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아크 GPU 세 달간 써보니··· '완성도는 기대 이상, 드라이버는 산으로'
[IT동아 남시현 기자] 인텔 CEO 펫 겔싱어(Pat Gelsinger)는 지난해 9월 27일 개최된 ‘인텔 이노베이션’ 행사에서 인텔의 새 그래픽 카드인 인텔 아크(Arc)를 공개하면서 “GPU의 평균 가격은 300달러 정도지만 지난 몇 년새 꾸준히 올랐다. 이는 게이머들이 패배 의식을 느낄 정도며, 인텔은 이 문제를 바로잡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20여 년 만에 인텔이 새 그래픽 카드를 공개하는 순간 가격 문제부터 바로잡겠다고 한 이유는 바로 시장 상황 때문이었다. 20년 가까이 엔비디아와 AMD가 시장을 양분하면서 제품 가격이 지나치게 오른 것이다. 이를 의식한 인텔은 A770 및 A750을 각각 329달러 289달러로 출시했으며, 실제로 소비자들이 접하는 가격도 49만 원, 38만 원대로 낮게 책정됐다.
하지만 늘 그렇듯,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1세대 제품은 하자나 문제가 많다는 인식이 있어서 인텔 아크 역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인텔의 새로운 그래픽 카드가 정녕 ‘유료 베타테스트’ 제품인지, 아니면 엔비디아와 AMD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세 달에 걸쳐 직접 사용해 봤다.
인텔 A770, RTX 3060 Ti와 비슷한 게이밍 그래픽 카드
인텔 A770은 TSMC 6nm 기반 데스크톱 그래픽 카드로, 32개의 Xe 코어와 32개의 레이 트레이싱 유닛이 적용돼 있다. 구성에 따라 8GB 및 16GB GDDR6 메모리가 탑재되며, 인텔에서 제조한 ‘리미티드 에디션’, 그리고 애즈락(ASRock) 팬텀 게이밍 D 아크 770 OC D6 8GB를 선택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테스트한 결과를 기준으로 A770의 게이밍 성능은 엔비디아 RTX 3070보다 소폭 낮고, AMD 라데온 6600 XT보다는 높다. 실사용자들 사이에서의 성능 체감은 엔비디아 RTX 3060 Ti와 비슷하거나 조금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자가 인텔 아크 A770과 결합해서 사용한 시스템은 AMD 라이젠 5 3600X에 16GB DDR4 메모리가 적용된 구형 메인스트림 급 데스크톱이다. 최신 사양은 아니지만 FHD 게임을 주력으로 한다면 부족하지 않은 성능이다. 다만 이 시스템이 최소 조건이다. 인텔 아크 시리즈는 CPU가 그래픽 메모리의 자원을 끌어다쓰는 ‘리사이저블 바(Resizable BAR)’ 기능의 의존성이 높아서, 이 기능을 쓸 수 없는 시스템에서는 성능이 최대 40%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인텔 아크를 사용한다면 AMD 라이젠 3000 시리즈 혹은 10세대 인텔 코어 i 시리즈 이상의 CPU 및 메인보드 시스템이 권장된다.
드라이버는 출시 이후 네 차례 업데이트됐으며, 최신 버전은 31.0.101.4032다. 가장 많은 사용자들이 궁금해하고 우려할만한 게임에서는 의외로 큰 문제가 없었다. 주로 플레이한 게임은 DX11 및 DX12 기반의 게임으로, 사이버펑크 2077과 데스 스트렌딩 디렉터스 컷, 레드 데드 리뎀션 2를 합쳐 200시간 가까이 플레이했다.
이때 실행 직후 윈도우 하단 바나 다른 창이 겹쳐 보이는 문제, 화면이 확대되어 보이는 문제, 설정 해상도와 비율이 다르게 보이는 문제 등등이 종종 있었지만 전체 플레이 시간을 합쳐 손에 꼽을 정도로만 문제가 생겼다. 게임 내 그래픽이 깨진다거나 색상이 비틀어진다거나 그라데이션에 다른 색상이 섞이는 등의 문제는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게임 중 갑작스럽게 응답 없는 등의 문제도 겪지 않았다. 즉 초기 설정 시에 문제가 없으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자체는 원활하다.
물론 플레이한 게임들이 모두 최신 업데이트를 지원한다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언리얼 엔진이나 유니티 등 대중적인 엔진을 사용한 게임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자체 엔진을 활용하거나 업데이트가 끊긴 옛날 게임 등에서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레이 트레이싱 호환성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사이버펑크 2077도 게임 메뉴를 벗어날 때마다 화상이 순간적으로 밝아지는 현상이 있었고, 다른 레이 트레이싱 지원 게임도 아직 문제가 많다는 보고들이 있다.
또한 영상 재생 측면에서도 인상적인 성능을 보여준다. 인텔 아크 그래픽 카드는 AV1 인코딩 및 디코딩을 기본으로 지원해 8K 급의 고해상도 영상 재생에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사용자들의 전반적인 평가는 AV1 재생 성능에 한해서는 RTX 3090에 맞먹는 수준이며, 실제로 8K 60p 유튜브 영상 등도 끊임없이 재생되는 성능을 보여준다.
