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하나, 사용하는 RPA 제품은 여러 개?..."RPA 도입부터 효율적 운영 고민해야"

정연호 hoho@itdonga.com

[IT동아 정연호 기자] 국내 기업들이 RPA(로봇프로세스자동화) 도입 전부터 자동화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많은 기업에서 부서 단위로 RPA를 구축하면서 부서 간 다른 RPA 제품을 사용하는 비효율적인 운영 구조가 생겼기 때문이다. RPA를 통일해서 사용하지 않는 기업들은 RPA 운영 비용의 낭비, 데이터 사일로(Silo) 문제 등을 겪고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RPA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의 많은 기업이 3~4개의 RPA 제품을 동시에 쓰는 비효율적 구조를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RPA 사업을 담당하는 전담팀 없이 조직별로 예산을 얻고 개별적으로 RPA 벤더를 선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전산팀이 있다면 ‘하드웨어 서버를 추가로 구매하겠다’ 등 조직의 다양한 요구를 한 곳에서 전담할 수 있지만, 이를 담당할 전담팀이 없는 기업도 많다. 전담팀이 있더라도 RPA를 구축하려면 외부 전문가와 현업 부서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RPA 사업은 각각의 부서가 맡게 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기업에서 여러 RPA 제품을 쓰면 개발 인력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자동화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관리하는 작업이 필요한 RPA는 벤더별로 스크립트 작성 및 관리 방식이 다르다. PC 운영체제나 자동화가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업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스크립트 변경 작업이 필요한데, 여러 벤더의 제품을 쓸 경우엔 벤더별로 개발 지식을 갖춘 인력을 보유해야 한다. 한 벤더의 제품과 관련된 역량만 쌓는 방식보다 개발 인력을 비효율적으로 쓰게 되는 구조다. A부서와 B부서가 다른 RPA를 쓰면 부서 이동이 있을 때 개발자가 기존에 배웠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스크립트를 익혀야 한다는 문제도 발생한다. 물론, RPA 개발 단계에서 외부 전문가에게 일정 부분을 맡기기도 하지만, 기업 내부에도 RPA 역량이 있는 인력이 있어야 지속적으로 RPA를 변경하고 관리할 수 있다.

기업의 CEO가 탑다운 방식(최고결정자가 먼저 결정하고, 실무자가 나머지 부분을 조율)으로 RPA를 도입한다면 RPA 사업을 총괄할 COE 조직을 추진할 동력이 마련될 수도 있다. COE(전문가 조직)는 RPA 등의 새로운 기술을 조직 환경에 맞게 이식하고, 확산시키는 걸 목표와 비전으로 하는 전문가 조직을 말한다.

여러 방면의 전문가가 모인 COE 조직, 출처=셔터스톡
여러 방면의 전문가가 모인 COE 조직, 출처=셔터스톡

블루프리즘의 김병섭 전무는 “자동화 프로세스를 발굴하고 기업의 비즈니스 구조를 혁신하는 것은 전문가일지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디지털기술, 보안, 영업, 마케팅, 데이터베이스등 모든 분야의 집단 지성이 함께 모여야 한다”면서 RPA 도입이 외부 전문가 한두 명이 끝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외부 전문가뿐 아니라 기업 내부에서도 여러 방면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모여 RPA COE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 김 전무가 말한 COE 조직의 최소 인원은 3명이다. 이 수치도 도입 단계 전에 해당되는 것이지 RPA 도입 프로젝트가 진척되면서 COE 구성원 수도 크게 늘어나게 된다.

김병섭 전무는 “RPA를 도입할 때 파일럿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면서 기업 내부에서도 전문가를 통해 많은 걸 학습해야 한다. 직접 개발도 해보고 운영도 하면서 핵심 역량을 키워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RPA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업들이 RPA를 도입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비용’과 ‘개발의 난도’다. 대부분의 기업이 견적서를 받았을 때 가장 저렴하고, 개발이 쉬운 툴을 갖춘 RPA 제품을 고른다. 도입 단계에서 RPA가 전사적 확장이 가능한지, 관리 및 수정은 용이한지 등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 COE 조직처럼 ‘RPA를 통한 프로세스 혁신’이란 비전을 갖춘 팀이 없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RPA를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유아이패스의 이봉선 전무는 “여러 RPA를 쓰는 기업이 많은 이유는 초기에 A제품을 도입하고 여러 제약이 생겨서 B 제품을 추가로 도입하게 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라면서 “이런 경우엔 A제품에서 운영하던 것들을 B제품으로 마이그레이션(한 운영환경에서 더 나은 운영환경으로 옮기는 과정)해야 하는데, 이를 옮기려면 프로젝트 규모가 너무 커지니까 A와 B를 병행해서 쓰게 되는 것"이라며 단기적 관점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 전무는 “RPA를 도입할 때부터 회사의 전체 표준 제품을 무엇으로 할지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어, “RPA 벤더마다 RPA를 관리하는 툴이 다르다. 로봇 상태가 어떻고, 업무를 잘 진행하고 있는지 등을 모니터링하는 대시보드도 제공되고 있지만 벤더별로 시스템이 다르다. 다양한 제품을 통합해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에선 다양한 RPA 제품을 통합 관리하기 위해 모니터링 대시보드를 사용하지만, 이는 기업이 개별적으로 SI업체(시스템 개발, 유지보수, 운영을 대신하는 하청과 파견업체)를 통해 구축하는 것이다.

데이터를 모니터링하는 대시보드, 출처=셔터스톡
데이터를 모니터링하는 대시보드, 출처=셔터스톡

기업에서 쓰는 RPA 모니터링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데이터가 통합되지 않고 부서나 사업 부문별로 고립돼, 다른 부서에선 접근하지 못하는 ‘데이터 사일로’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자동화는 데이터를 통해 전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자동화가 가능한 새로운 작업을 발견하는 일이 필요하다. 데이터베이스가 통합되지 않는다면 전체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는 데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없게 된다.

COE 조직 역시 기업 CEO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돼야 만들어질 수 있으며, 이들의 능력은 CEO가 디지털전환을 위해서 이 조직에 얼마나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지에 좌우된다. 인포플라의 최인묵 대표는 “규모가 큰 기업도 CEO가 나서서 COE 조직을 만드는 경우는 많지 않아 사업부별로 자동화가 필요할 때마다 예산을 신청하고 RPA를 도입하는 게 일반적이다. COE를 구성해서 기업 전체의 구조와 니즈를 파악하는 것보단 사업부별로 하는 게 훨씬 속도감 있는 진행이 가능하니 이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나의 RPA 제품만 쓰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지인지를 묻자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였다. 실제로 여러 기능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RPA 툴도 많지 않고, 운영의 불편함이 있을지라도 각 제품마다 주력하고 있고 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여러 제품을 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RPA는 표준화된 스펙을 갖춘 소프트웨어라기보단 기업마다 업무 특성에 맞춰서 개발하는 프로젝트성이 강하다. 범용적인 기능을 갖추려면 사실상 RPA 벤더가 모든 업무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므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가능하면 전체적으로 RPA 제품을 단일화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인묵 대표는 “기업에서 단일 RPA 제품을 사용한다면 상당한 장점을 얻을 수 있다. 사업부에서 비IT 담당자가 한 RPA 제품의 스크립트 개발능력을 획득하기까지는 3~4개월의 교육 기간이 필요하다. 여러 RPA제품 사용으로 인해 이러한 교육기간이 반복되는 것은 기업에 부정적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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