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뜨는 구독경제... 고객은 무엇에 만족하나?

정연호 hoho@itdonga.com

[IT동아 정연호 기자]

20대 후반 남성인 A씨는 면도날 구독 서비스 ‘와이즐리’를 장기간 이용하고 있다. 구독 서비스를 시작한 이유는 면도날을 제때 바꾸지 않으면 위생적이지 않을 것이란 걱정 때문이었다. 와이즐리 면도날을 사용해보니 면도기로 유명한 타사의 제품과 절삭력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가격 경쟁력도 와이즐리 구독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다.

A씨는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고객 관리 서비스에도 만족하게 됐다. 면도날은 어느 정도 주기로 교체를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헤맬 때가 많았는데, 와이즐리는 교체 시기를 알림으로 보내주니 더 위생적으로 면도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구독경제의 키워드로 떠오른 건 ‘고객 만족’이다. 정기적으로 면도기, 화장품, 화장지, 생리대 등의 생필품을 보내주는 구독경제는 더 이상 편리함만으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구독경제 스타트업들은 제품을 직접 만들어 품질을 향상시키거나, 충성도 유지를 위해 고객 관리에 힘쓰기 시작했다.

출처=와이즐리 홈페이지
출처=와이즐리 홈페이지

와이즐리는 면도날을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면도기는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2주 이상 교체하지 않으면 날이 무뎌지고 부패한다. 바쁜 일상에 치여 면도날을 구매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면도날 구독으로 얼굴 피부가 상하는 걸 피할 수 있다.

와이즐리의 면도날은 가성비 덕분에 재구매율이 90% 정도로 높은 편이다. 가격은 경쟁사 제품 대비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고객에게 직접 면도기를 판매해 가격이 저렴하다. 면도기는 와이즐리가 자체 개발했다. 구독을 시작하기 전 면도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하루에 면도를 몇 번 하는지 등에 대해 답하면 와이즐리는 맞춤 상품과 이용 방식을 제안한다.

최근 코로나19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영양제를 구독하는 사람도 늘었다. 건강기능식품은 꾸준히 먹어야 효과가 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영양제를 섭취하는 걸 까먹거나, 영양제가 모자라기 전에 제때 구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처=필리 홈페이지
출처=필리 홈페이지

필리는 영양제를 정기 배송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용자가 걱정하고 있는 건강 문제, 건강상태나 생활습관 등에 답하면 필요한 영양제를 추천받을 수 있다. 본인에게 필요한 영양제를 조합해 구독 서비스를 신청하면 된다.

필리의 영양제는 국내 약학 박사들과 함께 자제 제작한 것들이다. 한 달 동안 섭취할 영양제만 보내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지나 제품을 버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용자가 잊지 않도록 정해진 시간마다 영양제를 섭취하라는 메시지도 보내준다. 신제품 영양제를 출시할 때도 고객 설문을 통해 고객들이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살핀다.

국내 구독 서비스는 술담화의 전통주, 하트노트의 향수, 닥터노아의 대나무 칫솔 등 다양한 상품을 대상으로 출시되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의 특징은 시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정기배송으로 제품 선택과 물건을 주문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제품을 일회적으로 구매할 수도 있음에도 정기 구독 서비스에 지갑을 연다.

출처=엔바토엘리먼트
출처=엔바토엘리먼트

소비자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구독경제의 매력이 ‘편리함’과 ‘큐레이션’에서 나온다고 분석한다. 인하대 이은희 소비자학과 교수는 “생활 필수품이 떨어지면 이를 채워 넣어야 하는데, 누군가 대신해준다는 게 편리한 부분”이라고 했다. 이어, “소비자 입장에선 잘 모르는 상품을 업체에서 큐레이션 해 보내주니 재미와 만족감을 모두 챙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고객이 케어를 받는다고 느끼면 구독 서비스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생활용품의 구독 경제를 개척하는 국내 기업들이 있다. 가전렌탈 기업 코웨이는 말레이시아의 무슬림을 위한 할랄(이슬람 국가에서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 식품에 적용하는 인증) 인증을 획득하고, 필터교환과 소독 등의 정기적 홈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동남아시아 진출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LA에서 한인 청년들이 시작한 ‘스낵피버’는 한국과자 구독 서비스로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배송비가 비싼 미국은 여러 제품이 한 번에 배송되는 세트 상품을 선호하는데, 이러한 트렌드를 잘 공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이즈그램은 캐나다에서 도수 안경을 구독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기업이다. 교체 시기를 놓치는 일이 많은 도수 안경을 정기적으로 배송한다. 안경은 저렴한 제품을 사더라도 정기적으로 교체하는 것이 눈 건강에 좋다. 정기 구독을 통하면 안경을 적절한 시기에 교체할 수 있다.

아이즈그램 서비스는 북미에서 안경가격이 비싸다는 점에서 착안됐다. 이 때문에 안경 가격이 기존 안경의 3분의 1 정도로 저렴하며, 시력이 나빠 고굴절 렌즈나 청광차단렌즈 등의 조건을 선택해도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 않아 구독 요금은 그대로다.

출처=아이즈그램
출처=아이즈그램

아이즈그램을 이용한 한인 고객들은 제품 품질과 고객 관리 서비스에 만족한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생산한 안경테만을 제공하며, 고객은 구독 기간 어떤 이유에서든 제품을 2회 무상교체 할 수 있다. 또한, 북미 대부분의 안경테는 백인 얼굴 구조에 따라 설계되는데, 아이즈그램의 안경 프레임은 아시아인에게 편안하게 제작돼 만족도가 높다.

국내는 현행법상 온라인에서도 안경테 판매가 가능하지만 도수 있는 렌즈는 반드시 안경사가 있는 오프라인 안경원에서만 판매해야 한다. 국내에선 온라인을 통한 도수 안경의 구독 서비스가 등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 아이즈그램 최영준 대표는 도수 안경을 온라인에서 판매할 수 있는 캐나다에서 구독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다.

최 대표는 “안경은 평생 이를 착용하는 사람들도 가격과 렌즈 차이, 속성 등의 특징을 알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가격 부담으로 늘 비슷한 안경을 구매하는 사람도 많았다. 구독 서비스를 통해 제품 가격을 낮추고, 고객이 다양한 안경을 착용할 기회를 제공한 게 고객 만족을 높일 수 있던 요소”라고 말했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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