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감성으로 위로와 재미를? "배민은 이용자와 즐겁게 논다"
[IT동아 정연호 기자] 불황일수록 사람들은 유쾌해진다. 우리는 왜 힘들수록 더 많이 웃으려고 할까? 팍팍한 현실을 잠시 잊어보려는 경우도 있지만, 웃음으로 현실의 고달픔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코로나19 이후 자가격리나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우울감 혹은 무력감을 느끼는 ‘코로나 블루’에 걸린 사람이 늘었다. 그리고, 이들이 잠시나마 ‘풋’하고 웃게 만드는 B급 광고도 여기저기서 보인다. B급 광고란 정교하게 잘 짜인 주류 문화 ‘A급 문화’보단 촌스럽고 때론 과격한 B급 감성의 문화를 말한다. 소비자는 잠깐이라도 웃으며 현실의 괴로움을 잊으니 좋고, 기업은 이로 인해 젊고 신선한 이미지를 얻으니 ‘윈윈(win-win)’전략인 셈이다. 그렇다고 B급 문화가 A급 문화보다 열등하다는 뜻은 아니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오히려 “B급 문화가 대중들에게 소구되는 포인트가 있다”면서 각각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B급 문화로 ‘풋’ 하는 웃음을 만드는 브랜딩의 대표적인 사례가 우아한형제들의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이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배민 광고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해학의 민족’, ‘밥심이 제일 중요한 민족’이란 표현이 밈(Meme, 유행하는 문화나 콘텐츠)으로 유행하는 지점과 잘 맞아떨어진다. 민족성으로 웃음코드를 찾아내는 SNS 문화를 활용해 한국인이란 민족성을 ‘배달’이란 키워드로 어색하지 않으면서도 재밌게 풀어냈다. 뿐만 아니라 배민은 SNS에서 누구나 공유할 법한 재밌고 센스있는 문구들도 잘 뽑아낸다. 배민은 잡지 광고에도 B급 문구로 광고를 싣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안 관련 잡지엔 ‘쉿 비빔이야’, 요가 잡지엔 ‘치킨이 안 나마스테’, 낚시 잡지엔 ‘슬픈 땐 우럭’같은 광고를 내보내 잡지사에서 “광고를 잘못 보낸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온 적도 있다고 한다.
배민은 2015년부터 매년 봄마다 25자 이내의 창작시 공모전인 ‘배민신춘문예’를 열고 있다. 주제는 ‘음식’이다. '치킨은 살 안쪄요 - 살은 내가 쪄요'(2017년), '박수칠 때 떠놔라 -회'(2018년) ‘아빠 힘내세요, 우리고 있잖아요 – 사골국물’(2019년) 등 음식과 관련된 유쾌한 창작시로 매년 화제를 모았다. 당선작 발표 후로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당선작들이 빠르게 공유되면서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재밌는 응모작이 많다. 이 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2021년엔 진행되지 않다 올해에 재개됐다. 3년 만에 돌아온 2022 배민신춘문예에는 창작시 53만7784 편이 응모됐는데, 이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누적 응모작 수인 57만 편에 맞먹는 수치다. 올해는 코로나19 극복을 응원, 격려하는 작품이 많았다.
