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도 업무카톡으로 쉬질 못해요"...다시 추진되는 '업무카톡 금지 법안'
[IT동아 정연호 기자]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A씨의 최근 고민은 근로시간 이후로 직장 상사가 보내는 카카오톡 메시지다. 공식 근로시간이 끝났어도 상사인 B씨가 업무와 관련된 지시를 해 편하게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해결이 필요한 문제가 아닌 경우에도 근로시간 이후로 지시를 내리는 B씨의 행동으로 A씨는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재택근무가 널리 퍼지고 SNS로 업무 지시를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세계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논의가 거세지고 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란 근로시간 외 직장 상사의 업무 관련 전화, 메일, 메시지를 받지 않아도 직업적인 의무를 위반한 게 아님을 보장하는 권리를 말한다.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2017년 1월 1일부터 노동법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포함해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 내 기업은 노사협의를 통해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지킬 실용적 방안을 도출해야 하며, 50인 이상의 기업은 의무 연례 협상에 연결되지 않은 권리를 포함해야 한다. 이탈리아, 슬로바키아, 필리핀도 노동법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했다.
한국에서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반복돼 왔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국회의원은 근로시간 외에 전화, 문자, SNS를 통해서 반복적이며 지속적인 업무 지시를 하는 걸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를 위반하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게 된다. 이와 유사한 법안이 2016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 발의됐으나 과잉 규제라는 이유로 통과되지는 못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한국은 퇴근 후에도 카톡으로 연락을 해도 응답하지 않으면 근로자를 괴롭히는 나라”라고 지적한다. 상사의 지시에 대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게 되는 ‘한국형 갑질’로 인해 근로자는 근로시간 외에도 업무를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 500명을 조사한 경기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경기도민 10명 중 9명은 근로시간 외 업무 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87.8%).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37%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근로시간 외 업무지시를 받는다고 답했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근로시간 외 업무지시를 받는 경우가 34.2%에 달했다. 열 명 중 한 명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근로시간 외 업무지시를 받았다.
한국노동연구원은 한국의 노동자들이 일주일 동안 평균 11시간의 추가 노동을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은 연간 노동시간이 1967시간으로 멕시코 다음으로 OECD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로 조사됐지만, 근로시간 외 노동시간까지 합하면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이를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지금까지 발의돼 온 근로시간 외 업무지시를 금지하는 법안은 과잉규제라는 이유로 통과되지 못했다. 가령, 회사 서버가 다운된 상황에 개발자를 긴급 투입돼야 하는 상황처럼 업종별 차이를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노웅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모든 경우의 수를 촘촘하게 규제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로 규제 대상을 한정했다. 위 사례처럼 일회성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근로시간 외에도 담당자를 긴급 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법안 통과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전히 과잉 규제 문제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근로자들이 공식적인 근로시간에도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근로시간 외에 휴식권만 지나치게 보장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락과 업무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법 집행의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 초과근무에 대한 재정의도 필요해"
법 개정과는 별개로, 노동자들의 노동 권리를 위해서는 초과근무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시간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와 감독 아래에서 근로계약에 의한 근로를 제공하는 시간을 말한다. 근로시간 중 대기시간이나 휴식과 수면시간이라고 해도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사용자 지휘와 감독에 놓여있으면 이는 근로시간에 포함된다.
근로시간 외 업무지시에 따라 일을 했을 때는 초과근무로 인정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상사가 휴식의 리듬을 깰 정도로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문자를 보내며, 노동자가 시간을 들여 답을 해야 한다면 초과근무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초과근무를 인정할 때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업무였는지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고, 근로 장소가 아닌 곳에서 일을 할 때 어디까지 근로 제공으로 볼 지 경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황별로 구체적인 쟁점을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경기연구원 최훈 연구위원은 “사용자 지휘와 감독하에 시간적⋅장소적으로 구속돼 노무를 제공하는 경우만 근로시간으로 해석하고 있어, 근로시간 외 노동은 근로시간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독일과 프랑스처럼 ‘호출 대기’라는 제3의 영역을 둬 휴식 시간이지만 실제 업무를 수행할 경우 근로시간으로 인정하는 탄력적 운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기시간은 사용자가 지정한 곳에 머물러야 하지만, 호출 대기는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으나 휴대폰을 켜놔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호출 대기는 원칙적으로 휴식 시간이지만, 업무활동을 하면 근로시간으로 인정된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