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IT(잇)다] 크레이지피넛 “건강과 맛 주는 국산 케이올 땅콩 전도사”
[KOAT x IT동아] 한국농업기술진흥원과 IT동아는 우리나라 농업의 발전과 디지털 전환을 이끌 유망한 스타트업을 소개합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품, 그리고 독창적인 기술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 전국 각지의 농업 스타트업을 만나보세요.
[IT동아 차주경 기자] 땅콩은 그저 ‘심심풀이’용이 아니다. 고소한 맛 속에는 불포화지방산과 오메가 3, 아미노산과 각종 비타민 등 우리 몸에 이로운 성분이 들었다. 여느 과일이나 열매가 그렇듯, 땅콩은 갈색 속껍질에도 풍부한 영양소를 품었다. 그래서 땅콩은 속껍질까지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런 땅콩 가운데 ‘케이올 땅콩’이라는 품종이 있다. 농촌진흥청이 수 년간 연구해 만든 종자 개발 품종으로, 불포화지방산인 ‘올레산’의 함량이 다른 땅콩보다 두 배쯤 많다고 한다. 불포화지방산은 피 속의 콜레스테롤을 줄이고 노화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희순 크레이지피넛 대표는 수 년 전부터 케이올 땅콩과 가공 식품을 알려온 땅콩 전도사다. 부산 기장에 자리 잡은 크레이지피넛 사무실을 방문해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백희순 대표는 땅콩과 약 30여 년 전부터 인연을 맺었다.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다 땅콩 오일로 만든 제품의 효능이 뛰어난 것을 확인하고, 좋은 땅콩을 찾으려 세계를 누볐다. 수입 땅콩으로 오일이나 화장품을 만들면 품질이 떨어지고 심지어 피부 문제까지 일으킨다고 한다.
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백희순 대표는 한 때 ‘땅콩 섬’으로 불릴 만큼 유명했던 전남 신안을 찾았고, 이 곳에서 품질 좋은 땅콩을 발견했다. 전남 신안도 땅콩 명소라는 인식을 되찾고 싶어했다. 의기투합해 전남 신안에 땅콩 재배지와 공장을 짓고 상품화에 박차를 가했다. 크레이지피넛의 주요 상품인 신안 볶은 땅콩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어 백희순 대표는 농촌진흥청의 소개로 케이올 땅콩을 만난다. 케이올 땅콩은 천혜의 오일 재료였다. 먼저 올레산 함량이 83%로, 올레산이 많다고 알려진 올리브의 함량을 넘어선다. 올리브와 올리브 오일은 전량 수입하지만, 케이올 땅콩과 땅콩 오일은 100% 국산화 가능하다.
아침에 올리브 오일 한 수저를 마시는 것은 건강 요법으로 잘 알려졌다. 땅콩 오일은 고소한 맛이 강해 다소 맵고 느끼한 올리브 오일보다 먹기 좋고 효능도 우월하다고 한다. 이에 크레이지피넛은 케이올 땅콩을 땅콩 오일 원재료로 낙점했다.
문제에 부딪혔다. 우리나라에는 땅콩 오일을 만들 기술도, 설비도 부족했다. 참기름, 들기름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야 하는 탓에 연구 개발을 거쳐 땅콩 오일 전용 착유 기술을 궁리했다. 특허를 출원하고 땅콩 오일 전용 착유 기계를 만들었지만, 동작해 보니 고난의 연속이었다. 내부에 녹이 슬거나, 입자가 거칠게 갈려 오일의 상태가 매번 달랐다.
백희순 대표는 땅콩 오일 전용 착유 기계를 만들고 분해해서 개량하는 과정을 수 차례 반복했다. 그 결과 땅콩 정제와 착유 등 가공 기술 특허는 물론 착유 비법, 땅콩 오일을 가장 잘 만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크레이지피넛이 만드는 땅콩 오일의 종류는 두 가지다. 샐러드를 포함한 요리에 쓰며 올리브 오일을 대신할 드레싱 오일과 비품 땅콩으로 만든 튀김용 오일이다. 나아가 땅콩 오일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 고단백에 고소한 맛을 내는 땅콩박 활용 방안을 연구 중이다.
백희순 대표는 어떻게 해야 건강에 좋고 맛도 좋은 케이올 땅콩을 잘 알릴까를 항상 고민한다. 하지만, 지금은 케이올 땅콩은 커녕, 땅콩 오일이 있는 것조차 모르는 소비자가 많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오프라인 체험 행사와 영업이 쉽지 않아 케이올 땅콩의 효능과 맛을 알릴 방법이 마땅찮다.
땅콩을 재배하려는 농가가 많지 않은 것도 고민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땅콩 가운데 90%는 수입산이다. 국산 땅콩의 비율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가격을 제대로 받지 못해 농가에서 외면 받았다. 땅콩을 재배하려는 농가가 적으니 자연스레 땅콩의 품종도 한두 개밖에 없다.