비트 전송률 400MB 급의 8K 24p 동영상을 재생한 결과에서도 GTX 1070은 버벅거렸지만 A770은 GPU 점유율 60%대, 메모리 사용률 36%의 안정적인 처리 효율을 보여줬다. 또한 인텔 계열 CPU와 조합하면 영상 처리에 CPU와 GPU를 모두 동원하는 ‘딥링크’ 기능도 지원한다. 8K 영상을 재생하거나 취급할 일이 있다면 가격대 효율면에서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꾸준히 개선되나, 여전히 발목잡는 드라이버
최신 드라이버는 31.0.101.4032이며, A770 출시 이후 총 네 번의 업데이트를 거쳤다. 작년 12월 업데이트된 3959 버전의 경우 다이렉트X 9 지원을 최적화해 리그 오브 레전드,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 스타크래프트 2 등의 게임 성능을 1.3~2.26배까지 끌어올린 바 있다. 하지만 그래픽 드라이버의 성능과 호환성은 부단히 개선해야 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3959 버전에선 문제가 없었는데 4032 버전부터 간헐적으로 유튜브나 기타 웹 플레이어가 미디어 엔진 에러로 재생이 안된다거나, 특정 상황에서 HDMI로 연결된 오디오 신호가 무조건 100%로 고정되는 등 예측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버전이 업데이트될수록 이런 문제가 사라지거나, 또 다른 없던 문제가 생기곤 한다.
또 인텔 아크 컨트롤의 완성도도 나아지질 않는다. 엔비디아 지포스 계열 그래픽 카드는 녹화 등을 진행하기 위해 추가로 지포스 익스피리언스를 설치해야 하지만, 인텔 아크 컨트롤은 드라이버 메뉴에서 캡처, 하이라이트, 카메라 및 라이브 스트리밍 등을 지원하며, 실시간 성능 모니터링과 오버레이, GPU 성능 및 전압, 코어 전력 제한, 온도 한도 등을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가상 해상도나 연결된 디스플레이 색상 및 세부 설정, 가변 주사율 등 세부 설정은 여전히 지원하지 않는다. 게임을 자동으로 인식해 최적화 설정(전역 설정)을 적용하는 기능도 인식 기능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URL 등이 공란으로 있는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있는 그대로 사용하기엔 괜찮은데, 조금만 깊게 파고 들어가도 제약이 많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성능을 끌어올리는 업스케일링 기술, XeSS는 아직까지 평가하기 이르다. XeSS의 성능 자체는 엔비디아 DLSS만큼 우수하며, 조건에 따라서는 AMD 피델리티FX보다 좋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생태계가 미비하다 못해 없는 수준이다. 인텔 아크 공개 당시 섀도 오브 더 툼레이터, 데스 스트랜딩 디렉터스 컷, 용과같이, 리프트 브레이커, 마블 스파이더맨 리마스터에 XeSS 기술이 도입됐고, 현재 모던 워페어 II나 고담 나이트, 히트맨 II, 언리얼 엔진 등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경쟁 기술과 비교하면 거의 미지원 수준이다.
기대 이상의 완성도, 가끔씩 떠오르는 아쉬움
인텔 아크 시리즈 그래픽 카드의 완성도는 기대 이상이다. 인텔 740 이후 25년여 만에 등장한 데스크톱 그래픽 카드인 만큼 ‘유료 베타테스트’라는 꼬리표가 달려있지만, 제품의 가격 대비 성능이나 완성도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게임을 넓고 다양하게 즐기지 않고, 깊고 좁게 플레이하긴 했지만 튕기거나 에러가 나는 등의 심각한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엔비디아 그래픽 카드의 드라이버는 인텔 아크와 비교해 무결하다 싶을 정도의 호환성을 갖췄다보니 결국 선택을 주저하게 만든다. AMD 라데온 정도라면 고민을 해볼 수준은 된다.
AMD 라이젠 3000 시리즈 이후 혹은 10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 이후 데스크톱이면서 무난한 성능의 메인스트림 급 그래픽 카드를 원하는 경우, 현재 GTX 1060 6GB 이하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 8K급 영상을 편집하는 고성능 컴퓨터에 가성비로 활용할 AV1 인코딩 및 디코딩용 그래픽 카드가 필요하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호환성에 대한 문제는 이해를 하고 써야 한다.
게이머들은 이번 인텔 1세대 ‘알케미스트’를 통해 내년, 그리고 후내년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A770의 완성도를 고려하면, 추후 출시될 코드명 배틀메이지, 셀레스티얼, 드루이드가 기대 이상일 수 있어서다. 엔비디아는 어려워도 AMD의 입지는 충분히 위협할 수준은 될 듯 하다. 드라이버 품질과 게임 생태계는 추후 업데이트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영역이니 전적으로 인텔에 달렸다. 인텔이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경쟁 기업들을 견제하고, 게이머를 위한 제품을 만들어나가길 바란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