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플랫폼이 야기하는 갈등 합리적 규제로 풀어야...이 시대에 말이나 마차 탈 수는 없어"
[IT동아 김동진 기자] “법률서비스와 디지털 플랫폼의 만남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입니다. 이 시대에 말이나 마차를 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국회 4차산업혁명포럼이 ‘디지털플랫폼 산업의 혁신과 성장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박유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플랫폼정책연구센터장이 제기한 의문이다. 박 센터장은 “규제로 플랫폼서비스의 시장 진입을 무조건 차단하는 것보다는 합리적인 방안이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하며 위와 같이 말했다.
1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개최된 토론회는 디지털플랫폼 산업 규모와 관련 고용 현황 등을 살펴보며, 플랫폼이 야기한 갈등과 해결 방안을 모색하려는 목적으로 열렸다. 토론회에서 대표적 플랫폼 갈등으로 리걸테크 서비스 '로톡'과 대한변호사협회와의 충돌을 다뤘다.
토론회 좌장은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가 맡았고, 박민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와 문경호 기획재정부 서비스경제과장, 박유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플랫폼정책연구센터장, 구태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리걸테크산업협회장이 토론회에 참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디지털전환 가속화…디지털플랫폼 기업 성장으로 이어져
박민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급격한 디지털전환이 이뤄진 결과, 제품과 서비스 공급자들이 고객을 만나는 수단으로 디지털플랫폼을 선택하고 있다”며 “일례로 국내 온라인쇼핑 연간거래액이 2015년 56조원 규모에서 2021년 193조원으로 2.4배 급증했으며, 2021년 O2O(Online to offline) 기업이 플랫폼 비즈니스를 통해 발생한 매출 규모는 5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생산과 유통의 디지털화는 생산성 향상과 거래비용 감소로 효율성을 높이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며 “디지털플랫폼을 통한 정보 수집, 공유가 수월해짐에 따라 정보의 비대칭성이 완화되고 관련 산업의 성장과 고용을 창출한다. 실제로 국내 데이터 산업 규모는 지난 10년 사이 2.7배 성장했고, 데이터 직무 인력수는 77% 증가했다”고 전했다.
박민수 교수는 “산업과 사회체제의 근본적 변화는 불가피한 갈등을 수반한다”며 “예컨대 법률서비스 중개플랫폼은 다른 디지털플랫폼과 같이 오프라인으로 이뤄지던 거래를 온라인으로 디지털화해 정보검색이나 이용에 따른 비용을 감소시키지만, 기득권의 강한 반발에 직면해 있어 갈등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법률서비스 시장…합리적 규제가 필요한 시점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과 이를 이용하는 변호사들을 처벌하려는 대한변호사협회 간 충돌은 디지털플랫폼 활용을 두고 벌어지는 대표적인 갈등이다. 로앤컴퍼니가 2014년 출시한 로톡 서비스는 일정 광고료를 변호사들에게 받은 후 법률 자문을 구하는 소비자가 볼 수 있도록 변호사 목록과 광고를 실어주는 변호사 광고 플랫폼이다. 대한변호사협회를 비롯한 변호사 단체는 해당 서비스가 광고료를 지불한 변호사를 소개, 알선하고 변호사가 아님에도 법률 사무를 취급했기 때문에 변호사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사안에 대해 검찰은 지난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지만, 헌법재판소가 최근 ‘변호사가 아닌 자가 상호를 드러내며 사건을 소개, 알선, 유인하기 위해 변호사를 연결하거나 광고, 홍보, 소개하는 행위를 금지’한 제5조 2항 2호에 대해서 전체 합헌 판결을 내리며 논란은 또다시 이어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로톡이 변호사가 아닌 자인데 알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로톡 측은 알선을 한 적이 없고 단순히 변호사들의 광고를 실어주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고 맞선다.
이에 대해 박유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플랫폼정책연구센터장은 “이 시대에 마차나 말을 탈 수 없는 것처럼 서비스의 플랫폼화는 시대적 흐름이기 때문에 이에 역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플랫폼 도입으로 인해 법률 서비스 개방화, 시장의 투명성, 정보 비대칭 완화라는 긍정적 효과에 주목하는 동시에 악의적 후기에 대한 공급자 보호, 혹은 후기의 정확성 제고를 위한 정부와 기업, 협회, 단체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박 센터장은 “협회와 플랫폼 기업 간 갈등이 중요한 이슈처럼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와 법률 플랫폼을 이용하는 변호사라고 생각하는데 최근 갈등을 보면 이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플랫폼이 편한 도구라는 것을 알면 쓸 텐데 몰라서 쓰지 않는 경우도 사실 많다"며 "코로나로 인해 고령층 온라인 쇼핑률이 높아진 것처럼, 전문직의 디지털 플랫폼 리터러시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 제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리걸테크산업협의회 “왜 20년 전 법률서비스를 그대로 이용해야 하는가?”
구태언 한국스타트업포럼 리걸테크산업협의회장은 “20년 전 변호사가 고객을 만나는 방식이나 오늘날 변호사가 고객을 만나는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예전에는 직접 찾아와서 만났다면 이제는 전화나 이메일 상담이 가능하다는 정도가 차이인데, 특정 사건에 적합한 변호사인지 알아보려 해도 확인할 길이 없는 정보 비대칭성이 굉장히 심각하다”고 말했다.
구 회장은 이어 “소비자 선택권 확보는 바로 이런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데서 시작된다”며 “글로벌 빅테크가 국내 법률서비스 시장을 휩쓸고 나면 규제가 풀려도 토종 기업이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플랫폼 두고 부처 간 상이한 유권해석이 혼란 키워
문경호 기획재정부 서비스경제과장은 플랫폼 서비스를 두고 부처별 상이한 유권해석이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과장은 “로톡 사태의 경우 법무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광고형 플랫폼이라고 규정했지만, 금융위는 금융 상품 추천 플랫폼을 두고 단순한 광고 서비스라고 볼 수 없다는 해석을 냈다”며 “이처럼 전문서비스 영역에서 등장하는 플랫폼을 두고 법무부와 금융위가 상이한 입장을 내놓는다는 것은 디지털플랫폼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정책 검토라기보단 개별적, 산발적 대응의 결과라고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같이 엇갈린 해석으로 시장의 혼란이 불가피하게 발생했다”며 “전체를 아우르는 체계적 논의가 필요하며 그 방안이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유통이나 의료, 교육 등 7개 서비스산업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불합리한 규제와 제도를 개선하는 내용의 지원 근거를 담은 법안이다. 2012년 7월 정부 입법으로 발의됐지만, 이로 인해 의료 민영화가 추진된다고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해 10년째 표류 중이다.
문 과장은 “서발법 제정 이후 서비스 산업 정책에 대한 근간을 제시하고,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사회, 경제 구조 대전환에 정부 차원의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며 “다만 지난 10년간의 경제 상황을 반영하고, 특히 4차 산업혁명 신기술 발전에 따라서 제조업 서비스업 간의 융복합 서비스업과 서비스업 간의 융복합, 제조업의 서비스화 등 신산업 모델 창출을 선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서발법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좌장인 이성엽 고려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다수 공급자의 제품 혹은 서비스를 가져와서 비교하고 추천하는 것이 플랫폼의 본질”이라며 “소비자 보호와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플랫폼 서비스는 꼭 필요하기 때문에 갈등을 현명하게 풀어나가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 / 김동진 (kd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