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콘텐츠로 자녀와 소통하기] 5. 자녀의 디지털미디어 통제 능력을 길러주는 소통법
[IT동아]
자녀가 게임을 하다가 정해진 시간을 딱 지켜 게임을 멈출 수 있는 능력, 원하는 유튜브 영상만 딱 보고 그만 둘 수 있는 능력은 타고난 것일까요, 아니면 길러지는 것일까요?
심리학자 엔더스 에릭슨(Anders Ericsson)은 이런 능력은 타고난 성격이나 재능이 아니라, 최소한 10년 이상 격렬한 연습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부모에게는 쉽지만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되는 건 연습의 차이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미있는 것을 보다가 멈추는 건 어른도 쉽지 않습니다. 태어난지 10여년 된 아이가 어른도 어려운 일을 척척 해결하리라 기대하는 건 아무래도 비현실적인 바람입니다.
당연히 연습이 덜 되어 미숙한 자녀들은 부모와 한 약속을 까맣게 잊고, 게임과 유튜브 삼매경에 빠지곤 합니다. 이런 자녀들의 행동에 부모가 어떻게 대처해야 자녀의 자기통제 능력이 길러질 지에 관해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드웩(Dweck) 교수가 실험한 내용이 있습니다.
한 집단에는 성공한 결과를 칭찬했고, 다른 한 집단에는 노력을 한 과정을 칭찬한 '마음가짐(mindset) 연구'입니다. 이 연구의 결론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칭찬하는 것이 자녀들을 좀더 오래 집중하여 노력하도록 만들고, 장기적인 성공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과정이야 어떻듯 성공에 대해서 칭찬하는 것, 혹은 잘못한 결과에 대해서 혼내는 것은 자녀들에게 결과 중심의 사고를 가져옵니다. 성공 가능성이 낮은 어려운 과제를 접할 때 자신의 무능이 드러날까봐 핑계를 찾아 결사적으로 피하려고 합니다. 결국 자기가 할 수 있는 쉬운 것만 시도하는 고착 마음가짐(fixed mindset)을 굳어집니다. 심지어 결과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부정행위도 서슴지 않습니다.
몇 번 시도했으나 실패할 경우 '이런 일은 난 잘 못해'라고 단정짓는 경향도 나타납니다. 반면 열심히 노력한 과정에 대해서 칭찬 받은 자녀들은 어려운 과제라도 기꺼이 도전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실력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과정에서 나타난 실수에 자존심이 깎이기 보다는, 다음 번에 어떻게 해야 실수하지 않게 될지 성공의 가이드로 생각을 하는 성장 마음가짐(growth mindset)이 길러집니다.
이 연구의 시사점은 자녀들이 게임과 유튜브에 대한 약속을 지켰는지, 못지켰는지에 매몰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대신 게임과 유튜브에 대해서 자신의 통제력을 발휘하고자 노력했고, 어떻게 점점 그 능력이 길러지고 있는지에 대해 부모들이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세상을 배워가는 자녀들에게 부모는 자녀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감독이 아니라, 자녀들 상황에 맞게 능력을 길러주는 코치의 역할이 적합하다는 겁니다. 이런 점은 자녀들의 디지털 미디어 이용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스마트폰을 처음 접하는 초등학생이 처음부터 잘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실수하게 되었을 때 부모 반응이 중요합니다. "재미있는 것을 멈추는 건 힘들어, 하지만 재미있는 것만 하며 지낼 수는 없으니 다음에는 약속 시간에 맞춰 멈출 수 있도록 우리 한번 해보자"라고 말하는 게 화내는 경우보다 자녀의 통제능력을 길러주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녀와 부모가 약속한 시간을 지킨다면 폭풍 '칭찬' 혹은 '축하'를 해줘야 겠지요. 마치 자전거 타기에 처음 성공한 자녀에게 해주듯이 말입니다.
