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3D 동화체험, 디지털기술이 아이의 세계를 넓힌다"

정연호 hoho@itdonga.com

[IT동아 정연호 기자]

“아이를 위한 공간이 없다”

한국에서 자녀를 둔 부모라면 한번은 머릿속에 떠올랐을 법한 생각이다. 아이를 식당, 영화관, 카페에 데려가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아이가 뛰어다니거나 소리를 지르면 남에게 피해가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다닐 공간도 마땅치 않은 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놀이터는 아파트 소유물이 되면서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고 있고, 공공 놀이터도 부지 확보가 어려워 확산이 잘 안 되고 있어서다. 오랫동안 체험학습의 중요성이 강조돼 왔는데, 사실상 체험학습이란 건 우리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이가 직접 그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서 무언가를 행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상황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고, 친구들과의 협동적 상호작용으로 사교성을 배울 수도 있다.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진다는 건 아이들의 배움에 큰 공백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걸까. 해외에선 해결 방안으로 ‘공공도서관 커뮤니티’를 활용하고 있다. 도서관이 도서를 열람 및 대출하는 것을 넘어서, 전시, 영상관람, 문화강좌 수강, 공연감상, 체험 등을 지원하는 복합문화공간이 되면서 단절된 시민 간의 만남을 위한 사교의 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조혜린 정보서비스 과장을 만나 어린이도서관의 역할, 그리고 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의 조혜린 정보서비스 과장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의 조혜린 정보서비스 과장

ㅡ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어린이청소년 도서관은 일반도서관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하 국어청)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기관인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속돼 있다. 국어청처럼 국가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청소년도서관은 전국에서 이곳 하나밖에 없다. 지역에 있는 공공도서관은 지역사회 주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 국어청은 지역사회의 공공도서관이 할 수 없는 일을 맡는다. 지역도서관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정책을 위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외에도 전국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 담당 사서들에게 역량강화 연수 기회를 제공하거나, 외국 도서관과 교류 및 협력을 하는 일도 맡는다”

ㅡ공공의 역할은 민간이 할 수 없는 일을 시도해 효과를 검증하고, 민간이 공공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 ‘테스트베드’라고 한다. 지역사회 도서관도 국어청이 시행하는 정책들을 보고서 이를 따라간다는 건가?

“예산이 몇억 단위로 들어가고, 시설적 뒷받침과 많은 인력이 요구되는 경우엔 일반 도서관에서 먼저 시도하기 어렵다. 그래서 국가가 운영하는 국어청이 새로운 기술을 선도적으로 시도해보고, 효과가 좋으면 다른 도서관에 해당 기술을 보급하고 지원하는 일을 한다”

ㅡ인터뷰 전에 ‘세상에서 가장 큰 도서관’을 주제로 한 3D 체험형 동화구연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해봤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더라.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니 아이들뿐 아니라 그걸 지켜보던 나도 땀 범벅이 됐을 정도였다.

“국어청이 MOU를 체결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하 ETRI)과 함께 개발한 5면 3D 체험형 공간이다. 기본적으로 책을 기반으로 만든 콘텐츠를 구현한다. 아이들이 함께 증강현실을 통해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이 돼서 상상의 세계, 지식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이다(증강현실은 눈으로 보는 현실세계에 가상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을 말한다).

아이들이 3D 체험형 공간에서 콘텐츠를 체험하고 있다
아이들이 3D 체험형 공간에서 콘텐츠를 체험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세상에서 가장 큰 도서관’ 콘텐츠는 임은경 작가의 동화책 원작을 기반으로 했는데, 주인공인 누리와 강아지 도도가 책 속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아이들이 바닥에 떠오른 양탄자를 타거나 사방에 있는 벽에 등장한 기차를 타고 인터랙티브하게 동화에 참여한다. 때론, 바닥에 있는 빙하가 깨지거나, 동물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재미가 극대화된다. 현재 개발하고 오픈까지 한 콘텐츠는 하나지만, 이외에도 몇 개의 프로그램도 개발이 끝났다. 공룡을 주제로 한 콘텐츠도 곧 운영될 예정이다”

ㅡETRI와는 어떻게 연결이 된 건가? 그쪽에선 보통 기술적인 지원을 주로 할 것 같은데.

“MOU를 맺은 이후로 ETRI가 도서관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 개발에 첨단기술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현재 체험형 동화구연 프로그램 같은 경우엔 모두 순수한 우리나라 기술이 접목됐다. 외국에서 기술을 가져다 쓰면 당장은 비용을 좀 더 아낄 수 있을 것이다. 국내 기술 개발을 위해서 우리가 직접 이를 개발하면 비용이 많이 들지 않나. ETRI와 협력해 확보한 정부 예산으로 함께 사업을 하고 있다. 기술 개발은 ETRI에서 담당하고 있다”

체험형 동화구연실은 동화구연과 가상현실을 결합해 아이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3D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한 XR(확장현실) 공간이다. XR은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등의 몰입형 기술 및 미디어를 규정하는 용어다. 현재 3~4명의 아이들이 담당 교사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큰 도서관으로 여행하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최대 인원을 10명까지도 늘릴 수 있다고 한다.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통해 신청할 수 있고, 무료로 체험을 이용할 수 있다.

