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아이디어 거래하는 '아이디어 시장', 새로운 공유경제 개척한다
[IT동아]
경남 양산에 거주하는 교사 김 모씨는 지난 해 한국도로공사와 광동제약에 아이디어를 판매해 90만 원의 수익을 거뒀다. 한 개인사업자도 작년 하반기 이후 아이디어 판매로 번 돈이 300만 원이 넘는다. 아이디어 하나로 본업 외에 쏠쏠한 수입이 생긴 샘이다. 비싼 전공 서적을 구매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서적 지원 사업 아이디어를 사회적 기업에 무상 나눔한 대학생도 있다.
이처럼 누구라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판매해 돈을 벌거나,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기부하는 이른 바 '아이디어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발명진흥회에 따르면, 작년 3월 구축한 아이디어 거래 플랫폼 '아이디어로'를 통해 거래된 건수는 112건, 거래 금액은 6000만 원에 달한다. 지난 한 해 기업이나 공공기관, 지자체가 개별 진행한 아이디어 공모 상금을 모두 더하면, 아이디어 시장 규모는 이미 수백억 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도 공공과 민간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거래/공유하는 국가 거점 아이디어 플랫폼 구축을 추진할 방침이라 아이디어 거래 시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대기업부터 공기업까지 아이디어 거래 봇물
아이디어 거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주로 두 가지 형태로 이뤄진다. 공모전과 같이 기업이나 기관 등 아이디어 구매자가 필요한 과제를 특정하여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형태가 가장 많이 이용된다. 반대로 아이디어 판매자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등록, 열람이 가능하도록 하여 구매자를 찾는 형태도 있다.
등록된 아이디어 중 필요한 것을 선택하여 거래금액 협상을 통해 구매한다는 측면에서는 상품, 서비스 등 일반적인 온라인 거래와 동일하다. 탄소중립, 재활용 아이디어, 세대 간 갈등해결 등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의 경우 대부분 나눔의 형태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최근 들어 아이디어 거래의 대가로 입사기회 제공을 선택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지난 달 14일부터 코로나 이후 최대 규모로 계열사 전반의 신입사원 채용을 진행하고 있는 CJ그룹은, 채용 기간 동안 물류혁신 아이디어 공모전을 실시, 입상자에게 입사 특전을 제공한다. SK증권도 지난 해 DT(디지털전환)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하면서, 대상 1팀에게 상금 500만 원 이외에 입사기회라는 파격적 혜택을 내걸었다.
공기업도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한국전력기술과 예금보험공사는 지난 해 하반기 진행된 제2차 공공기관과 함께 하는 혁신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우수 아이디어 제안자에게 거래금액 외에 각각 채용 지원 시 서류전형 면제, 인턴채용 지원 시 서류전형 3% 가산점의 혜택을 부여했다. 2020년 기준 한국전력기술의 채용 경쟁률 평균 81.7:1, 예금보험공사의 하계 인턴 기준 32.33:1에 달한 점을 감안하면, 취업난을 겪고 있는 이들에겐 아이디어가 '황금 동아줄'인 셈이다.
투자금 '0', 시간/프로젝트/목적까지 내 마음대로 선택하는 N잡
본업 외에 부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N잡'의 열풍도 아이디어 거래 활성화에 한 몫을 한다. 개인 역량이나 투입 가능한 시간, 얻고자 하는 대가의 종류 등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 MZ세대의 성향과도 잘 맞는다. 시간과 개인의 역량 외에 별도의 투자가 필요하지 않은 데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과제부터 일상에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생활 아이디어까지 구매를 원하는 종류가 다양하고 그만큼 진입 장벽도 낮다.