올해 대상작은 ‘마늘’을 주제로 한 “다 져도 괜찮아”라는 문구가 선정됐다. 배민신춘문예 대상 수상자에게는 365일 배민자유이용권이 수여된다. 배민자유이용권은 짜장면과 피자, 떡볶이 등 모든 카테고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배민 쿠폰 2만 원권이다. 중의적인 표현으로 웃음을 주면서 “(경쟁 혹은 게임에서)져도 괜찮아”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했기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
최우수작은 “보란듯이 문어줬어 -타코야끼 사장님”, “맞았는데 틀렸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 동그랑땡” 두 편이 수상했다. 최우수상은 배민 한 달 자유 이용권을 받는다. 이외에 ‘반이반이 반이반이 당근당근 - 엄마표 카레’, ‘모든 계절이 다 너였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 ‘떡상하면 안되는데 - 떡집사장’, ‘이 둘은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민트초코’ 등 우수작 10편이 선정됐다. 우수작 당선자는 배민 일주일 자유이용권을 받는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배민신춘문예는 ‘풋!하고 가볍게 웃음을 주거나, 아~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를 찾는다’는 심사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 기준에 따라 심사하되, 유머러스한 시와 감동적인 시를 몇 편 뽑겠다고 개수를 정해두지 않고 보았을 때 좋은 시를 골라 선정하고 있다. 중의적 표현으로 풋! 하는 웃음을 주면서 동시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면서 선정 기준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누가 인간의 창의력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배민신춘문예 입상작을 보게 하라’는 반응이 있다. 짧은 시로 재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배민신춘문예 참석자들도 수상작을 보면서 아쉬워하면서도 감탄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용자들은 ‘최애(최고로 애정이 있는) 작품’을 꼽을 정도로 즐거워한다”고 전했다.
“소비자와 함께 즐겁게 논다”, 팬덤까지 생긴 배민의 브랜드
문제 '다음은 매장에서 치킨을 튀기는 소리다. 잘 듣고 치킨을 총 몇 조각 튀겼는지 맞히시오'
답 1) 6조각 2) 7조각 3) 8조각 4) 9조각 5) 10조각
배민의 행사 소식을 듣다 보면 깊은 생각을 하지 않은 채 ‘풋’하고 웃음이 터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치믈리에’ 자격시험이다. 치믈리에란 치킨과 소믈리에(포도주를 전문적으로 서비스하는 사람)의 합성어로, 배민에서 치킨 감별사 시험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행사가 처음 공개됐을 당시만 해도 “치킨 감별사라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라는 반응이 나왔다.
치믈리에는 별난 마케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디테일에도 신경을 써 그 자체로 재미를 유발했다. 치믈리에 행사에선 축하용 꽃가루 대신 닭 다리 모양의 가루를 뿌리고, 실제 시험처럼 듣기평가 문제가 있으며 답안은 OMR카드에 기록하는 방식이었다. 2018년도 응시자 500명 중 47명만 통과해 합격률이 9.4%로 집계됐을 정도로 문제 난도도 높은 편에 속한다. 행사장엔 무르띠에(치킨무+까르띠에)’ 전시관도 마련됐다. 마네킹이 명품 목걸이와 귀걸이 대신 치킨 무를 보석처럼 달고 있었다. 선발된 치믈리에들은 배민과 함께 ‘치슐랭가이드’란 치킨 가이드북을 제작하기도 했다. 배민은 치믈리에 행사로 '2018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통합미디어 부문(IMC) 캠페인 전략 금상을 수상했다.
또한, 배민은 2019년부터 떡볶이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떡볶이 마스터즈’ 행사도 열고 있다. 얼마나 많은 떡볶이를 알고 있는지 떡볶이에 대한 지식을 묻는 시험이다. 시험은 위 사진처럼 필기문제와 함께 실제로 맛보고 무슨 맛 떡볶이 인지 맞히는 실기문제로 구성된다. 떡볶이 한입에 재료와 특징을 파악하는 미각, 전국 떡볶이 맛집을 알고 있는 경험, 떡볶이의 전통과 트렌드를 알고 있는 해박함 등을 평가해 우승자를 1명을 선발했다. 우승자에겐 1년 내내 떡볶이를 먹을 수 있도록 떡볶이 쿠폰 365장을 증정한다. 온라인에서 57만 명이 참여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운 행사였다.
