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학생들, 가비아와 손잡고 ‘글꼴’ 제작 나선 이유는?
[IT동아 김영우 기자] 글씨는 사람의 개성 표현 방법 중 하나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손글씨를 그다지 쓰지 않게 되었지만 PC나 스마트폰에서도 다양한 글꼴(폰트) 변경을 통해 개성을 과시할 수 있게 되었다. 글꼴은 개인적인 문서 작성 외에 각종 그래픽 콘텐츠를 제작할 때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높은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는 유명 글꼴도 존재한다.
그래서 일부 기업이나 단체에서는 특색 있는 글꼴을 제작, 배포하여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한다. 클라우드 및 도메인, 그룹웨어 기업인 ㈜가비아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특히 대학과의 협업을 통해 글꼴을 개발하고, 이를 무료 배포하는 ‘가비아 글꼴 나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5년에 국민대학교와 협업해 ‘솔미체’, ‘납작블럭체’, ‘봄바람체’ 3종의 글꼴을 배포한 바 있으며, 올해 초에는 홍익대학교와 손잡고 ‘마음결체’와 ‘청연체’를 선보였다. 이들 글꼴 파일은 가비아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 다운로드하여 상업적 이용을 포함한 다양한 용도로 이용 가능하다.
취재진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해 팀을 이끈 홍익대 디자인학부 안병학 교수와 실제 제작에 참여한 구혜민, 박주원 학생, 그리고 이들의 멘토 역할을 한 양효정, 정영훈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음결체와 청연체 글꼴의 특징 및 가비아와의 협업 과정,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의 의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Q1. 각자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안병학: 홍익대학교와 영국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에서 시각디자인(Visual Communication Design)을 전공했다. 타이포그라피, 그래픽 디자인을 가르치고 업무 외에 주식회사 코르푸스를 운영하며 디자인의 사회문화적 역할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분야에서 텍스트와 이미지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구혜민: 이번 가비아 글꼴 프로젝트에서 가비아 청연체 제작을 담당했다.
박주원: 타이포그래피, 그래픽, 브랜딩을 중점으로 학부 수업, 전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
양효정: 이번 가비아 글꼴 프로젝트에서 멘토 역할을 맡았다. 그래픽 디자이너다.
정영훈: 홍익대에서 한글 기운흘림글꼴 디자인 방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다. 주로 한글을 중심으로 작업하며, 글자를 그리고 만드는 분야에 관심을 두는 연구자이며, 그래픽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Q2. 이번 글꼴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안병학: ‘가비아 글꼴 나눔 프로젝트’는 2015년경 학생이 참여해서 만드는 글꼴 나눔 프로젝트로 처음 시도된 후,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2021년 가비아에서 의뢰가 와서 우리 홍익대 시각디자인전공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특히 본문용으로 쓸 수 있는 범용 서체를 목적으로 보편성과 확장성에 초점을 두고 본격적인 글꼴 나눔 프로젝트를 제안하게 되었다.
구혜민: 작년에 교수님께서 타이포그라피(1) 수업의 과제로 그렸던 서체를 글꼴로 제작해 보자는 연락을 주셔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글자를 그리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언젠가 한 번 글꼴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기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기도 했다.
박주원: 1학년 2학기 전공 수업인 타이포그라피(1)에서 안병학 교수님의 지도 아래 400자 정도의 글자를 제작하게 되었다. 다음 연도에 학부 수업에서 제작한 초안을 토대로 교수님께 프로젝트 추천을 받아 가비아 마음결체를 제작하게 되었다.
양효정: 저 또한 안병학 선생님이 먼저 제안해 주셨고, 단순히 글꼴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아닌 가비아가 후원한 청년이 글꼴 디자이너로 성장하도록 돕고, 한글 글꼴 다양화에 기여한다는 프로젝트 취지에 동감하며 참여하게 되었다.
정영훈: 프로젝트 총괄인 안병학 교수님이 참여를 제안했다. 평소 글자를 그리고 만드는 작업을 꾸준하게 해왔는데 그런 경험을 함께 나누며 배울 기회라고 생각하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Q3. 이번에 발표된 ‘마음결체’, ‘청연체’의 특징과 의의는?