정부는 MZ세대 중 육아 등의 이유로 경력이 단절된 핵심 여성 노동인력의 경제활동 참여에도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OECD 통계 및 통계청 데이터 분석 자료에 따르면, 국내 0~14세 사이 자녀를 둔 여성 중 57.0%만이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30대 여성의 경력단절 사유의 47.6%가 육아였으며 임신출산과 결혼이 그 뒤를 이었다. 이처럼 육아로 인해 전일 근무가 어려운 경력 단절 여성도 개인의 상황에 따라 일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전문성 보유 여부에 따라 선택의 범위도 넓은 점에서 참여가 용이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정부, 범국가적 아이디어 등록/거래제 활성화 추진
정부는 최근 열린 제55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경제부총리 주재)를 통해, 아이디어 거래 기반 조성을 위해 공공과 민간이 자유롭게 아이디어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국가 거점 '아이디어 플랫폼'을 구축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특허청과 한국발명진흥회에서 운영 중인 '아이디어로'를 국가 거점 플랫폼으로 확대 개편하면서, 아이디어 거래 모형 및 모바일 앱 개발 보급 등 아이디어 거래에 필요한 제반 여건을 제공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당장 올해부터 공공부문이 선도적으로 아이디어 거래 수요를 창출하여 아이디어 거래 관련 정보/경험 등을 축적, 아이디어 거래의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아이디어 보호 강화를 위한 관련 시스템과 제도 정비도 동시에 진행된다.
재계도 적극적인 반응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국가발전 프로젝트 공모전을 통해 최종 선정된 국민 아이디어의 사업화를 진행한다. 대한상공회의소 최태원 회장은 멘토로 나서기도 했다. 국가발전 프로젝트는 대한상공회의소의 주도로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사업 아이디어를 찾아 사업화를 지원하는 창업 공모전으로 영상통화로, 치매를 예방하는 '사소한 통화'를 포함해 사업화 아이디어가 4건이 최종 선정됐다.
아이디어 보호 강화, 보상 수준 공감대 형성 등 우선 해결해야
이처럼 정부와 기업 모두 적극 대응하고 있지만, 아직 미국 등 이미 탄탄한 아이디어 거래 기반과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선도국에 비하면 우리나라 시장은 아직 미성숙한 수준이다. 국내 기업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개방형 혁신에 보수적인 태도다. 2016년 기준으로 포브스 500개 기업 중 상위 100개 기업의 개방형 혁신 도입 비율은 68%에 달한다. 하위 100개 사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에 반해 한국기업혁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의 개방형 혁신 도입 비율은 2020년 현재 39.7%, 중견 기업의 20.3%, 중소기업의 6.9%에 머물고 있다.
제안된 아이디어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도 아직 미흡하다. 공모전에 제안된 아이디어를 보호할 장치도 취약하다. 2020년 기준 포상을 아이디어 보상으로 잘못 인식하거나, 협의 절차나 아이디어 활용 방법에 대해 규정하지 않은 공모전이 절반에 가까울 정도다.
아이디어 표절이나 도용 등에 대한 예방 및 처벌도 손질해야 한다. 공모전 등에 제출된 아이디어가 표절 혹은 도용한 것인 지를 사전 검증하는 수단도 아직 부족하다. 지난 해 3월 국민권익위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행정기관조차 표절/도용 여부를 검증하는 비율이 46.6%로 절반을 밑돈다.
수요자와 공급자간 아이디어의 개념과 보상 수준에 대한 시각차도 아이디어 거래 활성화를 위해 극복해야 할 문제다. 국내 기업은 당장 사업화가 가능하거나 매출 증대가 가능한 아이디어를 원하는 데다가, 보상 수준도 사업화 비용 등을 고려하기 때문에 미래 수익까지 기대하는 제안자와 온도차가 크다.
이와 관련해 한국발명진흥회 손용욱 상근부회장은 "범정부 아이디어 플랫폼 구축 논의를 계기로 아이디어 거래 시장이 더욱 성숙하고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국민들이 경제적 또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제안된 우수한 아이디어를 안전하게 거래함으로써 국가와 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