전문가들은 배민의 재미가 플랫폼 서비스에겐 이례적인 '팬덤'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한다. 배민은 배짱이(배민을 짱 좋아하는 이들)라는 팬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20~30만 명이 지원하고 그중에 수백 명을 선발한다. 우아한 형제들의 김봉진 의장이 배짱이 팬클럽 환영식에서 교장처럼 옷을 입고 훈화의 말씀을 할 정도로 해당 프로젝트 역시 재미를 중시한다. 배짱이들은 2016년 우아한 형제들이 첫 흑자를 냈을 때 전국 각지의 흙을 한 삽씩 퍼 씨앗과 함께 컵에 담고, 컵에 ‘자’를 꽂아 사무실로 보내 흑자를 축하했다. 우아한 형제들이 신사옥으로 이사 갈 땐 축하난을 보내는 ‘배짱이의 난’ 프로젝트를 배짱이들이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배민은 이용자와 함께 노는 기업이란 이미지가 생겼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B급 감성의 특성을 분석한 논문 ‘B급 감성 광고 경향에 관한 내용분석(저자 백주연, 염동섭)’은 B급 감성을 “B급 문화를 규명하는 명확한 정의는 없으나 재미와 해학적인 요소가 탑재돼 대중에게 호평받는 콘텐츠로 통칭할 수 있다. 예상하지 못한 유희에 의해 의식의 질서가 흐트러짐에 따라 호기심이 자극돼 유희충동을 느낀다는 ‘유희충동’의 개념을 반영한다. ‘유희’로 인해 증폭된 개인의 감정은 ‘쾌락(快樂)’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정의했다.
이어, “B급 감성의 광고는 A급인 주류문화에 대한 반감과 불만을 희화화시켜 표출한다. B급이라는 명목하에 억눌려왔던 사회·문화·개인의 감정을 유치하고 코믹한 방법인 병맛코드, 풍자, 엉뚱함, 유머로 표현한다. B급 문화는 세대와 영역을 불문하고 의도적인 유희와 웃음코드를 이용해 소비자들에게 재미를 준다는 측면에서 많은 영역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2008년 시작된 전 세계적인 경제불황과 2020년 촉발된 코로나19로 경제적· 심리적으로 위축된 소비자들을 위해 B급 문화는 특유의 ‘유희(재미)’로 마음의 ‘위로’와 ‘힐링(healing)’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B급 문화가 주류로 떠오른 데는 SNS 힘이 컸다. 예전엔 다수가 힘을 모을 수 있는 공간이 없었는데, 인터넷이 생기고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오고 가면서 대중매체의 완성도 있는 A급 콘텐츠뿐 아니라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콘텐츠도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뭉치니까 힘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B급 콘텐츠를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우열을 따지는 것보단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해당 콘텐츠를 좋아하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면서 “B급 콘텐츠 열풍의 중심에는 성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있다. 다수가 한순간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향유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A급의 완성도 있는 콘텐츠에서 웃음과 재미를 느끼려면 맥락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하지만, B급 문화는 복잡한 사고과정이 필요 없는 직관적인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이를 즐길 수 있는 집단의 폭이 넓어진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요즘 소비자들은 재미를 찾는 펀슈머 (Fun+Consumer)라고 불린다. 콘텐츠를 보면서 본인이 즐거워하면서도 이걸 다른 친구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유하는 특성이 있다. 최근의 추세는 ‘인터넷에서 공유할 만한 콘텐츠인가’도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라면서 “이용자의 아이디어를 모아서 이를 토대로 배민은 또 한 번 이슈가 되고 이용자에게 노출이 된다”고 분석했다. 배달 앱은 다른 경쟁 서비스와 차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서비스다. 고객이 음식점과 연결되는 것 말고 다른 서비스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배민은 B급 광고를 통해 화제를 일으키고 이를 통해 대중에게 노출되면서, 고객이 습관적으로 자사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전략을 마케팅으로 활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은희 교수는 “배달 앱은 보통 배달을 시킬 때만 이용한다. (재밌는 콘텐츠를 계속 제공하면서) 이용자들이 여유를 갖고 배달 플랫폼에 머무르게 하면서 계속 들여다보게 하는 게 배민 입장에서도 마케팅의 중요한 전략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민이 주도해 소비자들끼리 서로 좋은 문구를 주고받는 기회를 만들면서 인터넷에서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배민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