아이들이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조심해서 움직이는 중이다. 실수로 빙하 조각을 밟으면, 빙하 조각이 물 속으로 떨어지는 인터랙티브한 구조다
아이들이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조심해서 움직이는 중이다. 실수로 빙하 조각을 밟으면, 빙하 조각이 물 속으로 떨어지는 인터랙티브한 구조다

기술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천장에 달린 7대의 빔프로젝터가 천장을 제외한 전/후/좌/우/바닥 5면에 콘텐츠의 배경을 투사하는 방식이다. 동화 속에 나오는 동물, 기차, 우주선, 펭귄과 남극, 세상에서 가장 큰 도서관 등의 영상이 벽면에 구현된다. 아이들의 체험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영상을 벽체에 단순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 특정 부위를 터치하면 인식이 되도록 라이다 센서와 연동했다. 라이다는 레이저를 목표물에 비춘 후 반사돼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목표물과의 거리를 잴 때 쓴다. 이때 빛이 손에 부딪혀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벽을 누르면 사자 울음소리가 들린다. 오케스트라 콘텐츠가 벽으로 투사됐을 땐, 아이들이 악기의 어떤 부위를 얼마나 누르는지에 따라서 악기 소리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실제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세상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 들어가기 위해서 아이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 들어가기 위해서 아이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

동물을 손으로 누르면 실제로 만지는 것처럼 질감이 느껴지고,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동물을 손으로 누르면 실제로 만지는 것처럼 질감이 느껴지고,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액추에이터(전기 신호를 기계적 운동으로 바꾸는 장치)를 통해서 화면을 터치할 때 가상의 물체가 피부를 누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대상을 만지는 듯한 촉감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런 감각은 시각, 청각 신호와 함께 작동하며 물리적으로 어떤 것을 만지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 두 기관이 함께 콘텐츠 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있으며,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ETRI가 전담한다.

ㅡ국어청은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기관이다. 이렇게 디지털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궁금하다.

“지금의 아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과거와는 달리 어린 나이에도 디지털 기술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 기술도 도서관을 통해서 먼저 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우리의 삶, 교육환경, 도서관 모두 디지털 기술에 영향을 받는다. 좋은 디지털 콘텐츠를 개발해서 아이들이 도서관을 친근하게 느끼고, 상상력을 기르는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ㅡ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는 아이들이 디지털 기술을 좋은 방식으로 접하게끔 돕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도서관의 경험을 디지털 기술로 다채롭고 풍부하게 한다는 것으로 말이다.

“맞다”

ㅡ세계적으로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공간을 넘어 일종의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부모들도 서로 친분을 교류하며, 이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교육이 마련돼 있다는 거다. 한국의 도서관도 이런 추세를 따라가고 있는 건가?

체험활동을 끝낸 아이들
체험활동을 끝낸 아이들

“사교적인 역할도 일정 부분 생겼다고 본다. 체험형 콘텐츠도 원래 알던 사람끼리 그룹을 짜서 신청하기도 하지만, 서로 모르는 아이들이 함께 신청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보통 부모님과 함께 오는데, 아이들이 방에서 놀면 부모님끼리 같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방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화면이 마련돼 있는데 그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옆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이렇게 사교의 장이 되는 것이다. 또, 동화 읽기 행사 같은 경우엔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관계를 맺기도 한다.

이외에도,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학습과 더불어 진로를 찾는 활동들을 마련해 두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기자단, 독서 동아리, 대학생 멘토링 등이 진행되고 있다. 요즘 기술 발전 속도가 정말 빠르다. 디지털 기술이 아이들의 교육, 생활, 도서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때문에, 메이커스페이스(다양한 재료들로 이용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장비와 시설을 갖춘 창작 공간)처럼 책을 매개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게 해서, 책과 디지털 경험을 접목하기도 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도서관을 방문하면 조용하게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책과 함께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자 한다”

ㅡ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메타버스(아바타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3D 가상세계) 기반 실감형 동화구연 서비스의 전국 확산이다. 세계적으로 XR이 대중화에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다만, 우리가 개발한 3D 체험형 동화구연 서비스는 몇 가지 어려움을 해결하면 대중화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체험공간의 규모에 따라 콘텐츠 튜닝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아이들이 콘텐츠 체험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인터랙션과 콘텐츠를 손쉽게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동시에 더 많은 아이들이 체험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가상이 가능한 도서관형 메타버스를 구축해야 한다. 국어청에서도 단면 체험형 동화 구연 콘텐츠에서 출발하여 3D 체험형 콘텐츠까지 발전시켜왔듯이, 앞으로는 메타버스와 연계한 새로운 시도를 통해 전국에 확산하고자 한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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