠를 연결해 일반 사용자가 일상 속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디지털과 현실을 자유롭게 오가는 생태계, 플랫폼으로 점차 발전하고 있다.
초기 메타버스는 가상세계 그 자체로서 인식해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로 인식했다. 마치 사용자가 게임 속 주인공처럼 바뀌어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두 세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서비스로 발전했다. 메타버스의 발전은 가상세계와 현실을 분리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상호 작용하고 융합되는 단계까지 발전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관련 기술이 발전해도 실현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실감의 결여와 같은 단점 등 개선할 부분은 지속적인 업그레이드와 병행하며 초기의 메타버스 세계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