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독점 저승사자 만난 MS…'세기의 빅딜' 향방은?
[IT동아 권택경 기자]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막기 위해 제기한 반독점 소송의 재판 전 심리가 3일(현지시각) 열린다. FTC는 지난달 8일 마이크로소프트가 인기 게임 프랜차이즈를 장악해 게임 콘솔이나 구독 서비스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며 인수 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앞서 지난해 1월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정보통신기술 업계 인수합병 사상 최대 금액인 687억 달러(약 87조 원)에 인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콜 오브 듀티’, ‘워크래프트’ 등의 인기 게임 지식재산(IP)을 보유하고 있는 유명 게임 개발사다. 인수 규모로 보나, 그 파급력으로 보나 ‘세기의 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인수합병이다. 그러나 FTC가 제동을 걸면서 인수 성공 여부는 일단 안개 속으로 빠졌다.
예견된 ‘태클’이지만…우여곡절 불가피
FTC가 이번 인수 건을 가볍게 넘기지 않을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바이든 정권에서 새롭게 FTC 위원장을 맡은 리나 칸은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에 기존과 다른 새롭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유명해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실제 리나 칸의 FTC는 지난해 2월 엔비디아의 ARM 인수를 저지한 바 있다. 이는 경쟁사끼리의 수평 결합이 아닌, 서로 다른 공정 단계에 속하는 기업끼리의 수직 결합은 대부분 승인해온 그간의 사례와는 대비되는 행보다.
마이크로소프트 측은 FTC 우려를 반박하며, 법정에서 인수 정당성을 증명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FTC뿐만 아니라 영국 경쟁시장국(CMA)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또한 경쟁 저해 우려가 있다며 심층 조사에 나선 상황이라 우여곡절이 예상된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인수 마무리 시기가 늦춰지거나, 경쟁 저해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조건을 달고 승인받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콜 오브 듀티’가 뭐길래
이번 인수 건의 쟁점 중 하나는 '콜 오브 듀티'에 대한 권리다. 콜 오브 듀티는 북미에서 ‘국민 게임’ 위상을 지녔으며,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인기 게임 시리즈다. 콜 오브 듀티는 소니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기 엑스박스에 모두 출시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이용자층은 플레이스테이션 기반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에만 독점 콘텐츠나 혜택을 제공하는 등 마케팅 또한 그간 플레이스테이션 위주로 이뤄져 왔다.
실제 콜 오브 듀티 전문 매체 찰리인텔이 트위터에서 5만 명을 대상으로 콜 오브 듀티를 어느 플랫폼으로 즐기는지 설문한 결과, 플레이스테이션 이용자가 42.1%로 가장 많았으며, 엑스박스는 25.6%에 불과했다. 이는 28.4%로 나타난 PC 이용자보다 적은 숫자로, 3.9%에 불과한 모바일을 제외하면 주요 플랫폼 중에서 꼴찌라 할 수 있는 수치다.
소니는 그간 콜 오브 듀티 수혜를 톡톡히 누려왔던 만큼 이번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가 달가울 수가 없는 상황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콜 오브 듀티를 엑스박스 전용 게임으로 전환하거나, 구독 서비스인 게임 패스를 통해 제공하면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니는 콜 오브 듀티는 대체 불가능한 프랜차이즈며, 마이크로소프트가 이에 대한 권리를 획득할 경우 경쟁이 저해된다며 인수 반대 의견을 각국 규제당국에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콜 오브 듀티를 최소 10년 이상 플레이스테이션을 비롯한 타사 플랫폼에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닌텐도와는 실제로 콜 오브 듀티를 10년 동안 제공한다는 계약에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니는 마이크로소프트 제안에 응하지 않으면서 인수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FTC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2021년 제니맥스 인수 후 일부 게임들을 플레이스테이션에 제공하지 않기로 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특히 FTC는 마이크로소프트가 EC로부터 제니맥스 인수 허가를 받을 당시제니맥스 게임을 타 콘솔에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이를 어겼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지금은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지만, 언제든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EC 측은 FTC 측 주장과 달리 그러한 약속은 없었다고 바로 잡았다. 당시 제니맥스 인수 승인은 경쟁 저해 요소가 없다는 판단 아래 내린 무조건 승인이었으며, 이러한 판단에 제니맥스 게임을 비독점으로 유지하겠다는 마이크로소프트 진술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 편?
규제 당국들의 우려와 달리 게임 이용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번 인수합병에 대부분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CMA는 이번 인수가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성명을 낸 후 일반 대중들로부터 2100통의 의견을 접수했으며, 이 중 4분의 3이 인수에 우호적인 의견이었다고 지난달 23일 밝혔다.
이처럼 여론이 이번 인수 건에 우호적인 건 마이크로소프트가 그간 게임 시장에서 소비자 친화적 정책을 펼친 결과로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구독 서비스인 게임 패스를 통해 대작 게임들을 출시 첫날부터 저렴하게 제공하거나, 하위 기종 게임에 대한 무료 업그레이드 혜택을 제공해왔다.
반면 소니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대작 게임을 출시 첫날에 제공할 일은 없을 것이라 못 박고, 유료 업그레이드 정책 고집하는 등 여러모로 대조적 행보를 밟고 있다. 그동안 적극적인 독점 계약으로 이득을 봐왔던 소니가 독점 폐해를 이유로 이번 인수를 반대하는 건 ‘내로남불’이라며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