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전환 나선 ESG 경영 관리..."국내 ESG도 발전하려면 ESG지표 표준화 돼야"
[IT동아 정연호 기자] 국내에서도 기업들이 효율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위해 관련 현황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다만, ESG 전문가들은 상당수의 기업이 ESG 데이터를 축적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디지털기술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ESG 경영을 개선하는 해외 사례가 국내에도 등장하려면 ESG 기준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SG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의 ESG 경영 수준은 해외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분석한다. LG 경영연구원 진의재 연구원은 “ESG 경영을 바라는 국내 기업도 있지만, ESG 시스템 구축엔 많은 비용이 들어가다 보니 효율성 측면에서 큰 필요성을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다”면서 “해외엔 ESG 경영을 효율화하는 디지털기술과 솔루션을 도입하는 사례가 많다.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ESG 데이터를 모으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고 전했다.
“해외에선 디지털기술로 ESG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해외에선 ESG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데이터 기반 ESG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디지털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글로벌 화학기업 바스프(BASF)는 ESG 경영 현황을 파악하고, 목표 대비 성과를 관리하기 위해 대시보드(dashboard) 형태의 디지털 ESG 시스템을 도입했다. 전 세계 공장과 공급망 등의 가치 사슬 전반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데이터를 수집하고, 데이터를 표준화해 통합 관리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탄소 배출량 감소’와 같은 ESG 목표의 성과를 정확하게 측정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효과적인 정책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바스프는 상품의 ‘제품 탄소발자국(Product Carbon Footprint, PCF)’ 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개별 제품별로 탄소발자국을 계산하고 있다. 제품 탄소발자국 정보는 제품의 원료 구매 이후부터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합한 것이다. 공급사와 원자재 생산에서 유발되는 배출량까지 계산에 포함한다.
LG경영연구원의 ‘ESG 가시성, Digital ESG로 강화하다’에서 진의재 연구원은 “디지털 ESG는 고객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바스프는 넷제로(Net Zero) 제품, 저탄소 제품, 일반 제품 등 여러 옵션을 제공해, 고객이 ESG 정보를 기반으로 자신의 사회적 신념이나 가치에 부합하는 제품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SG를 마케팅 용도로 쓰는 기업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자, ESG 공시 자료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업도 있다. 영국 생활용품업체 유니레버는 인공위성 GPS와 영상 데이터 분석 기술로 인도네시아 현지 공급망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유니레버에 팜유를 공급하는 업체가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그곳에서 팜유 재료인 기름야자를 재배한다는 환경단체의 지적 때문이다. 유니레버는 디지털기술로 인도네시아 팜유 생산지의 불법적 산림 파괴를 확인하고, 공급망의 물류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스타벅스도 블록체인을 활용해 커피의 생산 정보와 유통 이력을 모니터링하는 "Bean to Cup" 프로젝트를 착수했다. 아동 노동과 강제 노동 등 커피 농장에서 벌어지는 인권 문제가 논란이 되자, 스마트폰으로 바코드를 스캔하면 원두 생산, 유통 이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스타벅스가 농장주에게 어떤 지원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제공된다.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을 활용해 원두 생산 및 유통과정을 그대로 보여줘 ESG 가치를 실현했다.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디지털기술로 감사를 효율화한 디지털 감사를 활용할 수도 있다. 감사는 기업의 재무제표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조사하는 작업으로, 기업의 투명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다. 디지털 감사를 통해선 재무정보의 허위정보나 횡령 등의 리스크를 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감사인은 기존엔 모든 거래 기록을 확인하지 못해, 소량의 자료를 표본으로 추출해 감사를 실시했다. 컴퓨터는 회계장부에 기록된 모든 데이터를 검토해, 매출이 과다 책정됐거나 권한이 없는 직원이 데이터를 수정한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회계 프로그램이 회계 처리에 필요한 데이터를 자동으로 수집하고, 분개, 전표입력할 수도 있다.
전자태그(RFID)를 통해서 재고자산을 실시간 데이터로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고객의 부정행위가 없다면, 실사를 수작업으로 하는 것보다 원격으로 하는 것이 편하고 수량계산을 정확하게 할 수 있다. 현장에선 드론으로 창고에 있는 상품의 재고 조사를 비대면으로 하기도 한다.
국내 ESG 현황, 중요성은 인식하지만 경영 수준은 못 따라와…
국내 기업들은 ESG 경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경영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생산성본부와 국내기업 300개를 대상으로 ‘ESG 확산 및 정착을 위한 기업 설문조사’를 한 결과, ESG가 ‘매우 중요하다’고 답한 기업은 27.7% ‘다소 중요하다’고 답한 기업은 42.3%였다. 10곳 중 7곳은 ESG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기업들의 ESG 경영 수준은 5점 척도 기준으로 2.9점(보통 3점)으로 조사됐다.
조사기업의 15.7%만이 ESG 위원회가 있다고 답했고, ESG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 있다는 응답은 21.0%에 불과했다. ESG 업무를 총괄하는 별도의 임원을 둔 기업은 12.7%이었다. ESG 전담조직과 전담인력을 갖추고 있는 기업은 열 곳 중 두 곳에 불과한 것이다.
ESG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은 ESG 경영의 정확한 개념을 모르고, 규제 준수 의무나 비용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적으로 ESG는 기업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고 있다. ESG 경영의 성과는 브랜드 가치를 제고해 매출에 영향을 주고, 평판 위험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국제적으로 탄소 배출, 노동조건 등과 관련된 ESG 규제도 강화되는 추세다. 투자의사 결정에 ESG를 고려하는 기관투자자도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ESG경영을 효율화하려면 평가 기준이 통일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많은 기관에서 ESG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에,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진의재 연구원은 “현재 여러 기관에서 ESG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데이터를 통한 ESG 경영을 개선하려고 해도, 기준이 많으면 관련 데이터가 많아지는데 이걸 다 처리하는 게 비용이다. 표준화 작업이 선행돼야 국내에서도 ESG 경영이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