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넥 "몰입감 높은 가상현실(VR) 훈련, 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IT동아 정연호 기자]
“앞에 있는 훈련복을 입어주세요”
“어떻게 입어야 하나요?”
“손을 가까이 대면 됩니다”
장갑이 끼워진 손을 디스플레이에서 구현된 가상현실 속 PPE 훈련복에 갖다 댔다. 손을 가까이 대자 다용도 선반 위에 놓여 있던 훈련복이 사라졌다. 오큘러스 퀘스트 헤드셋을 쓴 채 고개를 살짝 내려보니 가상현실 속 기자는 어느새 훈련복을 입은 상태였다. 잠시 옆을 보니 다른 참가자도 훈련복을 입고 있었다.
“얼른 사고현장에 가봅시다”
옆에서 들려오는 안내대로 가상현실 속 길을 따라 몸을 계속 움직였다. 잠시 걸은 뒤 앞에 보이는 문을 열었더니 연기가 자욱한 공간이 나왔다. 유독물질 염산이 탱크에서 누출된 사고 현장이다. 얼른 누출을 봉쇄하기 위해 HMD(디스플레이 장치)에 나온 지시 문구를 따랐다. 탱크 옆 선반 위에는 염산 누출 상황에 필요한 장비들이 있었다. 장비를 활용해 염산이 누출되고 있는 탱크의 특정 부분을 봉쇄하고, 바닥에 흐르고 있는 염산을 처리했다. 누출사고를 해결하고 훈련복에 묻은 유독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제독실에 들어가 가만히 서 있었더니 금방 제독이 끝났다.
메타버스 테크 기업 스코넥을 찾아가 염산 유출 사고 대응 VR(가상현실) 프로그램을 체험한 내용이다. 움직임을 추적하는 카메라가 설치된 널찍한 스튜디오에서 이동을 하면서 체험을 진행했다. VR헤드셋, 가방 콘덴서, 모션캡처 장갑을 장착하고 움직이면 VR 현실에도 본체의 움직임이 그대로 반영된다. VR을 통한 체험 프로그램은 이외에도 시나리오가 다양하며, 여러 공공기관에서 실제로 훈련에 활용 중이라고 한다.
훈련은 간단했다. 훈련을 할 때 모든 행동에 앞서서 지시사항이 주어졌다. 체험이 끝난 후 “훈련이 생각보다 쉬운 편인 거 같다”고 말하자 들려오는 답은 “가장 낮은 난도로 진행했기 때문이다”였다. 화학물질 안전사고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난이도를 쉽게 조절했다는 것이다.
훈련에 참여해봤던 다른 참가자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화학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 VR 훈련을 할 필요가 있을까? 스코넥 육종현 본부장은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지식을 몸이 체화하도록 하기 위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문제가 터지면 ‘어버버’하면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집에서 불이 났을 때 소화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몸이 기억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용방법을 머리로만 알고 있다면 당황해 몸이 움직이지 않거나, 소화기 안전핀을 빼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를 가능성이 높다. 반복되는 시뮬레이션을 통하면 필요한 행동과 도구 사용 순서를 머리에 이미지로 각인시키며, 몸이 대응방법을 기억하게 만들 수 있다.
VR훈련을 끝내고 회의실에서 만난 육종현 본부장은 “훈련을 위한 훈련 준비는 상당히 비효율적이다”라면서 VR훈련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업계에선 소방훈련을 할 때 건물 하나 태우려면 5천만 원 정도는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건물을 소각하면 환경적으로도 좋지 않고 혹시 모를 안전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염산이 누출되는 화학공장을 실험실에서 구현하는 것도 위험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까지는 간소화된 세트장에서 진행하거나 영상이나 책자를 통해서 정보를 일반적으로 전달하는 형태로 훈련이 진행됐다.
스코넥의 화학물질 안전사고 VR훈련은 충북 오송 화학물질안전원 훈련소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와서 훈련을 받기도 하지만, 초등학생들이 와서 체험을 하는 콘텐츠도 있다.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하거나 폐쇄된 공간에서 유독가스가 유출되는 재난 상황에서 아이들이 대응 방법을 배우는 교육 콘텐츠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회사에서 직원들을 위한 훈련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이외에도, 소방과 경찰쪽에서 VR훈련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소방 콘텐츠는 1인용 기계를 통해 화재를 진압하는 훈련이다. 경찰 훈련은 실제 현장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범죄에 대응하는 절차를 담았다. 현재 군사 훈련 콘텐츠도 개발 중이다. 전투 내용보단 가택에 들어가 인질을 구출하는 등 특수부대 훈련 위주다.
육종현 본부장은 “스코넥의 경쟁력은 다수의 인원이 참가할 수 있는 대규모 워킹 XR(확장현실) 콘텐츠라는 점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자를 포함해 4명의 사람이 동시에 훈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육 본부장은 “지금 VR장비들은 대규모 공간을 위해서 만들어진 장비가 아니다. 대부분 별개의 브랜드 제품을 함께 쓰는 형태인데, 다른 브랜드의 제품간 호환성을 강화했다”고 했다. 고객사 중엔 자신들이 선택한 제품들을 함께 사용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고객의 요구대로 훈련 시스템을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
모션 캡처 카메라를 통해서 들어오는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육종현 본부장은 “이러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필터링하고 콘텐츠에 반영하는 게 스코넥의 강점”이라고 했다.
“몰입감을 높여주는 VR, 콘텐츠의 재미를 강화한다”
스코넥은 세계 최초로 VR 1인칭 슈팅게임인 ‘모탈블리츠’를 출시한 기업이다. VR콘텐츠를 출시하게 된 배경엔 콘솔 게임을 개발하던 이력이 있다. 스코넥은 콘솔과 아케이드 콘텐츠를 주로 개발했었다. 아케이드 게임은 오락실에서 동전을 넣고 진행하는 게임을 말한다. 총 모양의 컨트롤러로 화면 속 적을 물리치는 건슈팅 게임을 생각하면 된다. 스코넥이 다뤄왔던 콘텐츠는 ‘이용자가 몸을 생동적으로 움직이며 게임을 즐긴다’는 면에서 VR과 닮았다.
육종현 본부장은 “오큘러스와 협업을 하면서 프로토타입 장비를 제공받고 게임 콘텐츠를 개발했다. 그 당시엔 이용자에게 더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로 VR 콘텐츠도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큘러스 퀘스트2가 무선으로 나오면서 VR게임을 더 만족하면서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이용자들은 가상환경에서 더 몰입감을 느끼며 게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육 본부장은 앞으로의 목표가 훈련에 게임적 요소를 넣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와 VR 크로스플랫폼의 강화라고 말했다. 현재 공공기관에서 훈련 콘텐츠를 요청할 때 주로 요구하는 사안이 “훈련을 재밌게 만들어달라”라고 한다. 보상을 활용한 게임적인 요소를 훈련에 접목해 흥미로운 콘텐츠를 제작해달라는 것이다. 스코넥은 훈련 콘텐츠에 몰입할 수 있도록 콘텐츠에 게임적인 요소를 더 접목할 예정이다.
그는 “VR은 게임 기기마다 인터페이스가 다른 문제가 있다. 기존엔 다른 플랫폼 간 호환이 가능하게끔 시스템을 구축하는 투자가 부족했다. VR 기기와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