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협상? 계약 파기? 혼돈에 빠진 머스크와 트위터
[IT동아 권택경 기자]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 계약 파기를 선언했다. 지난 4월 25일 440억(약 57조 4420억 원) 달러로 트위터를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지 채 석 달이 지나지 않아 계약을 파기한 것이다. 머스크는 트위터가 스팸 및 가짜 계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등 인수 계약의 여러 조항을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트위터 측은 머스크에게 계약 이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머스크는 지난 8일 법률 대리인을 통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트위터 측에 트위터 인수 계약을 파기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이에 브렛 테일러 트위터 이사회 의장은 지난 9일 “트위터 이사회는 머스크와 합의한 가격과 조건으로 거래를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인수 계약 이행을 위한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머스크의 이번 인수 계약 파기는 어느 정도 예견된 사태다. 머스크는 지난 5월 13일 “스팸 및 가짜 계정 비율이 5% 미만이라는 계산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내용을 확인할 때까지 트위터 인수 건을 일시 보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트위터 측이 발표한 스팸 혹은 가짜 계정 비율을 믿을 수 없으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때까지 인수를 미루겠다는 것이다.
이용자 숫자가 자산인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스팸 혹은 가짜 계정이 많다는 건 그만큼 가치에 거품이 끼어있다는 뜻이다. 인수자인 머스크 입장에서 이러한 거품을 걷어낸 실제 크기를 따지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머스크는 트위터의 스팸 혹은 가짜 계정 비율은 20% 이상일 것으로 자체 추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5% 미만이라는 트위터의 발표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머스크도 자신의 주장에 뚜렷한 근거를 대고 있지는 않다.
트위터가 머스크의 의혹 제기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인수 보류 선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파라그 아그라왈 트위터 CEO는 트위터가 어떻게 스팸 및 가짜 계정에 대응하고 있는지, 이들의 비율을 어떻게 산정하는지 상세히 설명하는 내용을 트위터에 게시했다. 그러나 머스크는 여기에 ‘대변’ 모양 이모티콘을 답글로 달았다. 자신의 의혹 제기에 해명한 인수 대상 기업 CEO를 조롱하고 나선 셈이다. 트위터 측은 머스크가 거듭 정보 제공을 요구하자 지난 6월에는 모든 트윗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도 했다.
머스크가 이처럼 스팸 혹은 가짜 계정 문제를 놓고 트위터를 달달 볶은 건 인수가 재협상이나 계약 파기 명분을 쌓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를 밝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증시가 침체하며 인수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트위터 뿐만 아니라 테슬라 주가도 내려 앉으면서 재산 대부분이 주식인 머스크의 인수 자금 조달 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졌었다.
머스크는 스팸 혹은 가짜 계정 관련 문제 외에도 트위터가 인수 합의 후 임원을 해고한 것이 계약 해지 사유인 ‘중대한 부정적 영향(Material Adverse Effect, MAE)’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머스크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계약 해지 책임이 트위터에 있기 때문에 10억 달러(약 1조 3060억 원)에 달하는 위약금도 물지 않을 수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법률 전문가들은 법정 싸움에서는 트위터가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테슬라 법인 소재지인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서 MAE를 인정한 사례가 극히 드문 데다 입증도 어렵기 때문이다. 앤 립턴 툴레인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머스크는 법원에서 스팸 계정 숫자가 거짓일 뿐 아니라, 그 거짓이 너무 중대해 앞으로 트위터 수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트위터와 머스크의 사례처럼 규범적인 거래 계약에서 델라웨어 법원이 MAE를 인정한 사례는 지난 2018년 독일 의료 기업 프레지니우스 카비가 미국 제약사 에이콘 인수를 철회한 사례가 유일하다.
법정 싸움에서 트위터가 유리하다고 해서 상황이 트위터에게 좋게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정 싸움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불확실성이란 구렁텅이로 스스로를 물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트위터로서는 합의로 적당한 수준에서 인수가를 재협상하거나 위약금을 조정하는 게 최선일 수 있다. 성장성에 물음표가 붙어있는 트위터에 더 나은 인수자가 등장할 가능성도 작다.
그래서 머스크의 이번 계약 파기 통보도 결국 가격 재협상을 위한 포석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실제 인수 계약 파기 후 장기 소송전 대신 결국 가격 재협상에 나선 사례는 종종 있다. 프랑스 명품 업체 LVMH가 고급 보석 업체인 티파니앤코를 인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두 업체는 당초 인수 계약 파기 후 책임 소재를 놓고 법정 싸움을 벌이다 결국 재협상으로 인수가를 낮춰 합병에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재협상도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인수 계약 합의 당시 머스크는 트위터를 1주당 54.20(약 7만 758원)달러에 사들이기로 합의했는데 지금은 36.81달러(약 4만 8055원, 7월 8일 종가 기준)에 그친다. 머스크가 인수가를 대폭 깎으려 들 가능성이 있지만, 트위터가 이를 선뜻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자칫 잘못하면 주주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앤 립턴 교수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머스크가 그저 주당 1~2달러 낮추고 싶어할지 모르겠다”면서 “내 생각엔 머스크는 인수를 안 하거나 상당히 극적인 가격을 재협상하길 원하는 것 같다. 현재로서는 양측 모두 합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말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