구혜민: ‘청연’은 맑은 인연이라는 뜻으로, 과거의 세로쓰기 반흘림 글꼴을 다시 현대적인 서체로 재해석하며 그 줄기를 이어간다는 데에서 붙인 이름이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스케치한 것에서 시작되어, 붓글씨의 유려한 획들과 곧게 뻗은 세로줄기를 통해 시가 가지고 있는 서정적인 정서와 그 안의 단단한 의지를 글꼴의 형태에 담아내고자 했다.
박주원: 가비아 마음결체는 글이 표현하는 사람 사이 마음을 부드러운 획의 인상으로 나타낸 폰트입니다. 곡선을 살린 획의 조형을 활용해 섬세한 리듬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제작했다. 세로쓰기 글꼴의 흔적을 반영한 극심한 경사의 부리 형태와 첫 닿자의 유려하게 이어지는 획으로 개성과 자신감이 느껴지도록 한 가로쓰기용 글꼴이다. 특히 겹기둥에서 자유로운 곡선을 유지하고 발생하는 뭉침 현상을 해결하고자 끊어 쓰되 이어진 획의 흔적을 남긴 형태가 특징이다. 한글과 라틴 문자(알파벳 등) 사이에서 언어의 형태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 각 언어의 필기 방식을 따르면서 글자의 개성을 유지한 섞어 짜기가 가능하다.
Q4. 가비아와의 협업은 어떤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안병학: 하나의 서체를 완성하기까지는 지난한 노력과 긴 과정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고객과 디자이너의 관계로 한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처음 시작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조율 과정이 필요했다. 위에 설명한 것처럼, 우리는 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기본에 충실한 본문 글꼴 디자인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개성 있으면서도 동시에 장식이 지나치게 두드러져서 본질을 가리는 것을 원하지 않다. 또한, 서체의 구성 면에서도 약 3,000여 자 내외의 글자를 갖추어 어느 정도 본문용 서체로서의 최소 기능을 담기 원했다. 그러나 서체의 인상이라는 것은 매우 추상적이고, 개인에 따라 이 추상성을 받아들이는 지각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인상의 서체를 만들어야 하는가를 조율하는 시점에 많은 논의가 필요했다.
구혜민: 가비아 측에서 우리에게 높은 자유도를 부여했기 때문에 작업 과정에서는 우리의 선택이 많이 존중되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도록 교수님과 조교님, 그리고 자문 위원분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박주원: 가비아 프로젝트팀 중 교수님과 자문 위원님 등 전문가분들의 도움과 본인의 판단 아래 글꼴을 기획 및 발전시켰고, 중간 과정을 가비아 담당팀과 공유하면서 여러 관점의 의견을 받아들여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가비아에서 우리에게 폰트 제작에 대한 자유도를 부여해 다양한 시도를 거치며 개성이 살아있는 폰트를 제작할 수 있었다.
정영훈: 두 학생이 작업에 온전하게 몰입 가능한 여건이 잘 마련되었다. 가비아 측의 배려와 지원을 바탕에 두고, 전문가의 귀한 자문을 통해 다듬을 기회를 얻었다. 가비아와 홍익대 협업 과정에서 이런저런 논의가 오갔고,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며 세심한 배려를 느꼈다.
양효정: 가비아는 우리 팀에서 제안한 취지와 방향성을 잘 이해해 주었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물론 두 디자이너가 글꼴을 만들고 다듬어 나가는 과정은 힘들었겠지만, 가비아의 지원과 많은 자문 위원 분들의 도움으로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Q5.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과 극복 방법은?