게다가, 땅콩은 다른 농작물보다 재배하기 어렵다. 손이 많이 가는 데 비해 기계화는 잘 되지 않았다. 농가가 땅콩 재배를 꺼리는 또 하나의 원인이다.
크레이지피넛의 고민 해결을 도우려 지자체와 농업 기관이 나섰다. 전남 신안은 땅콩 재배 농가를 지원한다. 전남 신안 농가가 주로 재배하는 대파는 특성상, 풍작과 흉작 시 가격의 기복이 아주 심하다. 그래서 가격 기복이 적은 땅콩을 심는 농가를 지원하면 대파 흉작 시 농민들의 손실을 보전 가능하다. 이렇게 재배한 땅콩은 크레이지피넛이 좋은 가격에 사서 상품화하니 일석이조다.
한국농업기술진흥원도 힘을 보탰다. 크레이지피넛의 기술 이전과 사업화 자금을 지원했다. 이어 다른 기업, 전문가와의 네트워크를 마련하고 기업의 기초를 튼튼히 다질 지원 정책들을 제공했다. 백희순 대표는 덕분에 땅콩 사업을 보는 시각을 넓히고,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을 사업을 펼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문제를 조금씩 해결한 크레이지피넛은 지역과의 상생책으로 보답했다. 농가가 재배한 땅콩을 좋은 가격에, 유통을 거치지 않고 직접 사 와서 가공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러면 농가는 수익을, 크레이지피넛은 품질 좋은 땅콩을 안정적으로 공급 받는다.
나아가 이전에는 없었던 특화 땅콩 재배 단지를 만들려 한다. 특정 성분이 높은 특화 땅콩으로 상품을 만들면 고유의 효능을 배가할 수 있다. 물론, 농가로부터 특화 땅콩을 사 오는 대가도 더 많이 마련한다. 이를 위해 농촌진흥청 관계자들과 농가를 방문해 땅콩 재배 노하우도 수시로 전달한다.
크레이지피넛의 모든 땅콩 상품에는 그 땅콩을 기른 농가의 이름이 새겨진다. 상표뿐 아니라 땅콩을 재배한 지역과 농가를 알리고, 이들에게 농사를 짓는 보람을 알려주고 싶다는 백희순 대표의 아이디어를 반영한 것이다.
부산 기장에 있는 크레이지피넛의 사무실 겸 공장은 지역의 명소로 발전시킨다. 이 곳에 있는 땅콩 체험 학습장에서는 매주 일요일, 땅콩을 활용한 놀이 행사가 열린다. 두 시간 반 동안 온 가족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모래와 물놀이를 즐기도록 돕는다. 주목할 것은 마지막 행사 ‘땅콩 아트’다.
땅콩의 겉 껍질을 잘 가공하면 예쁜 공예품과 생활 소품을 만들 수 있다. 시계며 인형, 액자와 만화 캐릭터, 각종 동물에 이르기까지. 기발한 상상력을 토대로 만들어진 땅콩 공예품들을 보면 귀여운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크레이지피넛 인스타그램에서 신청 가능한 이 놀이 행사는 정작 아이들보다 부모들이 더 재미있어 한다는 후문이다.
우리나라 소비자는 볶은 땅콩을 주로 먹었다. 크레이지피넛은 땅콩을 더 맛있게, 재미있게 먹도록 다양한 상품은 고안해 공급한다. 먼저 땅콩 버터 라떼를 선보인다. 부드러운 커피의 맛에 땅콩의 고소함을 씌웠다. 이 제품을 전국 카페에 공급할 계획도 가졌다. 디저트로 즐길 땅콩 쿠키를 포함해 과자와 빵도 연구 개발한다.
전남 신안에는 땅콩 전문 카페도 세운다. 이 곳에서 땅콩 버터 라떼와 땅콩 쿠키를 먼저 맛볼 수 있다. 크레이지피넛은 이 곳에서 소비자의 반응을 살핀 후, 땅콩 음료와 식품군을 전국의 카페에 공급하면서 체인점 사업도 벌일 예정이다.
삶아 먹으면 더 맛있는 땅콩도 곧 나온다. 달고 고소한 맛을 살린 빙수용 땅콩, 단팥죽의 팥을 대체한 땅콩 상품도 준비 중이다. 백희순 대표는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맛있는, 건강에 좋은, 참신한 땅콩 상품이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한다.
해외 수출도 고려한다. 선봉에 시즈닝 땅콩이 선다. 다양한 맛을 입힌 시즈닝 아몬드는 한류의 열풍을 일으킨 주역이다. 크레이지피넛은 알이 큰, 아몬드보다 식감이 부드러운 땅콩에 우리나라 특산물인 김, 들깨 맛을 입힌 시즈닝 땅콩을 고안했다. 올 가을 이 제품이 나올 예정이다.
백희순 대표는 “정말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우리는 흔히 미쳤다고 표현한다. 크레이지피넛은 땅콩에 미친 회사다. 미쳤다는 표현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맛있는, 크레이지피넛만이 만들고 알리는 땅콩의 맛의 세계를 전하겠다.”고 밝혔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