자신의 주변 환경을 능숙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건 자존감의 기둥인 유능감을 길러줍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통제할지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라면 게임이나 유튜브를 언제까지 볼 것인가 정하기 보다는, 주말 혹은 저녁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그 스케줄을 잡도록 자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예를 들면, 게임을 한 시간 하고, 학원 갔다가 숙제하기로 자기 계획을 잡은 아이는 그 계획에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곤 엄마에게 이렇게 말할 겁니다. "혹시 1시간이 지나도 게임을 계속 할 수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알려주세요"라고요. 눈치 보지 않고 게임을 즐겁게 한 아이는 게임 시간이 다됐다는 엄마 말에 바로 다음 계획으로 바꾸는 것이 수월해집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된다면 난이도가 더 높은 과제로도 전환할 수 있습니다.
"엄마한테 알려달라고 하지 말고, 알람을 맞춰두면 어떨까? 한 시간을 파악하기 어려우니 10분 전에 알람이 울리도록 하면 더 좋을 것같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이런 부모의 제안을 거절하는 경우는 대체로 드뭅니다. 왜냐하면 더 어려운 과제는 자기의 능력을 믿어준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녀에게 선택권을 전적으로 맡게기 되면,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드는 동시에 자기조절을 연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좀더 근원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입니다. 배고픔이나 목마름의 욕구가 옳고 그름이 없는 것처럼, 게임을 하고 싶은 욕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욕구가 부정되면 화가 나거나, 경우에 따라 섭섭함 혹은 억울함을 느끼기 쉽습니다. 대체로 이럴 때 나타나는 현상은 자신의 욕구가 정당함을 증명하기 위한 강한 주장입니다. 이는 생산적인 결과와 반대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점심 먹은지 얼마 안됐는데 배가 고프다는 아이가 있습니다. 엄마는 밥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배고프냐고 부정을 합니다. 자녀는 자신의 욕구가 부정당한 것에 대해 배고프다는 것을 더욱 강하게 주장하거나 짜증을 낼 수 있습니다. 이때 엄마가 "엄마만 보면 먹을 것이 생각나지?"라거나 "엄마는 네가 먹을 거 달라면 무조건 주는 사람이냐?"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면, 결국 서로 감정만 상한 채 저녁식사 시간까지 냉냉한 분위기가 유지됩니다.
반면 그 욕구를 인정하면 다음 솔루션은 비교적 원만해집니다. "밥 먹은지 얼마 안돼서 배고픈줄 몰랐네?"라며 자녀의 욕구를 인정합니다. 그럼 '뭘 먹고 싶으니'라고 물어보는 순서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라면을 먹고 싶다든지, 밥을 더 먹고 싶다는 등 선택지를 함께 의논할 수 있습니다. "저녁에 고기를 먹을 거니 좀 가볍게 먹는게 좋을 것 같아. 과자를 먹는 것이 어떨까"라는 제안에 대해 자녀는 이를 받아들이거나 다른 선택지를 고르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자녀의 욕구가 인정받고 그 해결책을 대화를 통해 선택하는 방식으로 부모와 자녀가 모두 만족하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게임이나 유튜브도 이와 같습니다. 게임하고 싶은 마음은 옳고 그름이 없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욕구입니다. 그런데 이런 욕구가 좌절되면 앞서 소개된 갈등이 재현될 수 있습니다. 반면 이런 욕구를 인정하면 그 다음 해결책을 서로 마련하기 쉬워집니다. 게임하고 싶다면, 어떤 게임을 얼마나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 부모는 옵션을 제시해줄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곧 시험이 있으니 잠깐잠깐 할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은 어때?"라든가, "조금 이따가 손님들이 오실텐데 그때까지 게임하고 같이 손님맞이 준비를 하는 건 어떨까?"라고 말이죠. 대체로 이런 제안 중 하나를 선택한 자녀는 상냥한 말투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약속대로 깔끔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구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정과 존종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욕구에 대한 인정과 존중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정도는 우리 자녀들도 잘 압니다. 가능한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욕구를 부모와 자녀가 디지털미디어 사용을 놓고 상의할 수 있다면, 우리 자녀들은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도 원만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로 성장할 것입니다.
글 /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이장주 소장 (zzazanlee@gmail.com)
첨단 기술이 사람의 마음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문화심리학박사.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게임문화재단 이사,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이사, 한국중독심리학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왕성한 대중강연과 IT동아 등의 매체에 기고활동을 하고 있다. <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 <십대를 위한 미래과학콘서트(공저)>등의 저서가 있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