안병학: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얼굴이 풍기는 인상을 매우 추상적으로 인지한다. 예를 들어, ‘아름답다’, ‘잘 생겼다’, ‘귀엽다’ 따위의 표현을 쓴다. 이런 추상적이고 종합적인 인상은 그 사람의 얼굴을 구성하는 다양한 부분들에 대한 지각이 모여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눈매나 턱선 등, 얼굴을 구성하는 부분 형태의 총합을 통해 인상을 결정한다. 이렇게 총합으로서의 인상이 결정되면 대부분 부분 형태에 대한 지각은 기억에서 사라진다. 서체도 마찬가지다. 어떤 서체든 부분 형태로 완결된 인상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인상은 서체를 접하는 사람의 미적 경험에 따라 다 다르게 결정된다. 물론 특정 문화적 정서를 공유하는 집단 내에서는 대체로 유사한 범주에 그 인상이 있게 마련이기는 하다. 작은 기술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더 큰 어려움이라면 이런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구혜민, 박주원 두 학생이 이런 프로젝트의 취지를 잘 살려 훌륭히 마무리해 주었고, 두 학생 외에도 현장에서 글자를 디자인하는, 또는 서체로 디지털화 하는 기술적인 역할을 하는 많은 분의 도움이 자문 형태로 있었다. 저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정영훈, 양효정 선생의 도움도 컸다.
구혜민: 워낙 부족한 상태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보니 작업 과정에서 글자를 보는 눈이 점점 성장했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에 그렸던 글자가 미흡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계속 찾아왔다. 글꼴의 특성상 글자의 일부를 수정하면 연관된 글자들 전부를 수정해야 하기에 마지막까지도 계속 전반적인 수정을 이어갔다.
박주원: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그걸 표현하는 방식도 다른데, 마음결은 그런 마음의 바탕을 표현하는 글자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획의 인상을 가져야 했다. ‘그럼에도 글꼴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잘 읽히지 않는다면 이 글자가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라는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후 한글 구조도를 다시 짜보고 그려보면서 개성을 유지하고 긴 문단에서의 가독성을 보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제작했다. 마음결은 곡선이 강조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이에 맞춰서 시각 기준선과 한글의 각 조합에 따른 속공간과 배치를 조절해 주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시각적인 착시를 조정하는 타이포그래피의 기본적인 이론이 큰 도움이 되었다.
정영훈: 사용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여러 차례 글꼴의 사용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특히, 기술적 문제가 몇몇 있었다. 가령, 특정 응용 프로그램에서 글자 파일 설치의 오류가 있거나, 설치 후에 일부 글자의 표현이 어긋나는 경우 등이 있었다. 이를 바로잡고 확인하는 과정을 세세하게 할 필요가 있었고, 팀에서 촉각을 세워 여러 차례 살폈다.
양효정: 가비아 글꼴 프로젝트는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두 디자이너들이 지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역할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두 학생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서 다듬어 나갔고,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Q6. 향후 계획이 있다면?
안병학: 협업은 그 주체 모두에게 즐거움과 창의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런 긍정적 결과를 얻으려면 모두가 진지하게 노력해야 한다. 학생은 더 철저히 프로가 가져야 할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일에 대한 책임감, 진지함, 완벽한 결과를 향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나는 학생이니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협업은 실패하게 된다. 기업이나 기관 역시 충분한 자율도를 제공하고 창의성을 유도할 수 있는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 학생이 가진 전문가적 태도와는 별개로 실패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잠재적인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 홍익대에는 많은 창의적인 학생들이 있다. 이들의 크고 작은 활동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이런 활동들이 다양한 기업, 기관과의 협업 속에서 더 빛을 발하게 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을 고민 중이다.
구혜민: 그동안 타이포그래피 관련 작업들을 주로 해오다 보니 다른 분야에 관해서는 아직 많은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작업을 할 때 표현의 방향성에 한계가 생기는 것 같아 우선은 조금 더 다양한 분야를 접해보고, 공부해보고 싶다.
박주원: 협업자에게 협력적인 태도를 지키면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색다른 시선을 선물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목표다. 능력적으로 인정받되 본인의 일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온다면 동료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지키며 책임 의식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임하고 싶다.
정영훈: 글자를 꾸준하게 그려가면서, 이 분야의 전문인이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할 예정이다. 특히, 한글을 중점으로 하면서 다른 문자와 혼합해 보거나 또는, 새로운 질감을 발견하는 등의 활동과 실험적인 태도로 접근할 생각이다. 동시에, 이런 경험을 교육 현장에서 함께 나누고 싶다.
양효정: 앞으로도 글자를 활용한 다양한 작업과 한글 디자인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해나갈 예정이다. 특히 올해도 가비아 글꼴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가비아 청연체’, ‘가비아 마음결체’와 같은 훌륭한 글꼴이 나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것 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